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거리 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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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거리 5m
주름 깊은 어둠이 채 내리기도 전에
지친 마음을 이끌고 앉은 밴치엔
실없는 바람과 멍한구름 사이로
가락가락 찢어진
내 마음만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벌써 석 달째 허탕을 쳤습니다
더 이상 이 직장에서도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구두 밑창 달고 달아도
그 흔한 계약서 한 장
회사로 가져다주지 못하는
못난 직원을 좋아해 줄 상사는 없겠지요
허기진 마음에
배고픔은 이리도 알고 잘도 찾아오는지
바닥까지 내보인 가방 안에서
우유 하나와
빵 한 조각을 꺼내어 놓았습니다
빵에 묻어 있는
절망 한 조각을 베어 물려는 순간
먼지 한톨도 안을 수 없는 몸을 가누며
의지할 곳 없는 시선으로
맞은편 밴치에 누워있는 한 남자가
땡볕에 내걸어진 문패의 글자들처럼
굵게 주름진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과 저와의 거리는
불과 5m
둘 사이에는 마주 볼 수 없는
슬픔 하나가
지나는 바람따라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쇠문을 걸어 잠근 듯
굳게 다문 입에서
목구멍에 곡기를 넣어본지가
헤아릴 수 없는 날이 지나갔다며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귀밑머리 하얀 운명을 부여잡고
따스한 봄햇살을 배게 삼아
봄기운에 실눈 감기듯
졸고 있는 그 사람에겐
한 줌 배고픔이
어디 몸뚱이에만 어려있을까요
옷가지에 샥은 실밥들 따라
눈물방울
빈곤의 아픔 위에 올려놓고
굽은등 마디마디 마다 시린 설움들을
심어놓았겠지요
조용히 일어나
5m의 마음의 거리를
나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줄이며 다가 가
빵 한 조각과 우유 하나를
잠든 그 사람 머리맡에 두고
나는 뒤돌아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삶의 나이테가 묻어있는 얼굴로
잠들어 있는
저 사람이 어떤 사연으로
거리를 헤매 다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마음의 거리 5m 안에서
우유 하나와 빵 한 조각이 주는
마음의 온기는 알 것 같았습니다.
다른 이의
아픈 마음이 만져지는 거리는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5m면 충분하니깐요
펴냄/노자규의 골목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