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나라 국민들의 공분을 일으킨 사건이 있죠. 어느 분의 항소심에서 결국 집유로 풀려난 사건입니다.
어느 분의 말대로 법리적으로 해석했을 때의 문제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 속에서 불합리의 원인을 찾으려 하고 그렇게 분노하고 있죠.
원래대로라면 '법' 하면 생각나는 것은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는 말이 떠오르겠죠.
아니, 그렇게 떠올려야만 합니다. '법'이란 말이 가진 의미는 '공정한 심판'이기 때문이죠
물 수(水)가 변형된 삼수변과 갈 거(去)가 합쳐진 글자죠.
그러나, 본래의 '법'은 우리가 아는 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아시나요? 옛날 '법' 글자는 이렇습니다.
이 녀석의 정체는 바로...
'해태'지요. 이 글자의 정체는 바로 '해태 치', 시비와 선악을 판단할 줄 알고 의롭지 못한 자를 뿔로 받아버리는 공명정대한 짐승입니다. 따라서 이 글자를 쓸 당시에는 법률보다는 법도에 비춰봤을 때 해태처럼 공명정대함 아래 내려지는 심판 내지는 엄벌을 표방한 글자였던 셈이죠.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 글자에 해태가 사라졌습니다. 물론 글자를 쉽게 쓰기 위해서 변한 건 사실이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생겨난 법률들은 엄벌보다는 '권리 보호', '무고한 피해자 발생을 줄임' 등의 보호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에 자연스레 사라진 것이겠지요.
그래서일까요. 과거의 법은 사소한 범죄에도 적용되는 엄벌과 심판이 너무 잔혹했기 때문에 차츰 공정함을 잃어버렸으나, 현재의 법은 사회 통념 상 용납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인권 보호에 집중한 반작용으로 공정함을 잃어버렸습니다. 물론 돈,양형기준표 등 외적인 요소가 있는건 덤이구요.
어느샌가 현재 우리나라에선 만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은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되었고 급기야 '법은 국민들을 위해 있는게 아니라, 그걸로 먹고 사는 사람들(특히 법학과)을 위해 있다'는 비아냥이 들려오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저 말은 어느 교양과목 교수님께 실제로 들은 비아냥입니다.
해태가 전설의 동물 내지는 환수(幻獸)였기 때문일까요. 상상 속의 동물이 지닌 태생적 한계가 '공정함'이란 부분에서 여과 없이 제대로 드러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쓴 제목 그대로 법과 공정함은 양립하기가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인 '법'으로는 환수 해태가 의미하는 '공명정대함'을 제대로 표현하기가 어려웠겠지요.
참, 이번 사건을 보면서 여러모로 씁쓸한 마음이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