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숲을 걷는 아들
휠체어를 탄 노모
그 뒤를 지키고 있는 아들의 모습
평온하고 평범한 모습인듯한데
실은 치매로 아이가 된 노모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시각장애 아들이랍니다
빛 한 줄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지극정성으로
노모의 손발이 되어주는
그들의 훈훈한 동행을
따라가보려 합니다
중풍과 노령으로
밥 한술 떠는 것도 힘든 노모에겐
아들은 세상 유일한 존재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심해져 가는 노모의 치매는
굴레를 목에 건 아들에게
풀풀 푸념 풀 듯 한시라도 편히
놔두질 않습니다
햇살이 그렁그렁 눈부신 날엔
한가롭게 졸고 있는 아침을 뒤로하고
95세 노모와 햇살에 무게만큼 옷을 챙겨입고 매일 산책을 한다는 아들
제가 휠체어를 밀면
어머니가 "왼쪽" "오른쪽"
말씀을 해주셔서 가는걸 보구선
“사람들은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는 줄 알아요”
바깥바람을 보는 걸
유일한 낙으로 여기시는지라
매일 가뭄든 도시인 이 길을 걷지만 소리와 냄새까지 똑같은 날은 없다 말합니다
어머니가 아들의 눈이 되고
아들은 엄마의 두발이 되어
맑은 가난을 매단 긴 여정은
늘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새벽보다 먼저 일어난 아들은
띄엄띄엄 숨 쉬는 가구들 사이로
넋 나간 사람처럼
더듬더듬 냉장고에 음식을
손에 감각으로 찾아내어 매일 엄마의 식사를 차려드립니다
오늘은
소화 기능이 약해진 어머니를 위해
아침부터 다진 고기와 팥 깨를 넣은 죽을 끓입니다
생선살을 발라
죽 떤 수저에올려드리고
숭늉까지 다 드신 후에야
자신은 때늦은 밥을 먹습니다
반찬에
짠맛 신맛 간은 맞출 수 있지만
눈물 한방울로 사랑이 머문자리
아픔의 간은 맞출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식사 후 아들은
손에 감각으로
설거지 빨래 청소까지 하는 걸 보니
새파랗게 정지된 하늘처럼
바람 불지 않아도
한 줌의 무게는 느껴집니다
줄기차게 걸어온 노을처럼
때묻은 일상인데도 말이죠
“엄마 제가 눈이 안 보여요”
이 말은 차마 못하겠더라고요
집에선
앞이 잘 보이는 척 행동하다가
뜨거운 음식을 쏟아 데이고
이곳저곳에 부딪혀 몸은 멍투성이가 되었지요
3년간은
시간 위로 떨어지는 초침처럼
그렇게 숨겼다는 아들은
잠겨있는 생각을 꺼내 보이듯
어머니에게 실명 사실을 고백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답니다
날마다 아픈목줄 다독인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는 아들은
시간이 패인 곳마다
아픔도 고인다 말합니다
햇살의 무게만큼
모정의 그리움뿐인 아들은
그저 어머니 걱정뿐입니다
햇살지고 돌아앉은 비문같이
왼쪽 팔과 다리까지 마비되어
기저귀 없이는 힘든 어머니가
하루가 다르게 심해져 가는 치매까지...
어떨 때는 맑았다
어떤 때는 가물가물
해져 걱정이라는 아들
흔적을 지우고 가는 바람처럼
어머니의 기억도
점점 사라져 가겠지요
녹슨 어둠이 채 가시기 전에
새벽 기도를 하는 어머니는
내 눈을 쏙 빼서
아들을 주고 싶다 말합니다
“제발 우리 아들 눈 좀 뜨게 해주셔요”
그 기도 소리를 들어면
어머니앞에
제가 보여야할 진실은 눈물밖에 없다는 아들입니다
아들 걱정뿐인 어머니를 위해
“ 어머니 시원해요”
“응응 아이고 좋아라”
아들은 이불에 누운
엄마의 팔과 다리를 주무릅니다
평생을 고통과 상실감에 갇혀 살면서
당신은 늘 해준 게 없어
미안하다고만 하는 엄마를 보면
“엄마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낼걸..”
“눈 떴을때
모습을 더많이 보여드릴걸..”
먼산 돌아온 아들은
그늘이 되고 안식처가 되어
“걱정하지말아요 엄마”라며 다둑거리면
“우리 아들 이삐다“며
화답을 하는 엄마
그렇게
아들 없어면 못 산다는 엄마와
바람을 데리고 비가 오듯
어머니 곁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는 아들은
세월의 독을 눈물의 언어로
풀어내는 그런 모자간입니다
돌담 밑에 묻어둔 그리운 사연처럼 말이죠
“어머니와 저는 한 몸이라
제 머릿속에 어머니의 몸이 샅샅이 그림 그려져 있어요“
그래서 머리 감기고 목욕시키는 일이 꽃인들 눈물인들 힘들지 않아요
요양병원에 모시라고
아는 이 들은 얘기한답니다“
내 몸이 힘든 것보다
어머니가 곁에 계신 행복이
더 커다 말하는 아들은
눈물은 눈물끼리 기대며
아픔은 아픔끼리 다독거리며
살수 있다 말합니다
시간이 가면서
만남도 있고
원하지 않는 이별도
맞아야 할 때도 있지만
가난한 마음에
앉은뱅이 햇살 한줌이라도 좋으니
엄마랑 이렇게 끝까지 사는 게 소원이라 말하는 아들
살갗 터져 새 피부가 나온
낯선 시간 속을 살면서
아랫목 같은 진실로 마주한
엄마와 아들은
지금도 언 손 녹이는
서로의 실 곳이 되어주고 있답니다
출처/노자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