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지인들이 주로 시내라고 칭하는 '반월당역 부근'에 약속이 있어 나갔던 날이다. 집 위치가 애매하기도 하고 시내에서 주차장을 찾아 헤매는 걸 별로 즐기지 않으므로 시내로 나갈 때는 지하철을 탄다. 어쩌다가 역 한 정거장을 더 가서 내리게 되었다. 반월당이 아닌 중앙로역에서 내린 게 몇년 만인지 모른다. 개찰구를 내리는데 익숙하지만, 잊고 있었던 무언가가 보였다.
개찰구 너머 까만색 기둥, 저 원형 기둥은 사건 이전인 2000년대 초반에 중앙로 역을 지키던 기둥이다. 원래는 핑크색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개찰구 바로 앞의 흰색 사각기둥은 사건 이후 까만기둥을 보수한 뒤의 결과물이다. 약속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기둥을 자세히 살피기로 생각하고 '대구 지하철 통곡의 벽'을 들여다보았다.
승차권 발매기 옆의 오렌지색 벽에 난 문으로 들어가면 시커먼 통곡의 벽을 볼 수 있다. 사고 이후 원래의 벽 일부를 보존하고자 만든 공간이다. 참사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도록 당시에 녹아내린 물건들도 전시해두었다. ATM, 혈압측정기, 전광판, 공중전화, 역 내 매점 부스.
추모벽에 보이는 이름들에 가까이 서 본다.
처음에는 저 숫자들을 사고 당시의 나이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아마도 출생연도가 아닐까 한다. 이렇게 보아도 저렇게 보아도 나와 비슷한 나이, 내 지인들과 비슷한 나이, 내 가족과 비슷한 나이들이라 가슴이 아린다. 슬프지 않은 사연이 어디 있으랴. 특히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원조차 확인되지 못한 채 역 한쪽 벽에서만 추모되고 있는 'K 35(여)'님의 명복을 빈다. 사고 당시에 대학생이었던 내가 아이 아빠가 될 만큼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K씨는 어딘가에선 여전히 실종자로, 흔적이 발견된 여기에서는 신원미상의 사망자로 남아있다.
K14의 이름 앞에서도 한참 서성였다. 어쩌면 집을 나서면서 행선지를 이야기 하지 않은 탓에, 사고를 당하면서 미처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지 못한 탓에, 현장에 결정적인 증거를 남기지 못한 탓에, 어딘가에선 ‘이유없이 가출하면서 연락이 끊겨버린 자식’이면서 여기에서는 성별조차 알 수 없는 사망자가 되어버렸다. 숫자가 나이를 말한다면, 그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올해 29세가 되었을 것이다.
내 아이를 어느 순간부터 볼 수 없게 된다면, 작별인사마저 제대로 하지 못한채로 헤어져야 한다면 그건 어떤 느낌일지. 헤어진 다음에, 까맣게 덮여버린 벽에서라도 인사를 하고자 하는 그 마음 앞에 눈물이 났다.
고열에 수화기가 녹아서 늘어져버린 공중전화들
혈압계가 녹아버린 자리에 새로 운 혈압계가 놓여있다. 소화기가 하나 늘었다.
검댕을 덮어쓴 역내 매점.
누군가의 휴대폰과 신발
뇌졸중과 우울증을 앓던 늙은이가 불특정다수와 동반자살하고자, 또는 홧김에 2003년 2월 18일에 일으킨 화재는 당일 09시53분00초에 시작되었으나 승객대피지시는 10시02분48초에서야 이뤄졌고 10시04분00초가 되어서야 본격적인 구조활동이 시작되었다. 192명의 사망자와 21명의 실종자를 남겼고 방화범은 1년 6개월 뒤에 교도소에서 병사했다.
사진을 찍으면서 이 일을 사건이라고 해야할지, 사고라고 해야할지 몰라 한참을 생각했다.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좋지 않은 일'을 말하고 사건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거나 관심을 끌만한 일'이라 한다. 같은 날에 누군가는 사건을 일으켰고 누군가는 사고를 당했다. 내가 본 것은 참사였다. 일상적인 풍경이 예상치도 못하게, 한 순간에 비극으로 바뀌어 버린. 나무위키의 지하철 참사 항목에는 사망자들의 마지막 통화기록이 남아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어무이! 지하철에 불이 나 난리라예."
"뭐하노, 빨리 나온나."
"못 나갈 것 같아예. 저 죽지 싶어예. 어머이 애들 잘 좀 키워주이소."
-아들 박씨와 노모의 마지막 통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