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365일 24시간 전기와 함께 살아간다. 전등과 냉장고, 오디오, PC, 무선청소기, 스마트폰 등 모든 일상 가전이 전기를 먹고(?) 살기 때문...
그런데 만약 지금 당장이라도 전기가 끊겨 버린다면, 우리의 표정은 어떻게 바뀔까?
PC에서 작업하던 프로그래머는 작업한 것을 모두 잃고 자판에 손을 얹은 채 멀뚱멀뚱 PC모니터만 바라보게 될 것이다. TV를 보던 사람도, 음악을 듣던 사람도 등등...
그런데 만약 이 전기가 10분, 20분, 1시간, 하루, 한달, 3달, 1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는다면?
이런 설정에서 시작한 영화가 바로 <인투더 포레스트>이다.
도심을 떠나 깊은 숲 속에 집을 짓고 사는 아빠와 두 딸,
그런데 갑자기 밤에 전기가 나간다.
이들 뿐 아니라 송신소에서 나오는 전기로 살아가는 3억 여 명의 인구가 동시에 암흑 속에 갇힌다.
댄서를 꿈꾸며 춤 연습에 몰두하던 언니(에바)는 춤을 멈추고, 투명 디스플레이 영상으로 입학시험 퀴즈 문제를 풀던 여동생 넬도 당황한 나머지 연신 언니를 불러댄다.
전기가 끊긴 상황에서 벌어진 상황들, 이를테면 양초로 밤을 지새야 하고, 냉장고에 든 음식이 부패해 가고, 물이 나오지 않고, 마을 식료품 가게를 찾았지만 약탈과 폭동으로 텅 비어 있는 상황, 집과 마을을 오가는 유일한 교통 수단인 차를 움직이는 주유소의 기름마저 바닥난 상황들
이러한 상황들은 두 자매를 공항상태로 몰아간다. 그들에겐 이전에 전혀 경험하지 못한 원시사회였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땔감용 나무를 자르다 전기톱에 다리를 벤 아빠는 과다 출혈로 다음날 죽게 되고, 에바는 여동생 넬의 남자친구에게 강간을 당한다. 집의 지붕은 꺼져 내려앉고 곰팡이가 슬어 더 이상 거주하기 힘들어진다.
이런 상황들을 연출해 영화가 보여주려고 한 것이 뭘까.
다름아닌 '강한 여성상'이다.
남성을 철저히 배제하거나 여성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가 된 사회에서 여성의 힘만으로 고난을 헤쳐 나가는 스토리에 감독이 꽂혔던 것.
하지만 남성들을 배제시키는 과정에서 여성의 강인함 보다는 냉정함, 연약한 여성들이 고난을 헤쳐나가는 과정은 강인하지만 다소 지나치게 과장된 것으로 비춰진다.
전기가 나가자 넬은 가장인 아빠를 배제시키고 언니부터 찾는 것도 그렇다. 숲 속에서 장작으로 쓸 나무를 베다 전기톱에 다리가 베어 과다 출혈로 죽어가는 아빠를 차에 태워 마을로 가서 살리려 하지 않고 밤새 곁을 지키다 죽은 아빠를 다음 날 바로 땅에 묻는다.
무덤을 얼마 파지도 않았는데 손에 심한 물집이 잡히고, 넬은 화단에 씨앗을 심으려고 삽질을 하다가 허리가 부러지는 것도 과장된 설정으로 보인다.
동생 넬의 남자친구가 언니 에바를 강간하고, 에바는 큰 고민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을 것을 결심하고, 숲 속 오지에서 단지 넬의 도움으로 분만을 한다. 둘은 지붕이 무너지고 곰팡이가 슨 집을 소각하고 간단한 짐만 챙겨 숲 속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간다.
마치 일련의 스토리가 우발적으로 연출되고, 무리하게 정리되고, 다음 상황으로 넘어가면서 지나치게 의도한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고 그 메시지가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영화의 막바지에서 에바가 힘겨운 상황을 정리라도 할 모양으로 넬에게 던진 질문에서 난 이 영화의 또 다른 메시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 온 기간은?"
"우리가 전기를 사용해 온 기간은?"
우린 이걸 생각하고 살지 않는다.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온 기간은 400만~500만 년 정도다. 이 기간 중에 우리가 전기를 사용해 온 기간은 고작 최근 140여 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오랜기간 전기와 함께 진화라도 해온듯 한 시라도 전기가 없는 세상을 상상 조차 하지 못한다.
나날이 발전하는 문명을 환호하고 쉽게 받아들이고 익숙해져 가는, 그래서 인간의 야성과 존재감을 잃어가는 인류의 나르시즘에 작은 한 방을 먹였다는 점에서 호쾌하다. 사실 내가 한 방 먹었다.
사실 우리는 수십년을 살면서도 단 10분도 자신의 본질과 인간성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