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에 다녀온 것을 여행기 삼아서 적은 것으로 지금 갔다 온 것이 아닙니다.
흔히 사극에서 말하는 종묘사직 중 하나인 '종묘', 이 곳에 갔을 땐 유달리 흐린 날이었습니다.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분리하는 듯한 하늘의 흐릿한 모습은 단촐하고 쓸쓸해보이는 종묘 가는 길을
엄숙함으로 포장하기 딱 좋은 날이었습니다.
조선 시대의 역대 왕들의 신위가 모셔져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종묘(宗廟)입니다. 그래서 종묘라고 하면 무덤(墓)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무덤이 아니라 사당입니다.
종묘는 관광객들이 마구 밟고 다니는 터라,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기 쉽다는 판단을 내렸던 탓인지. 지금은 해설사와 함께 시간제로 관광하는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해설사를 통해 알게 된 이 길의 정체가 있습니다.
이 길은 바로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한 길인 신로(神路), 이 때문에 종묘 관련 행사가 있을 경우 가운데는 무조건 남겨놓습니다. 그 길이 바로 망자를 위한 길이기 때문이죠. 그 왼편과 오른편에 망자와 관련된 생자들의 길이 있는 셈이지요.
첫번째 사진과 같은 건물로, 종묘의 핵심 건물인 '정전'입니다. 역대 제왕과 왕후들의 신주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한 눈에 담기 힘들어 나눠서 촬영해야 할 정도로 거대한 건물이자, 단일 목조 건축으로는 가장 긴 건물이라고 합니다.
이 건물의 건축 방식은 왕의 숫자가 늘어날 때마다 계속 방이 늘어나는 형태로, 그래서인지 기둥마다 오래된 정도가 다른 걸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만약 조선 왕조가 존속되었다면 아마 정전이 늘어났거나 일부 신주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건물의 웅장함이 엄숙함 또한 느끼게 합니다.
두 번째 핵심 건물인 영녕전입니다. 이 곳은 옮겨진 제왕들과 왕후들의 신주 그리고 추존된 제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시고 있습니다. 당시 관습으로는 5묘제로 인해 정전에서 나와야 하는 신주가 있는데 그것을 모시기 위해 건립된 건물입니다. 크기는 정전과 비교하면 좀 작지만 옮겨진 신주들을 모시는 건물이다보니 구성은 정전과 비슷해서 엄숙함은 여전하지요.
여기서 재밌는 사실이 있는데, 제왕의 업적이 뛰어나거나 중요하다고 판단될 때는 옮겨야 할 신주임에도 불구하고 정전에서 나오지 않는 신주가 있습니다. 이를 불천위(不遷位)라고 하는데요. 한마디로 너무나도 중요해서 영원히 정전에 모셔야 하는 '무지 중요한 분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세도 정치 때는 자기들 맘대로 불천위를 설정해버리는 바람에 그 이름이 퇴색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순조~철종 시기엔 불천위라고 해봤자 그다지 못미더운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종묘를 나오면서, 조선 시대의 암울함만을 기억하고 있던 누군가에겐 엄숙하고 정중한 기운을. 그 조선 시대를 연구하는 분들에겐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는 좋은 체험을...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던 일반인에겐 새로운 느낌과 왕실의 사당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흐린 날의 종묘는 제 개인적으로는 정말 만족스러운 날씨였습니다. 죽은 자를 위한 사당이기에 쓸쓸함이 늘어났지만, 반면 왕실의 기틀을 유지하는 정신적 지주 역할도 하기 때문에 엄숙함 또한 늘어났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있다면 '종묘제례악'을 실제로 들어보고 싶군요.
2일차인 종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