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도록이면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대구시내의 계산성당에 가서 성탄전야미사를 구경하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해 오던 습관 아닌 습관인데 이유는 단순히 성당에서 듣는 찬송가가 좋아서다.
작년에는 성당에 가질 못했다. 집에서 병원놀이를 하고 싶다는 아이를 설득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성당에 가면 촛불도 켤 수 있고 맛있는 것도 사 먹을 수 있다'는 멘트가 효과를 발휘했다. 성당 가는 길, 신호대기 중에 운좋게 이월드(우방랜드)에서 불꽃놀이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왠지 마법같은 순간이었다. 운좋게 아이를 설득해서 나가는데 운좋게 불꽃놀이를 볼 수 있다니. gif로 올리려는데 성공할지 모르겠다. 테이스팀에서 gif를 붙이면 항상 움직이지 않는 그림으로 나오는데 비지에서는 좀 나으려나.
주차는 동산병원 후문쪽의 골목에 하면 된다. 아이와 아내를 먼저 성당에 내려주고 혼자서 차를 몰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 이쪽 골목으로 들어온다. 빈 자리도 많고 야간에는 주차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 아내와 아이가 내린 후 혼자서 주차장을 찾아 헤매는 시간 또한 마법같은 시간이다. 혼자서 행인들을 살피며 천천히 움직일 수 있고 마음대로 내가 듣고 싶은 곡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주차장을 찾는 시간동안 아내는 아이와 함께 구유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성당벽을 알알이 채우고 있는 벽돌들은 구한말에 성당이 지어질 당시 중국에서 구워서 수입한 것이라고 한다. 성당주변에는 개화기, 근대의 문화유산들이 걸어서 닿을만한 거리에 모여있어서 대구에서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고는 있는데 여전히 '멀리서 일부러 찾아와서 보고 싶을 정도'는 되지 않는 것 같다.
주차하느라 늦어서 뒷쪽에 서서 봐야만했다. 이 사진은 내가 머리 위로 팔을 뻗어 찍은 사진이다. 미사내내 앞 사람 뒤통수만 쳐다보았다. 아내는 다행이 조금 더 안쪽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대로 구경하기 괜찮았다고 했다. 아이가 조르는 바람에 불 켜진 초까지 들고 있었다고 하니 꽤 여유가 있었던 셈이다. 모든 게 아이 중심이다. 아이는 다른 사람들이 봉투에 돈을 넣는 걸 보고 자기도 봉투에 돈을 넣고 싶다고 했고 그 덕에 우리는 봉투 하나로 성당 중앙까지 걸어가서 예수님을 보고 바구니에 봉투를 담는 의식에 참여할 수 있었다.
지겨워하는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오니 천사 옷을 입고 노래부르던 아이들도 자기 역할이 끝났는지 밖으로 나와 있었고 먹거리 장터도 열려 있었다. 아이는 얼마전부터 먹거리를 보면 징징거리며 갑자기 허기를 느낄 수 있는 기술을 익혔다. 온가족이 저녁을 먹고 나온터라 메뉴당 5천원의 가격이 좀 부담스러웠다.
징징거리는 아이를 달래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조만간 환갑을 맞이할 1961년생 맥라이언이 손을 흔들고 있는, 한잔에 200원짜리 율무차와 코코아를 파는 자판기가 있었다. 다행히 율무차 한 잔으로 해결. 아내가 자기도 한 잔 먹겠다며 또 뽑았는데 이게 왠걸! 기계오작동으로 두 잔 같은 한 잔이 나왔다. 컵 두 개가 겹쳐서 나오더니 두 잔 분량의 율무차가 잔을 채웠다. 마법같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기계를 믿는다. 공짜는 아닐 것이다. "설마, 설탕이 덜 들어갔던지 뭐가 있겠지."라는 말이 끝나자 마자 "에이, 물만 두 배 나왔네"라는 아내의 투덜거림이 들린다.
청라언덕 계단. 3.1만세운동과 관련있는 계단이고 계단 위에는 구한말에 외국인 선교사들이 지어놓은 저택들이 있다. 헬렌켈러가 1937년에 대구에 들러 Girl's Be ambitious!라고 연설했을 때나 마릴린 먼로가 1954년에 대구에 들러 주한미군 위문공연을 했을 때도 여기를 한 번 거닐고 가지 않았을까 하는 실없는 상상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묻는다.
"아빠, 여기 왜 태극기가 있어?"
"응, 여기 옛날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태극기 들고 만세운동 했던 곳이야."
"왜?"
"아, 일본이..."
"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