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 동네마트에서 삼겹살을 좀 샀다. 속이 노랗게 익은 바삭바삭한 알배기 배추 한포기, 깻잎 세 묶음. 집의 냉장고에는 시원한 맥주가 보기 좋게 진열되어있고, 베란다에는 시골에서 받아놓은 마늘도 좀 있다. 고기를 구워먹으려던 순간 청양고추가 없음을 알았다. 여보, 이거 내일 아침에 구워먹자, 고추가 없네.
무슨소리야? 내일 날 밝으면 없던 고추가 저절로 생겨나나? 참 이상하네. 아내는 잠시 궁시렁거렸지만 이내 밑반찬 몇 가지를 꺼냈고 나는 계란을 구웠다. 집에 굴러다니던 양파와 감자를 넣은 된장찌개를 적당히 끓여서 온 가족이 식탁에서 그럭저럭 배를 채웠고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쳐 온 가족이 잠들었다, 나만 제외하고.
나는 고추를 수확하러 국밥집에 간다. 국밥집을 떠올리면 늘 연락할만한 친구가 있나 생각해보지만 항상 없다. 그 시간에 연락해서 연락이 닿아 전화 정상회담을 통해 약속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딱 적정량의 술을 마시고 아쉬움과 피곤함 없이 깔끔하게 헤어질 수 있는 사람은 항상 드물다. 귀찮음 보다는 혼술을 선택하게 된다.
24시간 국밥집과 가까운 집을 원했지만 이사를 두어번 가면서 항상 집은 국세권에 들지 못했다. 이번 집에서는 지하철까지는 도보 8분, 국밥집까지 도보 15분이다. 지하철역과 국밥집의 위치가 바뀌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걷는다. 식당의 문을 열며 시선은 적당한 빈자리를 찾으며 입 밖으로 꼭 필요한 말만 뱉는다. "국밥 하나, 소주 한병요." 눈이 퉁퉁부은 아줌마가 퉁명스러운 동작으로 국밥과 소주, 몇 가지의 반찬을 쟁반에 담아 식탁에 툭 올려두고 간다.
시선은 TV화면과 휴대폰 액정을 번갈아가며 향하고, 숟가락을 쥔 손은 국밥 뚝배기와 내 입을 규칙적으로 오간다. 가끔 젓가락으로 양파절임이나 부추를 떠먹고 소주잔을 입에 털어넣기도 한다. TV에서 나오는 것들은 항상 뻔하지만 매번 재미있다. 3분만 봐도 다음 30분간의 내용이 대충 읽힌다. 그래도 멍하니 응시하며 약간의 재미를 느낀다. 매월, 꼬박꼬박 TV 수신료 2,500원을 한국전력을 통해 KBS에 납부하면서도 집에서는 TV를 보지 않는 탓이다.
뻔한 맛이지만 늘상 맛있다. 다소 기름진 국물의 구수한 MSG 맛과 조금 퍽퍽한 고기와 많이 씁쓸한 소주, 달달한 양파와 매콤한 부추가 잘 어울리는 덕분이다. 가끔 그 맛이 단조로울 때는 청양고추를 반개와 마늘 두 조각을 함께 입에 씹어넣는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가 되었다. 조금 크게 외친다. "여기 청양고추 좀 더 주세요." 술의 영향인지 목소리가 좀 더 커졌다. 소리를 지르고 난뒤 스스로가 흠칫 놀란다. 주로 서너개, 어떤 날은 너댓개를 한 번에 리필해준다. 그거면 충분하다. 3~5분간 남은 국물을 팝콘삼아 OCN이니 XTM이니 하는 채널의 영화를 시청한다. 그리고 주인의 시선을 확인한 후 능청스레 청양고추를 주머니에 슬쩍 넣는다.
다음 날 늦은 아침식사, 고기를 다 굽고나서 밝게 외친다.
"여기 청양고추 있다. 같이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