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전, 'TV에서 점점 더 멀어져간다.'라는 글을 통해, 내가 TV 프로그램을 점점 더 멀리하게 되는 이유를 이야기하였다. 빅데이터에 의한 유튜브의 대두, 취향의 변화 이유도 대었다. 그리고 드라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드라마는 취향 이전에 정신적 타격의 문제로 변했다. 가끔씩 보게 되는 드라마는 인물들간의 대사나 상황 자체가 너무 독하고 서슬퍼렇다. 안그래도 상처받기 쉬운 나에게 드라마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너무도 치명적이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나의 '정신 보호'를 위해 드라마를 끊어버렸다.
이 부분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해야겠다.
한때 나는 흔한 한국 드라마의 '악녀' 캐릭터를 두고 무심결에 "저 년은 죽여야 해. 화형시켜야 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말을 분석해보자. "저 년은 죽여야 해."는 드라마를 보는 아줌마들의 일반적인 감상, 즉, "나는 저 TV에 나오는 악녀가 미워요."에 대한 표현의 한 종류일 수 있겠지만, "화형시켜야 해."는 문제가 된다. 내면의 잔학성을 드러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악녀가 서서히 불에 타가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즐기겠다는... 어찌 보면 '사이코패스'적인 한 면을 무심결에 드러내고 마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나 자신도 놀라고, 다른 사람들이 좋게 보지도 않을 것이다. 또다시 이런 말을 하는 일이 없도록, 나는 가족들이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 되면 조용히 컴퓨터 앞에 앉기로 했다. 나의 시야에서 드라마를 치워버린 것이다.
그렇게 드라마를 멀리한 지 여러 해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드라마에 선입견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면의 잔학성을 억제하고 순화하기 위해서 드라마를 멀리했지만, 수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취향과 한국 드라마의 트렌드는 어긋나다못해 평행선을 달리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면, 한국 드라마는 점점 인물들이 현실의 팍팍함과 엄혹함에 좌절하고 방황하는 축으로 나아갔지만, 나는 등장인물들이 이상과 신념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바랐다. 한국 드라마는 상류층의 부패와 타락, 그리고 그것에 맞서는 많은 이들의 항쟁을 그리는 축으로 나아갔지만, 나는 큰 위기나 재해 앞에서 모두가 힘을 합쳐 극복하는, 휴머니즘적 극복 스토리를 바랐다. 여러가지 불일치를 겪다보니 생겨난 것이 바로 선입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