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사랑은‥
“식물인간서 깨어난
내 아내의 나이는 다섯 살“
아내와 나는 아파트 외벽이나
높은 빌딩에 외줄로 매달려
생명을 담보로 도색작업을
하는 일을 하다 만났습니다
높은데 매달려 일하는 아내는
저를 보군
스파이더맨 아저씨라 불렀고
저는 그런 아내를 보고
거미 처녀라 불렀죠
그 팽팽한 외줄 아래
빈 허공이 우리들의 사랑을
만들어준 놀이터였고
대롱대롱 매달린 채
우유와 빵을 나눠 먹으며
사랑을 키워나갔습니다
생리현상이 가장 고달픈 직업이었지만
스파이더맨 아저씨와
거미 아줌마의 사랑은
무르익어 결혼도 하고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고
행복한 가정도 일구었죠
그저 평범한 가정이었기에
적게 벌어도 늘 서로를 걱정하고
살뜰히 챙겨주는 그런 부부였습니다
오늘은 아내의 생일입니다
날씨가 구름도 끼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기에
“오늘 당신 생일이니
집에서 쉬셔요 거미 부인”
“아닙니다 스파이더맨 아저씨
혼자 힘드니 같이 후딱 해치우고 애들이랑
저녁에 삼겹살 파티하자고요
기어코 거든다며 따라나서는
아내랑 길을 나섰습니다
오늘은 사다리차에 매달려
마무리를 하면 되기에
아내가 따라 올라가 도와주려다
그만 10층 높이에서
낙상을 하고 말았습니다
까만 도화지 같은 밤에 빛나는 별들이
하얀 도화지 같은 낮에는
저절로 빛을 잃어버리지만
병실에 누운 아내는
낮이나 밤이나 빛을 잃은 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식물인간이 돼버렸습니다
느닷없이 풀어헤쳐놓은 절망의 끝에서
의사도 더 이상 치료할 게 없다며
기적을 바랄 수밖에 없다 말했습니다
처갓집에서 조차 발길이 뜸해지며
깨어날 수 없다며
일어날 기별조차 없는 아내를
포기하라고까지 했지요
그 이후로 모든 게 뒤틀어져
버린 뒤죽박죽 같은 일상 속에.
집에선 어린 아들 딸이
부모 없이 생활을 해야 했고,
그림자 조차 없는 긴 침묵으로 저는
병원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꼿꼿한 밥알이
목까지 차오르는 아픔 속에서
가슴에 깊은 우물 하나 파 놓고
두레박줄 아무리 내려도
건져낼 게 없는 현실앞에
아픔에 첨벙 빠져 버려 머문 자리는
손바닥의 주름처럼
따라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먼지조차 안을 수 없는 가족들은
누워있는 엄마와
새끼손가락을 걸고서 약속을 합니다
「엄마는 꼭 다시 깨어날 거라고....」
「절대 포기하지 말자며.....」
목 끝에 걸려 넘겨지지도 않은 아픔을
매단 채 네 사람은
기적 같은 소망을 빌어봅니다
그림자처럼
오래오래 누워있는 엄마에게
따뜻한 가족의 훈기가 느껴질 수 있게
병원에서 같이 먹고 자다 보니
이가족에겐 병원이
바다 위 부표 같은 집이 된 것입니다
「아들은 엄마의 손을....
남편은 엄마의 발을,,,
딸은 엄마의 얼굴을..」
매일 닦아주며
마치 엄마가 알아듣기라도 하는냥
“오늘 숙제가 너무 많아
그래도 난 다할 수 있어 걱정 마 엄마 “
“오늘 엄마들이
오는 참관수업이 있었어
엄마가 없어도 울지도 않고
씩씩하게 일어나 발표했어 잘했지 엄마 “
“여보
당신이 옆에 있어 난 참 행복해....“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꿈을 꾸는 가족이 있기에
기억의 실이 끊긴 엄마에게도
행복한 추억 하나를
선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달콤한
꿈나라 여행을 마친 아들 딸들은
챙겨주지 않아도 혼자서 들 씻고
학교 갈 채비를 하는 모습이
참 행복해 보입니다
“엄마 다녀올게 ”
“여보 다녀오리다”
그리곤 무언가를 엄마의 머리맡에
켜둔 채 나가는 가족 들
잠시후
아들딸과 남편의
「저녁 먹는 소리
「웃는 소리
「책읽는 소리
「얘기하는 소리
"그리고 응원의 메시지"
“여보 당신은 꼭 깨어날 거야 난 믿어 ”
“엄마 힘내서 꼭 일어나셔요
아자.. 아자 우리 엄마 파이팅... “
가족의 얘기들을 녹음해서
혼자 있는 엄마가 들을 수 있게 했습니다
엄마가 그 소리를 듣고
빨리 일어날 거라고 믿는
아이들의 소망을 따라 해놓은 것입니다
엄마 없이는
숨 쉴 수 없음을 알아가는 가족들은
허망이 맴돌아 다들 포기할 때도
희망을 잃지 않았고
무정한 세월의 빈터에서도
엄마와 아내의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오늘은
병실 창문 위로 무지개가 떠습니다
정작 빛나는 건 별이 아니라
어둠인 것처럼
살뜰한 가족의 사랑을 받은 엄마와
기적을 바라는 가족에게 좋은 소식이
전해올 것만 같습니다
무심히
병실에 들어선 아이들과 남편 은
평소처럼 엄마에게 인사를 건냅니다
“엄마 학교다녀왔습니다
“저두요
“ 여보 나왔어”
그 순간 아내의 눈동자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손가락을 조금씩 움직이더니
고개를 돌려 아이들과 남편을
번갈아 보기까지 하는 아내
숱한 별과 밤을 건너온 기적이 찾아왔습니다
아내가 3년 만에 의식을 되찾은 것입니다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물을 흘리며
긴 잠에서 깬 후 처음 한 말은
바로 "사... 랑... 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곤 또렷이 가족을 기억하는 아내
「여보
수빈아
경빈아」
기적을 부른 가족들의 사랑은
3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병상에 누워있었던
아내를 깨어내고야 만 것입니다
「모두가 안된다고,
깨어날 수 없다고,」할 때도
희망을 잃지 않았고
한 시도 엄마와 아내의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해준 가족의 힘은 위대하기만 합니다
기적은 시작됐었지만
운명은 얄밉게도 짧게 가족을
기억하곤 엄마의 기억을 다섯 살짜리
꼬마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여러 차례의 뇌수술은
그동안의 기억을 백지로 만들고
지능을 앗아간 것입니다
하지만
홀로 뒤척이는 형벌 같은 시간들을
추억으로 되새길 수 있을 만큼
이들 가족은 강해져 있었습니다
삶은 늘 해결해야 하는 숙제이기에
하루의 열정을 담고
병간호 짬짬이 틈을 내어
화장품도 팔러 다니고
병실에 환자들 머리도 깎아주고
아들과 딸은
바닥에 머리카락을 치우며
천 원씩 모은 돈으로 아내의 기저귀를
사는데 보태고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도 못 팔고
고단한 그림자 길게 끌고
병실에 들어서지만
가족에겐 늘 쉴 자리 내어주는
병상의 아내의 얼굴 가득 반겨주는
밝은 표정은 가족애가
뭔지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
휠체어를 탄
엄마 곁에 함께한 가족들
파란 잔디밭에 다 같이 누워서
손에 손잡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잔디를 배경 삼아 하늘을 풍경삼아
가족사진을 찍습니다
「“ 하늘 속에 들어있는 가족사진”」
몽글몽글 피어나는
뜨거운 가족애로 이룬 작은 기적들
엄마가
우리말을 들을 수만 있다면....
엄마가
우리에게 말할 수만 있다면....
엄마가
우리를 향해 걸을 수만있다면....
계단을 밟아오듯
시작된 기도가 이룬 기적 앞에
“다시 또 사랑은 “
시작되려나 봅니다
출처「노자규 웹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