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한민국은 단군 이래 사고의 스펙트럼이라는 것이 가장 넓은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 나라의 역사는 지금 새로운 사고관, 주의, 가치들이 홍수처럼 쏟아져나오는 시대, 즉, 다원주의의 첫 페이지를 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의 역사는 곧 권위주의의 역사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동안 이어진 군사 독재가 그 상징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민주 정권이 있었고, 다원주의의 수많은 가치가 꽃필 기회가 있었지만, 사람들의 의식 속에 너무 깊이 박힌 권위주의의 뿌리를 미처 다 뽑지 못하였고, 결국 이명박-박근혜 9년 동안 권위주의가 다시 나타나게 되었다.
하지만 정권과는 별개로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이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수많은 정보를 간단히 열람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정보들 사이에서 스스로 선택을 거쳐 자신의 가치를 확립하는 과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론은 사람마다 달랐고, 각자가 자신이 중요시하는 가치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다원주의가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문제는 그렇게 확립한 가치를 표현하는 방식, 그리고 수많은 가치들 사이의 조정 과정이 미비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권위주의가 지배해왔고, 그들은 자신들의 가치와 조금이라도 다르다고 판단한 모든 가치들에 대해 경청하고 대화하기는 커녕 폭력적인 탄압과 낙인을 찍는 매도를 반복해왔다. 그러다보니 다른 가치들을 주장하는 이들은 그 표출 방식이 점점 극단적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권위주의 세력도 극단적인 대응을 반복하는 악순환이 오랫동안, 수많은 곳에서 이어졌다. 극과 극의 충돌 속에서 양 측의 말을 모두 들으면서 조정을 시도하는 이들은 존재할 자리가 없었고, 조정자들이 있었다고 해도 그들이 큰 힘을 발휘하기는 어려웠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문재인 정권 들어 원자력 발전소의 공사 지속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토론과 조정 기간을 거쳐 "지금 짓는 원자력 발전소의 공사는 지속하되, 장기적으로는 원전 의존도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결론을 만들어낸 '숙의'의 정신을 모두가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권위를 내려놓고, 극단적인 주장만을 반복하는 것을 멈추고, 상대와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하나의 답을 같이 찾아나가는 것. 그것이 지금 꽃피려 하고 있는 다원주의 사회를 성숙시킬 열쇠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