나한테는 날이면 날마다 찾아오는 고독이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태생이 고독하다거나 원래 혼자라거나 하는 그런 종류의 고독은 아닌것 같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가져야할 고독이라면 선뜻 이해가 가실런지요.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서 김연수는 값싼 고독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요즘 세상에는 값싸게 즐길수 있는 고독이란 게 없어. 돈을 지불하지 않은 고독은 사회 부적응의 표시일 뿐이지. 심지어는 범죄의 징후이기도 하고. 예를 들어 선생들은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서 지내는 학생에게서 자살이나 학교 폭력의 가능성을 잃고, 이웃들은 친구나 가족의 왕래가 없이 살아가는 1인가구의 세대주가 잠재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이코패스가 아닌지 늘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만 하잖아. 우리 시대의 고독이란 부유한 자들만이 누릴수 있는 럭셔리한 여유가 된 거야.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일이라면” 중
럭셔리한 여유라는 새로운 정의가 내려진 최첨단 고독이라는 녀석은 내가 꿈도 꿀수 없는 먼 나라 이야기인 듯합니다. 그 먼곳에서 주변 왕래 없이 조용히 지내는 나에게 위험하다라고 경고를 보냈습니다. 이제 그만 밖으로 나오렴. 나는 범죄자도 은둔자도 아니지만 내 고독에 지불할 경제적인 여유도 부족하고 귀찮기도 하고. 삶이란게 나에게 늘 그렇듯.
오늘은 가난한 나의 고독이 지독히도 애잔해지는 날입니다. 어디든 나가서 가까운 사람들과 만나서 시끌벅적하게 한바탕 수다라도 꺼내 놓고 싶군요. 내 창자에 기름기 가득한 음식들로 채우고 맥주나 와인으로 목구멍의 기름기를 씻어내며 외부 세계의 에너지로 채우고 싶은 그런 날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음주량은 가계 주머니 사정과 반비례 한다고 우스갯 소리로 술을 줄여야 하나 했는데 오늘만은 예외사항으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침에 해외에 거주하시는 몇몇 스티미안의 블로그를 찾아 가봤습니다. 설음식은 드셨는지 떡국은 드셨는지 궁금하더군요. 결론은 여전하시다는것.
그래서 나도 랩탑을 꺼내 놓고 마주 앉았습니다. 몇시간을 앉아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글 한자 쓰기도 버겁기만 합니다. 고독은 창조적 자아로 발현되기도 한다던데 나한테는 그런 능력도 운도 따르지 않는가 봅니다. 가난한 나의 고독이라는 제목을 붙여 놓고 밥도 먹고, 종일 잠만 자려는 강아지를 깨워 산책도 시키고, 진솔한 대화를 시도하며 시간을 흘려 보냈습니다. 이쯤에서 궁상 맞아보이는건 혼자만의 생각인가요?
어쩌면 내가 끌어 안고 살아가야 하는 내 생활의 고독이 나를 더 나답게 만드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상실감을 느끼거나 대항해야 하는 대상으로서의 고독은 결코 아닙니다. 술잔을 채우기 위해 술잔을 비우는 고독이지요. 나의 의지이고 선택이자, 나의 필연 관계입니다. 나의 고독의 무게는 가볍고, 깊이는 얕고, 빛깔은 맑은, 그래서 언제든지 한방에 지구밖으로 날려 보낼 수 있는 정도로 적당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것이 내가 외롭지 않게 살아가는 방편이자 생활의 지혜입니다. 고독과 술잔을 기울이는 친구관계랍니다.
오늘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온 가족들에게 뜨끈한 떡국 한그릇 내밀며 큰소리로 웃어줄 것입니다. 우리 집은 제가 떠들지 않으면 상당히 조용하거든요. 고독의 성인가요? 어린 시절 설날의 추억과 친척들의 비화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봐야겠습니다. 그렇게 나의 가난한 고독에 발차기를 날리고 술잔을 비울 준비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