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허파에 바람든 날
2. 김칫국 들이키던 나날들
3. 헤드헌터에게 그리 적합치 않았던 상품
4. 이상적이진 않지만 이거라도 한 번
5. 첫번째 전화 인터뷰는 지나가고
6. 다시 처음부터 맨 땅에 헤딩
7. 인터넷으로 보는 Python 알고리즘 시험
8. 2번째 기회는 좀 더 능숙하게. 하지만
9. 뒤에서 뭐라도 하려고는 했었지 에서 이어집니다.
전편 줄거리
어느날 우연히 헤드헌터에게서 연락을 받아 뉴욕 금융계라는 신세계에 눈을 뜨고 행복한 상상에 즐거워하지만, 시간이 지난 채 아무 소식이 없자 불안감이 커진다. 그래서 그 헤드헌터에게 연락을 취했더니, 기대치 않았던 채용 공고를 하나 받게 되었고, 전화 인터뷰까지 하게 되었으나 진전이 없었다. 이후 내가 할 수 있어 보이는 Python Developer라는 직업에 도전하지만 인터넷을 통한 테스트를 망치게된다. 2번이나. 이후 내 자신을 돌아보며 다음 기회를 노린다.
이 회사를 알게된 것은 우연이었다.
이 회사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씌여있다.
We are mathematicians, scientists, engineers, and business professionals striving together to provide superior results for our investors.
우리는 수학자, 과학자, 공학자, 그리고 경영 전문가들이 함께 노력하여 투자자를 위해 뛰어난 결과를 가져오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We are a fully research-driven company and every member of the research staff has an opportunity to contribute directly to the company's bottom line.
No knowledge of finance is required.
우리는 기본적으로 연구에 기반한 회사이며, 모든 직원은 회사에 직접 공헌할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금융에 대한 배경지식은 필요 없습니다.
Our firm is not your typical Wall Street concern, but instead is a small group of former scientists and engineers with a unique approach to global markets.
우리 회사는 당신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월스트리트 회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전직 과학자와 공학자가 작은 그룹을 이뤄 세계 경제에 우리만의 방법으로 접근합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 마음은 다시 불타올랐다. 이 회사의 이미지가 좋았고, 이런 문구들이 마치 나를 환영하는 것 처럼 느껴졌다. 회사 위치도 찾아보고 여길 다닌다면 어떨까 하는 즐거운 상상에 푹 빠졌었다.
이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한 것이 12월 중순이었는데, 크리스마스가 지나도록 전혀 연락이 없어서 뜨거웠던 마음은 급속도로 식어버렸다. 그렇게 새해를 맞았다. 그런데 아직 끝난게 아니었다.
1월 둘째 주에 연락이 왔다. 전화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완전 땡큐였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소개 등 몇 가지 예상 답변들을 준비했고, 드디어 대망의 전화 인터뷰 시간이 찾아왔다.
전화 인터뷰 초반은 예전 다른 곳의 인터뷰와 별 차이가 없었다. 내가 뭐 하는 지에 대한 몇 가지 질문과 답변이 오갔던 것 같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초반에 어떤 얘기가 오고갔는 지 자세한 기억이 지금 남아있지 않다. 왜냐하면 후반부에 그 사람이 내게 한 하나의 질문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게 물었다. 나에게 수학적 혹은 통계적으로 특별한 기술 (specialized skill)이 있냐고.
음...
누군가 내게 통계 잘 하냐고 묻는다면, 난 보통은 잘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과학 연구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가설의 검증이고, 가설의 검증은 보통은 통계적 테스트를 통해 이뤄진다. 흔히 말하는 t-test, F-test 이런 것들 말이다. 그리고 실제 데이타는 통계 수업 시간에서 배우듯 서로가 독립 independent이 아니므로 서로의 연관성에 반비례하여 자유도 degree of freedom을 줄이는 일도 흔히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선형 회귀 linear regression, 상관 관계 분석 correlation analysis, 주요 인자 분석 Principle component analysis 등 여러 통계적 방법들을 동원해 자료를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나의 기술 또는 지식들이 특별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대답하기 힘들다. 아니 솔직히 특별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연구를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 주변 동료들도 다들 하고있는 것들. 그런 것들이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질문에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하긴 했을 것이다. 아마 그냥 시계열 time series가 어떻고, 시공간 spatio-temporal이 어떻고 뭐라고 하긴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바로 알아챘을 것이다. 특별한 게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나의 자신 없어하는 답변 태도를.
이 부분에서 난 날개가 확 꺾였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아마도 수학적 모델링을 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나는 그런 능력이 부족할 거란 사실을 깨달으며 '안되나보다' 하는 부정적 기운에 휩싸였다.
이 질문 후에는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
나에게 무언가 질문 없냐고 해서, 너희들은 어떤 데이타를 분석하냐고 물었더니 비밀이라 가르쳐 줄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그리곤 자기네 회사는 지원자에게 친절(?)해서 조만간 되면 된다 안되면 안된다 알려준다고 했다. 이 얘기를 들으며 '역시 좋은 회사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안될 사람에게 희망 고문을 하진 않는다는 뜻이니까.
그렇게 인터뷰는 끝났다.
그리고 이후 연락을 기다렸다.
99.9% 안될 것 같았지만 그래도 0.1%를 기대하며 답을 기다렸다.
1주가 가고, 2주가 가고, 1달이 가고...
답이 안온다.
1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답은 안왔다.
뭐였을까 그 사람은. 왜 굳이 마지막에 안되도 알려준다는 말을 덧붙였을까? 어차피 답 안줄거면서. 필요 없다고 하기에는 조금 아까워서, 애매해서 여전히 들고있는 걸까? ^^
이 글을 준비하며 그 회사 홈페이지에 다시 가보게 되었다. 1년도 더 지난 지금도 같은 채용 공고가 홈페이지에 있었다. 이런게 상시 채용인가보다. 필요해서 뽑는게 아니라 최고의 인재가 지원했을 때 놓치지 않는 그런 구조인가 보다. 그래서 문턱이 높나보다.
다시 한 번 이 회사에, 아니 이런 종류의 회사들에 생각해본다. 가게되면 과연 어떤 일을 하게될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일까? 재밌을까? 월급을 지금의 2배 정도 벌면 없던 재미도 생길까?
모르겠다. 내 마음엔 물론 아쉬움이 있다. 그 인터뷰에서 특별한 거 없어도 자신있게 말했어야 했을까, 샘플 데이타라도 줘보라고, 분석하는 시험이라도 보겠다고 더 매달렸어야 했었을까.
그런데 사람이 또 간사한게, 그쪽은 지원하는 것 마다 다 안되고, 지금 있는 곳은 다행히도 계약이 몇 년 더 연장되면서, 지금 여기도 괜찮다고 위로를 해본다. 거긴 너무 바쁘겠지. 거긴 스트레스가 많겠지. 지금 여기만큼 여유가 없겠지....
인생은 모르는 거라고 한다. 앞으로 어떤 좋은 일들과 나쁜 일들이 닥쳐올지. 다만 내가 두려운 것 한가지는, 나이가 들어갈 수록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 그리고 새로운 환경으로 옮기는 것, 이런 일들이 더 어렵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하는게 좋지 않을까. 40대에 접어든 지금 못하면 앞으로는 더 힘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물론 받아 주는 곳이 없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지만.
(끝)
(다음엔 부록처럼 금융계가 아닌 다른 분야의 인터뷰 경험을 간략히 정리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