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 대구 월성동에서의 모임. 항상 생소한 의견을 잘 내는 친구가 '실내 양궁장'을 말하길래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전부가 '에에에엥? 그런 게 있냐?'면서 따라간 실내 양궁장이야기. 다른 동네도 그렇겠지만 요즘 실내에서 스크린을 보면서 간단하게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가게가 많이 생겼다. 스크린낚시, 스크린골프, 스크린야구. 조만간 그 중 몇몇은 대만카스테라나 수입과자 전문점처럼 소리소문없이 없어질 것 같기만 하다. 양궁장은 달서구 월성동 어딘가에서 2개 층을 차지하고 있었다.
20발에 7천원, 30발에 1만원
2개층 중 낮은층. 좀 짧긴 하지만 사로射路가 많다.
4인용 사로, 2인용 사로 등등 커플이나 모임에서 와서 즐길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최근들어 사이가 틀어진 커플에게 권한다. 여기로 데이트하러 와서 미리 준비한 사과 하나를 상대방의 머리 위에 살포시 얹고 나서 "나 빌헬름 텔 같지?"라고 내뱉은 뒤 반응을 기다리면 될 일이다.
명사수라서 먼저 다 쐈는데 일행이 계속 느적거리면 창가에 앉아 내려다보며 조용히 기다리면 된다. 괜히 주변을 얼쩡거리면서 방해하다가 엉덩이에 화살이 꽂히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인원이 많아서 윗층으로 갔는데 과녁이 참 많다. 긴 거리로도 쏠 수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처음 왔다고 하니 짧은 거리로 서도록 안내받았다. 활과 화살이 거치되어 있는데 화살은 돈을 낸 대로 따로 바구니에 넣어주고, 인원에 비해 활이 모자라면 뒷편에서 꺼내면 된다.
얼핏봐도 비싸보일 것 같은 이런 활은 건드리기 전에 미리 가게 주인에게 물어봐야 한다. 물어봤더니 예감대로 "그거 말고 저기 있는 거 쓰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런 활은 주몽이나 김윤후, 황충이나 장합 같은 인물에게 맡겨두고 궁병1, 궁병2는 저기 구석에 있는 나무 활을 들면 된다.
딱 봐도 초보가 써야할 것 같은 활들, 당구장에서 큐대를 세워놓듯이 잘 세워놓았다. 빈 시위로 당기면 활줄의 압력에 의해 활이 분리되면서 다칠 수도 있다고 했다. 그게 사람인지 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전수칙을 잘 읽어보고 팔에 보호대를 찬다.
왼쪽사진처럼 조준점이 과녁의 가운데를 향하도록 왼손으로 활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활시위를 턱까지 당긴다. 솔이 붙어있는 동그라미는 화살을 넣는 자리다. 영점을 맞출 수 있도록 기본 화살 4~5발을 주는데 이게 한 곳에 모여있으면 제법 실력이 좋다고 볼 수 있다. 탄착군이 형성되었다고 하던가. 구석편에 모여있으면 오른쪽 사진처럼 뭔가를 조정하기만 하면 된다. 나처럼 사방팔방으로 흩어져있으면 답이 없다. 그냥 쏴야한다.
오호, 전투력이 꽤 높군요.
처음 10발, 나중 10발. 처음에 쏜 건 가운데 들어간 게 있는 반면에 아예 과녁 밖으로 튀어나간 놈도 하나 있다. 나중에 쏜 건 과녁에 골고루 모여있긴 한데 다들 검정색과 파랑색쪽으로 도망가 버렸다. 내가 빌헬름 텔이었다면 두발은 사과에, 나머지는 뭐...
활을 뽑고 점수를 정리해본다. 흐흐 일등이다. 내 성씨는 고씨가 아니지만 내 몸에 고주몽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믿어야겠다. 설명을 듣고 스무발을 쏘는데 걸린 시간이 30분 정도, 긴 시간은 아니지만 가볍게 즐기기엔 좋은 것 같다. 다른 모임이 있을 때 친구들보고 한 번 정도는 같이 가자고 권하고 싶을만큼. 실내에서 스포츠 맛을 낸 이런 가게들이 많아지는 현상이 신기하기만 하다. 대부분이 '짜릿한 손맛'이라고 하는 작은 움직임으로도 뭔가 해낸 것 같은 그런 기분만을 만들어 내는 곳인 것 같다. 설마.. 스크린축구장이나 스크린배구장, 족구장따위는 나오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