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계절이 되면 조건반사처럼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봄의 꽃 구경이 그럴 것이고 여름의 물놀이가 그럴 것이고 가을의 단풍여행이 그럴 것이다. 드디어, 겨울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창고 구석에 먼지냄새를 풍기며 숨어있는 박스를 찾는다. 올해는 아이가 '아빠, 나도 같이!'라고 외치길래 나와 아이가 각자 박스의 양쪽 끝을 잡고 화장실로 끙끙거리며 가져간다. 힘은 하나도 안 줘놓고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며 뽐내듯 말한다. "아빠, 내 덕분에 쉽게 옮겼죠?"
그 다음, 샤워기 물을 틀고 함께 씻는다. 싸구려 트리세트라서 올해 3년째 쓰는 트리인데도 기름냄새가 덜 빠졌다. 1년새 창고에서 날아가 버린만큼의 색이 물에 묻어 욕조바닥을 흘러간다. 장식품은 한 번 헹군다음 세면대에 걸쳐 물이 빠지길 기다리고 트리는 베란다에 세워 물이 마르길 기다린다.
"아빠, 이쪽에는 내가 장식품 달고 저쪽은 아빠가 달아놓으세요."
나는 역할분담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달고있는데 아이는 은근히 내가 가져가서 달아놓는 장식품을 신경쓴다. 자기가 한개를 달아 놓는동안 내가 두 개를 달아놓은 게 못마땅한가보다. "아빠, 너무 빨리 하지 마세요."
크리스마 트리는 지금부터 1월 중순까지는 집 거실의 무드등 역할을 할 것이다. 올해는 트리 아래에 아이의 선물을 놓아둘까 싶다.
다음 차례는 고구마다. 안동에서 사 온 와룡 고구마. 지금까지 먹어본 고구마 중에는 가격이나 맛이나 가장 내 입에 맞다. 아이는 트리 앞에서 펄쩍펄쩍 뛰고 나는 냄비를 꺼내 고구마를 올리는데 아내는 나를 말린다. 직화 냄비에 구우면 집에 밴 냄새가 이틀 이상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이번 한 번만 구울게."
맛있게 잘만 먹을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