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날 때마다 적어 놓은 밀린 일기입니다.
1
"말을 한다는 것은 총을 쏜다는 것이다." 사르트르가 한말이다. 가끔 내가 쏜 총알이 과녁이나 목표물에 맞지 않고 공중을 헤맨다고 느낄 때가 있다. 아니 나는 이미 명중의 희열을 맛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제3자에 의해 다시 불려진 총알은 공기중에서 부유한채 나의 착각을 비웃는다. 이때 느껴지는 감정은, 고급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와서 집에서 라면 끓여 먹는 기분이랄까.
2
모든 운동에는 영혼을 실어야 한다. 쇠질에도 영혼을 댄스에도 영혼을. 그래야 활활 지방이 탄다. 나의 탐욕도 함께 타기를.
3
글쓰기 준비. 나의 영원한 백그라운드 뮤직인 쇼팽을 틀고, 랩탑을 켜고, 에어컨을 틀고, 랩탑 한쪽에 음식을 차리고, 그리고 스팀잇을 켠다. 내 랩탑의 MS word는 자꾸 영어로 넘어가서 한글 자판이 안되고 스페이스키도 안 먹힌다. 스팀잇 글쓰기 창을 열어 놓고 글을 쓰는게 가장 잘 써진다. 습관이겠지. 굳이 포스팅 할 글이 아니라 해도 스팀잇은 나에게 글을 써지게 하는 동력를 제공해준다. 사랑한다. 스팀잇.
4
해피랑 눈싸움을 했다. 5전 5승! 이기고 나니 기분이 좋으면서 이상하다. 누군가를 이겨보는건 정말 오랜만인데 상대가 개라서 그런가 진만도 못하다. 나는 경쟁도 스포츠도 그닥 즐겨하지 않는다. 이기고 짐이 나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는 이유는 잘 이기지 못해서일까, 승패의 덧없음을 알기 때문일까. 어릴적엔 내기하는 걸 참 좋아했었다. 내기로 친다면 그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다. 찍는것도 잘하고(특히 시험문제) 뭔가를 하면 이기는 것을 당연한 결과로 여겼었다. 그때는 세상이 다 내편이고 행운의 여신이 나를 향해 미소만 보낼 줄 알았었다. 지금은 잘 안 맞고 잘 지고 하는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고 좋다. 내것이 아닌 것은 가지고 싶지 않아서일까. 점점 욕심을 내려놓는것 같아 참 대견하다.
5
두번쯤 본 사람이 운동 뭐하냐고 나에게 물었다. 숏팬츠 아래의 다리로 봐서는 아주 격한 운동을 하는것 같다고 했다. 운동 쉰지 1년이 되서 그렇지는 않을거다라고 대충 얼버무린 뒤 집에 와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와우! 쏴라있네. 쪼야님도 울고 갈 허벅지라고 해야 할까. 하체 운동 굳이 안해도 쫙쫙 갈라진 나의 두꺼운 허벅지. 햄스트링이 언제 이렇게 살아났냐. 무럭무럭 자라다오! 내 귀여운 이두에게도 키스를!
6
소설 쓰기에선 시제가 참 어려운것 같다. 대부분의 소설은 과거체이므로 기본적으로 과거체로 썼지만 현장감과 생동감을 살리기 위해 현재체를 섞어보았다. 처음에는 그럴듯 해보이였는데 계속 쓰다보니 중구난방, 오합지졸이 되었다. 결국 문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글처럼 보였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6번의 글처럼 현재와 과거가 혼재되어 있을때의 그 느낌을 살려 쓰고 싶다.
7
언니에게 언니부부의 그림을 보낸지 며칠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다. 그렇게 마음에 안드는 것일까.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겠다.
8
나이가 있으신 분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60을 앞두고 계신 여성분인데 지금 현재 할일이 딱히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하셨다. 그분은 요가를 아주 잘하시는 분이다. 나보다 훨씬 유연한 몸을 가지고 계시다. 운동외에는 자아실현을 위한 일을 한게 몇십년이 되었다며 허무한 미소를 보여주셨다. 생각해보니 요즈음만큼 내가 뭔가에 몰두하고 즐겨본 적이 있었던가 싶기도 하다. 나는 늘 스팀잇이 노후대책이라고 말하는데 정말 노후대책이 맞는것 같다. 경제적인 부분 뿐만이 아니라 생활적인 부분에서도 의욕을 심어주고 동기를 일으켜주는 신기한 마법과도 같다. 스팀잇은 나의 생활을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게 만들어준다. 내가 이렇게 생기발랄한 적이 얼마만인가. 그분에게도 스팀잇을 소개해 드려야겠다.
9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선한 존재라고 믿는다. 간혹 듣게 되는 나쁜 인간들을 보면 왜 인간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는지 그를 둘러싼 환경에 주목해 본다. 그리곤 그런 선택을 할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내서 동조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내가 사람에 대한 평가나 비판을 하지 않는 이유이다. 잘하지도 못할 뿐더러 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팀잇에 와서 두번째로 인간에 대한 평가를 내리게 되었다. 한번 잃어버린 신뢰는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인간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10
며칠간 소설쓰기에 몰두해서 그런가, 알콜이 부족해서 그런가, 몸살이 왔다. 간만에 찾아온 낯선 느낌이 싫지만은 않지만 덕분에 온가족이 아침을 생략했다. 느즈막히 일어나 밥을 먹고 나니 힘이 났다. 카페인을 열심히 채워 주말장을 보러 다녀왔지만, 무리였다. 몸살은 나에겐 열심히 살고 받은 훈장과 같다. 웬만하면 아프지 않는데, 잔병치레는 원래 하지 않는데다 정신력도 나쁘지 않아서이다. 흐릿한 날씨가 오늘 나의 컨디션과 같아서 딱히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고 하루를 보낼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