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에 과분한 일을 받았다. 어떤 일이든지 그렇겠지만 하면 할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는 요리보고 저리봐도 무섭기만 하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회피하게 된다. 마음 속의 회피욕구를 잘 알면서도 거기 속아준다. 그게 편하니까. 일정은 질질 끌리게 되고 어떻게든 끝에는 완결된다. 내 혼자서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든. 그래서 이 버릇은 아직까지 고쳐지지 않았나보다.
이런식이다. 내가 해야하는 일은 적어도 6~10시간은 필요한 일인데 출근하고 세 시간 뒤에 출장이 있으니 오늘 하긴 글렀다. 그러니 세 시간동안 좀 쉬자. 적절한 휴식은 능률상승의 지름길이지. 퇴근해서 아이를 열시쯤 재우면 새벽까지 여덟시간은 충분히 있으니 저녁시간에는 아이와 놀자. 그게 아빠의 일이지. 아이가 좀체 잠이 들지 않다가 열한시쯤 잠이 들었다. 아, 피곤하다. 지금 괜히 부스럭거리다가는 아이가 깰지도 몰라. 그러면 일이 복잡해지지, 조금 더 누워있다가 일어나자. 음? 잠시 눈을 붙였는데 벌써 새벽 두신가? 어허허허 이거 서너시간으로는 어림 없으니 그냥 좀 더 누워있자.
꿈을 꿨다. 나는 피크타임의 놀이동산에서 처럼 구불구불한 줄을 서 있었는데 저 앞에, 똑바로 섰다면 끝이 보이지 않을만큼 먼 줄의 시작지점에는 시뻘건 괴물이 시퍼런 언월도를 들고 서 있었다. 그는 줄을 선 사람들을 줄 선 차례대로 목을 치고 있었는데 "만약 한 번이라도 일을 제 때 끝내지 못했거나 적절한 품질에 미치지 못했다면 여기 줄을 서라!"라는 외침이 들렸다.
목이 달아나기 전에 얼른 뒤를 돌아 달아나다가 잠이 깼다. 오늘 꿈은 TED 강의보다 더 교훈적이었다. 짬시간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챙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