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에서도 미투(Me too) 운동이 한참 진행 중이다. 하나씩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가해자들 중에는 “역시나!”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사람들도 있고, “정말 저 사람이?”라고 두 눈과 귀를 의심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적어도 가해자의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고 배신감에 고통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가정에서 좋은 모습만 보던 가족이 바깥에서는 충분히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고 가족의 나쁜 행동이 밝혀졌을 경우, 무조건 공동책임을 지거나 비판을 받는 것은 안 되지만 그 사실에 대해 인정하고 피해자 입장에서 함께 비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죄를 부정하고 가해자를 옹호한다면 이는 피해자에게는 2차 가해가 될 수도 있다.
예전부터 나는 지인들에게 개인으로서의 도덕성과 사회인으로서의 도덕성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고, 아무리 훌륭한 개인이라도 공인으로서 도덕성이 엉망이라면 정말 질이 나쁜 사람이라고 주장해 왔다. 가장 극적으로 들었던 예는 드디어 다음 주면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는 그분이 집에서는 정말 자상한 남편, 좋은 아빠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문 후유증으로 너무 아쉽게 세상을 일찍 등진 김근태 전 장관님 (보고 싶습니다! ㅠㅠ)도 생전에 자신에게 악랄한 고문을 하던 경찰들이 쉬는 시간에는 점심메뉴를 고민하는 잡담이나 가족과 전화 통화에서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을 보이던 게 정말 힘들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가족과 나쁜 공인으로서의 이중성은 성공한 사람에게서 나타나기 쉬운 것 같다. 성공으로 인한 경제력, 더 나은 배움의 기회와 좋은 환경 등은 가족들에게 큰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반면, 그로 인한 권력이나 힘은 공적인 자리에서 약자인 타인들에게 위협이 되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성폭력이 드러나 비난받고 있는 일부 연예인들이 가족과 함께 출연했던 프로그램에서 보였던 다정한 아빠의 모습을 피해자들이 봤다면 그 자체로도 2차 피해가 되었을 것 같다. 이 경우에도 가족들은 성공한 가장 덕에 방송 출연이나 연예계 진출까지도 도움을 받았지만, 반대로 그 성공이 피해자들을 옥죄는 강력한 악의 힘이 되었다.
물론 예전 왕조 시대나 독재정권 시절처럼 연좌제로 죄 없는 가족들까지 피해를 보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사회인으로서 나쁜 짓을 저지른 경우에 가족이나 지인들이 “우리 OO는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감싸는 경우에는 범죄행위와 마찬가지로 비난을 받아야 한다. ‘가족이니까 괜찮아’라고 조금씩 동조하다가 더 나쁜 행위를 함께 저지르게 되는 경우도 많다. – 지금 감옥에 있는 그분도 자기 아버지는 나라만 생각하신 훌륭한 분이라고 죽을 때까지 믿을 것 같은데, 결국 아버지 못지않은 해악을 나라와 국민들에게 끼치지 않았나!
가족의 이중적인 행태를 알게 되었을 때 가장 현명한 대처는 배우 강동원이 외증조부 논란 때 보여준 것처럼 가족의 행위에 대한 사과 혹은 인정과 본인의 삶으로서 다름을 증명하는 것이다. (강동원 씨는 외조모는 독립유공자 후손이기도 하기 때문에 연좌제가 없어야 하는 좋은 예다.) 그리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돕는 것으로 알려진 마리몬드 대표가 아버지의 성추행 사건이 터졌을 때 그 행위에 대한 인정과 사과를 한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나 역시도 사회생활을 하기 때문에 가정 안에서도 바깥에서도 좋은 사람이고 싶고, 적어도 나쁜 사람은 되지 않기 위해 늘 긴장하고 노력하고 있다. (노력이나 능력이 부족하여 모자란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부디 내 생이 끝날 때까지 부끄러운 일이 없도록 스스로를 잘 통제할 수 있길 바라고, 이 글을 보게 될 여러분들도 그러하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