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 G무비의 예고편 리뷰를 보고 이번달의 무료영화는 저걸로 할까 생각했다. 이런류의 영화가 다 그렇듯이 예고편이 영화의 전부는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되었는데.. 통신사 혜택으로 매월 한 편씩 챙겨서 보지 않으면 없어지는 영화표인데다가 현재 상영영화 중에는 가장 내 취향에 가까워서 선택.
마침 장모님이 '주말인데 내가 아이 봐 줄테니 둘이 어디 놀러라도 다녀오라'는 천금같은 황금같은 백금같은 티타늄같은 아다만티움같은 시간을 주시는 덕에 아내와 몇 년만에 함께 극장엘 갈 수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는 3년에 2회 꼴로 극장을 갔던 것 같다. 가장 최근의 두 작품이 '월요일이 사라졌다'와 '택시운전사'였다. 택시운전사를 볼 때는 영화 중후반부, 시위가 한창일 때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는 장모님의 콜을 받고 총알처럼 집에 와야했고, 월요일이 사라졌다를 보던 날엔 자정무렵에나 겨우 아이를 재우고 극장에 가는 바람에 어찌나 진이 빠졌던지 우리의 월요일도 사라졌다.
어쨌거나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아이를 맡기러 장모님을 뵀는데 갑자기 터지는 아이의 충격적인 발언,
"엄마아빠, 나 놔두고 나가지 마. 여기서 같이 놀자."
부랴부랴 주방에서 가져온 개다리소반을 놓고 그 위에 음료수 1잔과 물 3컵을 올려두고 영화를 둘러싼 이해당사자간의 4자회담이 열렸다. 아이가 내세운 조건은 '다음 날 아이스크림 사주기와 어린이집 안 가기'. 오바마나 트럼프가 오더라도 이것보다 유리한 협상은 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협상은 타결되었지만, 협상 중에 병원놀이와 마트놀이, 극장놀이와 사냥꾼 놀이를 하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늦었다. 협상에 임하는 상대방의 태도가 너무나 불성실했다. 꼼짝없이 이번에도 월요일은 사라질 것 같았지만 자정에 시작하는 영화라도 봐야한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개그콘서트 초기의 '봉숭아학당'같은 느낌으로 난잡하고 소란스러운, 웃기겠다고 작정하고 펼쳐지는 뻔히 예상되는 스토리였으나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볼만했고 한국영화에는 거의 매번 덤으로 붙어나오던 '정치색, 억지눈물과 교훈'이 빠진 덕분에 편안하게 볼 수 있었다. 미묘하게 신파로 흐르는 타이밍에 개그로 끊어내는 연출도 마음에 들었다. 후반들어 루즈하게 흐르는(예고편이 영화의 거의 전부인 것 같은) 느낌은 어쩔 수 없지만 이해할만했다. 이번 영화의 성공으로 앞으로도 신파 없는 영화를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이를 찾으러 집에 갔더니 아이는 장모님과 잘 놀다가 잠이 들어 있었다. 칭얼대지도 않고 누워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가 잠들었다고. 이제 아이를 맡겨놓고 나갈 수 있는 단계까지 왔구나. 아아아아- 여보, 지금까지 수고 많았어, 대구야 너도 수고 많았다.
며칠 뒤 장모님이 넌지시 말씀하시길,
"자네, 비트코인인가 뭔가 하는걸 하는가? 아이가 코인값이 떨어져서 맛있는 거 못 사먹는다고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