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자기 집에서 술을 마시자고 말한 것은 저녁 10시 반 무렵이었다. 나는 결혼을 일주일 앞두니 마음이 착잡하냐고 낄낄 웃으며 그녀의 집으로 향했지만, 도착해보니 그녀는 소주 두 병을 혼자 마시고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의외로 그녀는 일주일 뒤 결혼하게 될 남자에 대한 불평을 하지 않았다. 건실하고 좋은 사람이라 참 좋아. 집도 탄탄하고, 착하고 능력있고 무엇보다 날 참 좋아해줘.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은 들지 않아, 특히 섹스할 때 그는 정말 애처로울 정도야. 그렇지만 어차피 사랑이나 섹스는 결혼생활에서 큰 의미가 없다고,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고 엄마도 그랬어.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면, 뭐가 그리 착잡한 건데? 라고 내가 물었다. 그녀는 예의 그 동그란 눈으로 날 빤히 쳐다보았다. 나, 다른 사랑하는 남자가 있어. 그리고 그녀는 잠시 우느라 말을 잇지 못했는데, 덕분에 나는 궁금함에 소주를 몇 잔 들이켜야 했다.
처음부터 반한 건 아니야. 같이 회사를 다니면서 서로 구박을 많이 했는데, 그만큼이나 친하게 지냈어. 나한테 관심있다는 건 정말 몰랐지. 그러다 회식이 끝나고 집에 데려다주면서, 어쩌다 보니 키스를 했고 자게 되었는데, 정말, 살면서 만나본 사람 중에 최고였어... 그녀는 말을 잠시 끊고는, 순진해 보이는 눈이 더 동그래져서 뭔가 동의를 구하는 듯 나를 쳐다봤다. 나는 민망해서 다시 소주를 마셨다.
그와 함께 있으면 정말 짜증이 나. 너무 유치하고 안타까워서. 착하지도 않고 열등감만 많고 울퉁불퉁해. 내가 보기 싫어하는 내 모습 같아. 그래도 사랑하는 걸 어떻게 해. 근데 사랑만으로 살수는 없잖아. 그 사람 집에는 빚이 많아. 평생 고생하면서 사는거 충분히 봤어. 난 싫어. 그렇다고 걔가 성공할 만큼 대단한 사람도 아니야. 근데... 마음을 못 끊겠어.
나는 딱히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서 그저 그녀의 옆에서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 해 주었다. 그녀의 몸에서는 열이 심하게 났다.
일주일 뒤 결혼식장에서 본 그녀는 많이 행복해보였다. 그래서 차마 마음을 끊었냐고 물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예쁜 아기를 낳았고, 아기를 돌보는 모습을 보니, 와 정말, 무슨 성녀 같이 아름다웠다.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가족의 모습은 너무 이상적이었는데, 그 중 한 장의 사진에서 그녀는 아기를 앞에 세워 두고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건 거짓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남편은 조루인지, 설레임을 주지 못하는지 묻고 싶은 마음이 들기는 했다.
오랜만에 그녀를 만나 함께 미술관에 갔다. 이제 막 말하는 것에 재미를 붙인 그녀의 아이는 미술관에서도 궁금한 것이 많았다. 아이는 모네의 그림 코 앞에 서서 물었다. 삼촌, 이거 뭐야? 왜 막 더럽게 덕지덕지 발라놨어?
나는 아이를 안고서 그림 뒤로 다섯 발자국 물러났다. 이건 수련이야. 수련? 응 물에서 피는 꽃이야. 그렇게 깨끗하지 않은 물에서 피는 꽃이지만, 그 꽃은 정말 아름답단다. 아름다움은, 멀리서 봐야 보여. 가까이서 보면 더러운 붓터치만 막 엉켜있거든. 그것만 보면 안돼. 먼저 멀리서 봐야 예쁜 걸 알수 있어. 그러고 나면 덕지덕지 바른 붓터치도 얼마나 예쁜지 알게 된단다.
아이는 내 얘기를 듣지도 않고 입을 삐죽거리더니 그녀에게 달려가 안겼다. 그녀들의 모습이 마치 모네의 그림 속 수련처럼, 참 예뻤다.
끌로드 모네, 수련, 1916.
안녕하세요, 박기태입니다. 그림을 보고 생각나는 스토리를 토대로 쓴 짧은 스토리들을 연재해보려 합니다. 스팀잇에서 인기는 없을 것 같지만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