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루스.
소년과 소녀는 궁지에 몰렸다. 라퓨타를 이용해 세계를 정복하려는 악당과 마주치고 말았다. 그는 그 어린 소년 소녀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라퓨타 왕가의 후손이었던 그 여자 아이는 소년과 손을 잡고 함께 주문을 외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라퓨타를 파괴하는 주문. 하늘에 떠있는 섬 라퓨타는 빛을 내며 무너져내린다.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의 이 장면은 정말 다시 보아도 명장면이다. 패권적인 국가 질서의 끝은 이렇다고 보여주는 것 같다.
나는 근대 시대의 이상으로 포장된 인간 야욕이 끝장 나는 결말, 모두가 손에 넣으려 했던 이상적인 그것이 자기 파멸에 이르는 결말을 좋아했다. 에반게리온에서 인류보완계획이 실패하고 지구에 인간 둘 만이 남는 결말을 좋아했다.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가 모르도르의 깊은 용암에 빠져버리는 장면을 좋아한다. 토르가 백성을 지키기 위해 자기 행성을 파괴하는 악령을 부활시키는 장면을 좋아한다. 라퓨타의 딸에 의해 라퓨타가 파괴 되는 장면을 좋아한다. 나치의 패배와 제국주의 국가의 패망을 좋아한다. 근대 시대 이상의 몰락을 사랑한다.
인간 이상의 허망함과 유토피아 꿈으로 먹칠된 비성찰적인 역사에 대한 비판을 듣는 것에 감동하고 좋아하면서도 그런 시대가 막을 내리고 열린 현대시대는 영 심장을 뛰게 하지 않는다. 근대시대의 끝장남에 희열을 느끼는데 이상하게 요즘 사회가 달갑진 않다.
요즘 시대는 거대한 이상 선전과 체제 찬동 문구가 사라진 대신 한 끼 자기가 먹은 음식 사진이 멋지게 진열되는 시대가 됐다. 인스타그램 감성 시대다. 리즈먼이 말한 고독한 군중의 시대다. 사람들은 '뜻'으로 뭉치는게 아니라 '통한다'는 일시적인 감정을 사기 위해 소비되고 그에 박자를 맞추어 소모적으로 살고 있다. 리즈먼의 타자지향적 인간, 불안한 소속감에 자기 존재감을 두지만 자신이 뒤떨어질까봐 계속 눈치보는 이런 사람들은 타인과 항상 연결되어 있으면서 사실 단절된 것보다 더 외롭다. 좋아요 수천 개가 달리고 공유되는 세상이라도 같은 고통에 맞서 일어나 함께 하기에 이런 사람들의 유대는 너무 빈약하다. 나도 리오타르를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포스트모던 존재양식의 사람들은 시민혁명을 이뤄낸 근대인들보다 세련되지 못하고 더 약하다.
아마도 나는 여전히 세상을 동화같이 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선과 악이 뚜렷한 세상에 살면서, 형제들과 함께 절대 악에 맞서 싸우고 싶고, 사우론의 눈깔을 향해 칼을 들고 싶다. 헤비메탈을 들어도 유치찬란하게 어둠의 군주와 맞서 싸우는 랩소디의 에메랄드 소드 가사와 웅장한 음악들을 좋아한다.
나이를 먹어가고, 상상계적 자아가 상징계를 거쳐가면서 깨닫는다. 세상의 선역과 악역은 디즈니 영화처럼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걸. 사람들은 손가락이 다친 사람의 고통에는 기꺼이 도우려 들지만 얼굴이 함몰된 사람에게는 시선을 피한다. 5000원 앞에서는 정직하지만 5억 앞에서 정직한 사람은 없다. 사람은 뚜렷이 착하지도, 뚜렷이 나쁘지도 않다. 무엇보다 정의의 편에 서서 악당들을 퇴치해낼 줄만 알았던 자신 속에서도 불의함과 이불킥하게 했던 일들을 자주 본다.
그럼에도 사실 뒤쳐지는 것이 불안하면서 쿨한 척, 잘 먹는 척, 다 있는 척 하는 스노비즘적인 현대인들은 멀미가 난다. 당신이 소외 되는 일에도 목소리를 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당신과 같은 일을 겪었다고 말하는 움직임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나도 그래"는 타인의 "우와"를 많이 사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솔직한 용기를 내는 것은 좋아요 몇 개를 받는 것보다 훨씬 더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