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루이비통 장갑
친구가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루이비통 장갑을 선물해주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루이비통은 가방 만드는거 아니냐 장갑도 만드냐"고 장난스럽게 물었던 내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성의없고 책임을 다하지 않는 남자친구가 된 것만 같았다. 어쩌겠어 나는 군인인걸. 이런 말로 혼자 위로해보지만 남친한테 선물 받은 명품 장갑을 끼고 있을 친구들 사이에 내 여자친구가 있을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인터넷에 루이비통 장갑을 검색해보았다. 친구가 자기여친에게 사주었다는 모델은 70만원이 조금 넘는 것이었다. 장갑의 목적과 기능을 따졌을 때 그 장갑은 비효율적인 물건인게 틀림없다. 예쁘고 손을 따뜻하게 하는데는 그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가격의 장갑들이 더 많이 준비 되어있었을 것이다. "너 돈 많은 것도 아니잖아.. 왜 그렇게 무리했어?" 친구가 대답했다. "여자들은 이래야 좋아해. 존중받는다고 느낀다고." 글쎄. 내가 여자였다면 "지금 여자 무시하냐!" 라고 욕지거리를 날려주고 싶은 말이었지만 조금은 생각에 빠지게 하는 말이었다.
2 . 기호의 논리
루이비통은 뭐가 다른 것인가?
소비시대는 모든 사물을 기호화한다. 우리는 장갑의 질을 보고 구매하지 않는다. 브랜드와 로고를 보고 산다. '이것은 따뜻한 장갑, 저것은 덜 따뜻한 장갑이라서'가 아니다. '이것은 루이비통 장갑, 저것은 골목상권의 장갑이라서'다. 이것을 기호의 논리라 하자. 기호는 사물(장갑)에 의미를 부여하고 무수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 작용에서 루이비통은 당신의 여친을 빛나게 해줄 70만원짜리 기호가 되는 것이다. 그에 반해서 골목상권 장갑은 흔하디 흔한 기호가 되는 것이다.
기호화 된 소비시대에서 사물의 용도는 사물의 기호가 가진 사회적 의미만큼 중요하지 않다. 루이비통 장갑을 두고 가격에 비해 통기성이나 내구성이 떨어진다고 욕하는 사람이 없는 이유는 루이비통이 그만큼 완벽해서가 아니다. 소비자들이 원한 것은 완벽한 장갑의 기능이 아니라 루이비통 브랜드의 기호로서의 인정이니까
기호의 논리는 명품소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내가 중학생때 친구들은 모두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었다. 신발은 나이키, 뉴발 아니면 아디다스를 신어야한다. 역설적이게도 다원성 혹은 다가치성으로 대변되는 현대 사회가 소비문화에서는 일획적 성격이 나타난다. 그 이유는 소비기호의 무수한 차이 사이에는 계급이 정해져 모두가 타인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소비는 물적 필요충족이 목적이 아니라 타인의 욕구를 욕망하는 형태가 되었다.
3 . 소비기호로서 소비되어가는 사람들
과거에 (마르크스는 반대로 말했지만) 잉여생산량이 늘어나면 세상이 평등해질 것이라 믿었던 순수했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우리가 열 명인데 장갑은 한 개 밖에 없어서 불평등한거야. 장갑을 열 개 만들 수 있게 될 땐 우리 모두 똑같이 따뜻해질거야." 라고 믿었던 것이다.
근대의 과학기술발전과 그에 이어지는 산업혁명을 통해 인류는 모두에게 장갑을 열개씩이라도 선물해주고도 충분할 기술과 힘 모두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물건은 더 이상 쓸모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기호의 소비자가 되어 이제는 충분해진 물건으로 또 다시 가난한 사람과 부한 사람을 구분짓고, 가난의 기호를 가진 사람들을 계속 차가운 구석에서 웅크리도록 만들었다.
재밌는 것은 물건에 기호를 붙이며 그 기호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점차 소비기호에 흡수 된다는 것이다. 루이비통을 갖지 못한 남들에게 '루이비통을 가진 나'는 주체가 아닌 대상이 되어 장갑과 비슷한 또 하나의 기호로 전락한다. 소비자의 주체적 초월성을 사물에게 빼앗겨버리는 것이다. 사물에 대한 인간의 초월성이 사라져버린 시대에는 번지르한 겉모습 뒤에 텅빈 인간관계와 천박한 물욕만이 남는다.
선망의 존재가 되고 싶었던 소비가 역설적으로 자신을 물품화 시키는 것이다. 풍부함을 얻은 대신 영혼을 판 대가로 사람들은 물건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