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쓰는 일기

dakfn(63)
Published in
#kr
Words
416
Reading
2 min
9y
Listen to this post
~3 min

하루도 안 빼먹고 날마다 글을 쓴 줄 알았는데, 살펴보니 빼 먹은 날이 많다. 작년 11월 29일 복귀하고서도 뉴비들이 그런 것처럼, 보상이 별 재미가 없어서 글을 잘 안 올렸다. 그러다 보상이 좀 찍히니 그 때부터 열심히 올렸다. 남들에게는 보상에 연연하지 말라고 해 놓고는 나 역시도 보상의 여부에 따라 성실함이 정해졌으니, 참 모순적인 행태다.

하루에 많을 때는 5개나 되는 글을 올린 날도 있었다. 그러다 점점 줄어 요즘은 한두 개이고, 어제처럼 아예 하루를 건네 뛸 때도 있다. 고정적인 컨텐츠가 없으니 그 때 그때 떠오른 것을 쓰기 때문일 것이다.

뭔가 이거다 싶으면 글을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고, 그렇게 쓴 글은 또 올리지 않을 수가 없는데, 애초에 그렇게 이거다 싶은 글이 나오지 않으면 하루를 공치게 된다. 스팀잇에서 나오는 보상으로 하루 밥값은 했거니 하며 본업을 탱자탱자 방기하는 나로서는 스팀잇에마저 글을 올리지 않으면 꽤나 불성실한 하루를 보내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스팀잇을 그만둔다고 해서 본업을 엄청 열심히 할 것 같지는 않으니 스팀잇이 직업이 되지 않게 하라는 충고를 너무 열성적으로 해 주지 않아주셨으면 한다.)

글을 쓴 짬밥이 있는지라 아무리 쓸 꺼리가 없어도 일단 키보드를 두들기다 보면 글은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면 이게 바로 프로로서의 소양인지도 모르겠다. 아마추어는 영감이 떠올라야만 글을 쓴다지만, 프로는 억지로 쓰면서 영감을 만든다고 한다. 영감이 없었는데, 두들기다 보니 점점 쓸 게 떠오른다.

글쓰기도 재능이라는 분과 그 말에 동조하는 분을 보았다. 글쎄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글쓰기를 시작한지는 30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건 20년, 직업으로 글쓰기를 시작한건 10년째다. 그 전의 나는 글쓰기로 받은 최고 성과가 아마도 중학교 때의 제출만 하면 누구나 주었던 과학 독후감 장려상일 정도로, 그 이전이나 이후나 내가 남들과는 다른 재능이 있어서 특별히 본래부터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처음으로 PC통신 게시판에 글을 올려 대박을 친 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여기서 말한 본격적으로란 최소한 100kB 이상의 글을 쓴 이후를 말한다.) 3년 후의 일이었고, 10개 중에 1개가 잘 쓴다고 칭찬을 듣기 시작한 건 10년 정도, 10개 중에 5개 정도를 잘 쓴다고 칭찬받기 시작한 건 20년 정도, 그리고 요즘처럼 10개를 쓰면 8개 정도 안타를 치기 시작한 건 30년 정도가 지나서였다.

책이든 게시판이든 댓글이든 어쨌건 내가 문장을 만든 것들을 분량으로 따지자면 300페이지의 책 100권은 충분히 넘겼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정도 쓰고도 잘 쓴다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재능과 관계없이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사실 다른 사람이 그 정도 쓰면 나보다도 더 잘 쓸게 분명하다. 어떤 분들은 내가 글을 잘 쓴다고 할지 모르지만, 정말 글을 잘 쓰는 재능 있는 분들은 나의 글을 보며 코웃음을 치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쓸 게 없어서 두서없는 난장판으로 횡설수설 하려 했는데, 쓰고 나니 글쓰기에 대한 내용이 되어버렸다. 뭐, 인생이 다 그런 거다. 정신없이 살 때는 모르는데, 지나고 나면 그런 범주의 삶이었구나 하고 정리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억지로 쓰는 일기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