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엔 많이도 다녔다. 친구들에 비해 차를 좀 늦게 산 탓에 운전 자체가 즐거웠던 것 같다. 이미 10여 년간 17만km를 달린 준중형 중고차를 지인 소개로 싼 값에 얻었다. 대충 100만원에 사서 150만원치 정비를 마친 수동 자동차였는데 차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월요일은 주유소에서 두 손가락 사이에 멋있게 신용카드를 끼운 채 ‘기름 만땅요!’를 외치기 위해 도보 5분 거리를 차를 몰고 출근하였고 일요일 밤마다 주유경고등이 점등되기 직전의 상태로 귀가하기 일쑤였다.
운전석과 대시보드는 맨질맨질하게 관리하며 먼지도 자주 털어주었지만 조수석과 뒷좌석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원래 없는 것처럼, 뒷좌석에는 버려도 그만, 놔둬도 그만인 업무 관련 자료들이 항상 널려있었다. 마치 일주일 내내 한 번도 열지 않은 책가방을 다음 주에 그대로 들고 등교하는 학생처럼. 급하게 좌회전을 할 때는 뒷좌석 오른쪽으로 책들이 쏠리면서, 우회전을 할 때는 왼쪽으로, 급정거를 할 때는 한꺼번에 앞으로 시끄럽게 쏟아지며 소리를 내곤 했다. 그 소리가 참 듣기 싫었던 탓에 짐정리를 가끔 했지만 그마저도 귀찮아서 운전을 늘리기로 했다. 책들이 쏠리지 않게 운전하는 방법을 익혀 나갔다. 매일 도요타 86 차량에 두부를 싣고 고개를 넘어가던 타쿠미처럼.
<신속하게 두부를 배달하는 후지와라 두부점>
어느 비오는 평일 오후였다. 경북 고향 동네의 차량등록사업소에서 판매자를 만나서 차량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100만원을 송금했다. 별 거 아니지만 긴장되는(1번 창구에 가서 신청서를 내고, 옆 창구서 고지서를 받아 3번 창구에 등록세를 지불하는 정도의) 일련의 절차를 거쳤다. 녹색 번호판을 흰색 번호판으로 바꾸어야 한다며 새로운 차량 번호를 선택하라는 소리를 들었을 땐, 저 빛 바랜 회색 중고차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듯한 경건함마저 느꼈다. 내 폰 번호 끝 4자리를 신청했는데 직원이 단호하고 크며 낮은 음성으로 ‘그거 없어요. 이거 하세요.’라고 답하긴 했지만.
차량등록이 완료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이 놈이 드디어 내 차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차 구석구석에 내 등과 엉덩이를 비비는 의식을 시작했다. 운전석에 앉아 좌석을 뒤로 젖혔다가 다시 원위치, 조수석에 앉아 의자를 앞뒤로 밀고, 뒷좌석에 앉고 눕고 다시 일어나 앞좌석 머리 받침에 발 올리기, 트렁크에 엉덩이 걸치고 한 번 출렁거리기. 문짝 네 개와 트렁크, 본넷을 모두 활짝 열어놓고 10미터 뒤에서 감상하기. 곰곰히 생각하니 한 가지가 없었다. 나는 차를 사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조수석에 여자친구를 태우고 드라이브를 가고 싶었다. 그래서 바로 전화를 했다. “얘들아, 나 소개팅 좀 시켜줘.”
친구 두어 명에게 억지 약속을 받아내고서야 대구 집으로 자차 1시간 20여분의 거리를 이동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무서워졌다. 수능 치고 바로 운전면허를 따긴 했지만, 당시 서른 조금 넘은 나이가 될 때까지 아버지의 강압에 못 이겨 억지로 서너 번 밖에 운전대를 잡아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도 2차선 도로를 20여초에 한 번씩 시동을 꺼뜨리며 4~5분 정도 기어간 정도였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네 번째 운전이었다. 나는 보았다. 지하차도 오르막 신호대기 중 시동이 꺼지고 차가 뒤로 내려가는 순간 아버지의 눈에 공포가 지나간 것과 빛의 속도로 사이드브레이크를 당기는 아버지의 팔뚝에 선 힘줄을.
그 실력으로 비오는 날 퇴근시간에 경부고속도로와 도시고속도로를 거쳐 달구벌대로를 지나 내가 사는 동네의 주차장까지 이동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도 그 때의 그 용기가 어처구니 없는 짓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사소한 사건 2개를 제외하고는 나는 성공했다. 첫 번째는 톨게이트에 진입할 때 통행권을 폼나게 잘 뽑기 위한 노력이 과하여 차 왼쪽을 긁은 것이고, 두 번째는 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갈 타이밍을 놓친 탓에 대구를 지나 칠곡까지 갔다가 온 것이다. 대구-칠곡 구간에서는 혼자서 많은 걱정을 했다. 이대로 서울까지, 또는 여주까지 올라가는 것은 아닐까. 거기서 내려올 때 또 대구를 놓쳐 부산이나 마산까지 가는 것은 아닐까. 아무데나 주차한 다음 대리기사를 부를까. 다행스럽게도 내 보너스 여정은 칠곡-대구에서 끝났다. 대리기사를 부르지도 않았다.
그 후 많고 많은 시간이 지났고, 친구 중 한 명이 해 준 소개팅에서 만난 사람이 여자친구가 되었고 그녀는 조수석을 차지했다. 조수석에 탄 여자친구는 아내가 되었다. 그리고 역사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장면처럼-제갈량이 유비에게서 관우를 떼어냈듯이, 정도전이 이성계에게서 무학대사를 떼어냈듯이-큰 명분을 세워 내 늙은 차를 내쳤다. 이 늙은 차의 낡은 직물시트에서 날 먼지가 곧 태어날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이 차를 버리고 새 차를 사야한다고 했다.
아아, 어쩌랴. 난 그 차를 100만km까지 탈 생각이었지만 무생물에 든 정을 택하기보단, 내 옆 생명체와의 갈등을 피하는 것을 택했다. 이내 우린 ‘몸에 해로운 낡은 직물시트’를 벗어나기 위해 새 차를 샀다. 집사람의 ‘직물시트 폐해론’에 반항하는 마음으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새 차에도 직물시트를 선택하고 슬며시 눈치를 봤지만(돈이 아깝기도 했기에 동급차량 최하 옵션을 선택했다) 집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아직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새 직물시트’면 괜찮다는 생각이었을 수도, ‘새 차’면 시트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었을 수도, 그냥 '헌 차'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면허는 있지만 운전에 매우 미숙한 집사람과, 운전에는 능숙하지만 옛 차를 버리기 아까운 나의 심리전은 한 번 더 일어났다. 나는 집사람에게 수동운전의 맛을 알려주려 운전연습을 시키려 했고 집 사람은 고의인지 모르겠지만 운전연습 하는 날마다 바쁜 일이 있었다. '새 차를 당신이 몰고, 난 헌 차를 계속 몰고 다닐게'라고 말하려 했지만 '헌...'에서 항상 집사람은 설거지를 한다거나, 급한 일이 생각났는지 자리를 떴다. 먼 거리 출퇴근을 나의 옛 차로 하는 게 어떠냐는 물음에 항상 ‘버스가 더 편해’라고 답했다. 영하 13도의 추운 날에, 콩나물 시루에 25분씩 두 번 몸을 싣고, 그 사이 환승역에서 20분 정도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수고로움이 좋다고 했다. 물론 집사람도 몇 년 후 새 차를 산 이후에는 10분 도보보다 자차운전을 더 좋아하는 사람으로 바뀌긴 했다.
결국 옛 차는 120만원의 높은 가격에 리비아로 팔려갔다. 어느 비오는 날 오후, 캐리어 카가 내 차를 실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영화 ‘워낭소리’의 소를 떠올렸다. 리비아에는 오래된 직물시트와 수동 운전을 즐기는 사람이 좀 있겠지 하는 생각도 했다. 보고 싶다. 갤갤거리며 잘 달리던 내 옛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