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만취해서 토했으면 조용히 들어갈 것이지...

deer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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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와서 엘레베이터 출입구 쪽으로 가는데, 대형 SUV 하나가 길을 막고 서 있었다.

운전석과 조수석 차문이 다 활짝 열려 있길래 누가 내리는건가? 하고 잠시 기다렸는데 아무 움직임도 없음.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뭐 이정도면 충분히 가깝게 왔으니, 더 갈 것 없이 뒤쪽에서 적당한 데 골라야겠다 생각하고 주차하고 나오니, 대형 SUV가 엘레베이터 출입구 쪽의 장애인 주차위치에 옮겨져 있었다.

그것보다 더 이상했던 건... 마르고 키 큰 여성의 좌측에서 남성이 부축하면서 천천히 내 앞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최근에 내가 발을 접질렀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맨 처음에는 다리를 다쳤나? 하고 보는데 뭔가 이상했다. 이건 특정 부위를 다쳐서 부축한다기보다 그냥 몸을 못 가누는 사람을 지탱하고 가는 느낌인데.

그들은 대형 SUV 우측을 지나 아파트 출입구 쪽으로 가다가, 부축하던 남성이 여성을 SUV 사이드 미러를 붙잡고 기대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응? 차에 타는 것도 아니고 차에 기대고 있으라..고?

지나가면서 보니 여성은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보였고, 사이드 미러를 잡고도 몸을 잘 지탱하지 못해서 차 앞 유리창에 손을 허우적대기도 했다.


별로 엮이고 싶지 않아서 그냥 지나쳐서 카드키를 대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서 엘레베이터를 기다렸다.

엘레베이터가 오는 데 꽤 오래 걸리길래 아까 그건 어떻게 됬지? 싶어서 밖을 보니 부축하던 남성이 여전히 사이드 미러를 안고 기대 있는 여성 뒤에서 부축하며 잡아주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술취한건가? 생각하면서 더이상의 흥미를 잃고, 스마트폰을 켜고 ROR에 접속하고 있었다. 그러다 엘레베이터가 도착해서 탑승.


갑자기 누가 막 소리를 질러서 엘레베이터를 타다가 쳐다봤다. 아까 부축하던 남성같은데...

"아니 이거 막 찍으면 어떻게 해요!"

처음엔 이해가 안되서 그냥 쳐다보고 있었더니, 계속 소리를 지르는데 왜 사진을 찍냐고 하는 것 같았다. 사이에 유리문이 있어서 전달이 명확하게는 안될 수도 있었으나 대략은 들렸다.

엘레베이터 문 열림 버튼을 누르고, 저 안찍었는데요? 라고 했더니 삿대질을 계속 하는 것으로 보였다.

순간 열이 받기 시작해서, 나도 같이 목소리가 올라갔다.

"아니 난 그냥 핸드폰 하고 있었다니까요? 내가 핸드폰 보여줄까요? 당신이 여기 찾아봐서 안 나오면 어떻게 할건데?"

여전히 나를 쏘아보는 채였지만, 상대가 말을 멈췄다.

"아니 없으면 어떻게 할건데요? 그리고 난 여기 XXX호 주민인데, 여기 사세요? 와서 얘기하시던가."

라고 말하자 상대가 더이상 말이 없었다. 때마침 엘레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는 올라갔다.


집에 와서 생각하자, 어이가 없고 화가 나는것도 그런데, 이거 혹시 범죄 아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갑자기 지나가는 사람에게 찍냐고 시비를 걸었을까.

그리고 주민이면 카드키 대고 들어와서 이야기했을텐데, 유리문 밖에서 이야기한 것을 보니 여기 사는 것 같지도 않은데.


경비실에 전화를 했다. 지하 1층에서 지금 좀 수상한 남성이 내가 들어올때 시비를 걸었고, 정신을 못 차리는 여성이 함께 있으니 확인 좀 부탁한다고.

몇 분 후 전화가 왔다. 경비 아저씨의 말씀은 이러했다.

  • 자신이 전화를 받고 바로 내려가보니 엘레베이터에 토한 흔적이 있었고, 지하 1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 장애인 자리에는 SUV, 번호 1234가 주차되어 있었는데 이 차는 YYY호 사모님 차다. 이 SUV는 몇시 몇분에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 SUV 건너편 주차장 뒷편에도 토한 흔적이 있었다.

  • 토한 것들은 자신이 치웠다.


주차장에 들어온 시간은 내가 도착하기 3분 정도 전이었으니 타이밍이 대략 맞았다. 그리고 인상착의를 대강 확인하자, 내가 봤던 정신히 혼미한 여성은 YYY호 주민인 것으로 보였다.

내가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이후 경비 아저씨가 그 엘레베이터를 타기까지는 2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을텐데 그렇다면 그 사이에 이 분이 엘레베이터에 토하고 귀가한 것으로 추정.

일이 대략 마무리된 것 같아서 CCTV 확인 등을 하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인사하고 통화를 마쳤다.


정리해서 글로 남기다 보니, 상황은 이제 파악이 되는데 아직도 그 남성이 왜 지나가는 주민에게 삿대질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왜 찍냐고 하는걸 보면... 뭔가 찍히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듯한데 그러면 아파트 주차장이나 엘레베이터 입구 근처 같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장소에서 그러고 있으면 안되는 것 아닌가.

또한 부끄럽고 민망한 상황이면 그냥 조용히 넘어가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은데. 왜 이미 지나간 사람을 붙잡고 소리를 질러서 일을 키우는 것인지.

마지막으로... 법적인 해석은 잘 모르지만 만약 내가 설사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었다 하더라도, 그런 공개적인 장소에서 촬영한 것이 문제가 될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죠.


쓰다 보니 만취해서 토한 사람 옆을 지나가다가 괜히 말려서 시간과 감정 허비한 것 같군요.

깔끔하게 일을 처리해 주신 경비 아저씨께 고마움을 느끼며, 그냥 이상한 경우 봤다 생각하고 넘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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