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55일의 프러포즈/노자규
출처 : 노자규의 .. |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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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5일의 프러포즈
남편은 사업을 하다
빚만 늘어나다 보니 문을 닫고
낮엔 트럭 과일장사를
밤엔 대리운전까지 하면 빚을 갚으려
안간힘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답니다
오늘은 딸아이의 생일입니다
“당신 오늘은 좀 일찍 들올 수 있지
응 늦어도 열 시 전에는 들어올게.. “
오늘도 남편은 과일을
팔기보다는
지나는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있습니다
이러니 적자는 당연한 것 같습니다
“여기 딸기 오천 원 치만 주세요 “
모처럼만에
손님이라 듬뿍 담아 내밉니다
“ 아저씨
확성기로 딸기 사세요
해야 손님이 오죠 “
그 소리에 남편은
손으로 “ 학원 간판”을 가리킵니다
“제 장사하자고 방해하면 안 되죠...”
늘 남편은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다 보니
빌려준 돈도 받으러 갔다가는
주머니 돈까지 탈탈 털어주고 오는
그런 남자랍니다....
늦은 저녁이 되니 부슬비가 내려섭니다
약속시간이 한 시간 남았습니다
과일 트럭에 몸을 싣고
집으려 향해 달려가던 중 낯선
휠체어 한 대가 도로가에 놓여있습니다
“비가 오는데 여기서 뭐하세요”
추위에 말을 잇지 못한채
손으로만 한쪽 바퀴를 가리킵니다
차량에 태운 뒤 휠체어를 짐칸에 싣고
천천히 차를 움직여나갑니다
“언제부터 이러고 계신 거였어요 “
“일곱 시쯤부터
지나는 차들을 보고 손을 흔들었지만
다들 그냥 가버리더라고요 “
“아니 선생님..
불편한 몸으로
혼자 나오시면 어떡한데요 “
“아내가 아파
약국에 약을 지으려 왔다가
휠체어 바퀴에 바람이 빠지는 바람에
오도 가도 못하고
이 꼴이 되었지 뭡니까... “
남편은 바람에 날리는 재가되어
집으로 서둘러 귀가를 했지만
집안엔 불이 꺼진 채 캄캄하기만 합니다
아빠를 기다리다 잠든 아이 옆에서
같이 잠들어 있는 아내
남편은 말없이 문을 닫고 나옵니다
변변하게 아빠 노릇도
남편 노릇도 못하는 자신을
애꿎은 달에게 하소연하듯
올려다 보고만 있습니다
햇살이 지나는 바람에 실려 따뜻하게
비쳐주고 있는 오후
점퍼에서 잠들어 있는
남편의 핸드폰 벨소리에
빨래를 하든 아내가 뛰어와 받습니다
" 과일장사 하시는 분 전화 아닌가요"
낯선 여자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휠체어에
탄 남자의 부인이었습니다
“그날 댁의 남편분 아니었으면
우리 집 양반 큰일 날뻔했지 뭐유,,,
어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지,,,
그날 밤 남편이
늦은 이유를 뒤늦게 알게 된
아내는 남편에 옷에
묻어있는 진흙덩이를 매만지며
지난달 급성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일이 떠 오릅니다
병실에 누워
약기운에 새벽녘에 깨어보니
남편이 의자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여보... 집에 가서 자...
나 혼자 있을 수 있어 “
“안돼 밤새 기침할 땐 가래도 받아주고
옆에 사람이 있어야지 “
이른 아침이 되니
쏟구치는 기침에 급히 휴지를 찾는 순간
한 칸 한 칸씩 수북이 쌓여 있는 휴지...
좁은 병실에서
잠 한숨 못 자고 밤새 짜르고 있었을
남편을 생각하며 흘렸던 눈물이
오늘 전화와 겹쳐지며
참았던 눈물을
마구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웬 돈이 이렇게 많아요
오늘 대박 났어
그 많든 과일을 오늘 다 팔았지 뭐야,,,
하하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 그려 “
휠체어 부부가
어떻게든 사례를 하고 싶다 하시기에
"그럼 남편
과일이나 팔아주세요"란 말에
지나는 분들에게 몰래 만원씩을
나누어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은
그동안 신세 진 친구 부부를
집으로 초대해 술 한잔을 하잖니다
삼겹살을 굽어가며
다들 적당한 취기로 술을 마시는데
유독 남편은 안주 없이 술만 마셔댑니다
“수경이 아빠
술만 먹지 말고 안주도 좀 먹어요,,“
그 말에도
안주는 먹을 생각도 안한채
술만 홀짝거리며 마시는 남편
그런 남편이 약속하기도
원망스럽기도 해서
오늘은 아이들 방에서
잠을 청하려 합니다
배게를 가지러 큰방으로 들어가 보니
남편은 벌써 술에 취해
입을 벌린 채 코를 골고 있습니다
입을 벌린고 자는
남편의 이불을 덮어주려는 순간
아내는 그 자리에서
그만 눈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삼겹살을 왜 안 먹었는지....
왜 말없이 술만 마셨는지를.... “
아내가 우는 소리에
놀란 남편이 벌떡 잠결에 일어섭니다
“왜 뭔 일 났어
장모님이 돌아가셨어,,,,“
“이 화상아!
그렇게 어금니가
다 빠졌으면 병원 가야지.. “
남편은 별일 아니라는 듯
씩,,, 웃어 보이더니,,,
“시원하고 좋기만 하구먼,,,”, 하고선
도로 누워 코를 골며 자버립니다
오늘 밤은 남편의 잠든 얼굴을
매만지며 밤을 지새워 보렵니다
“우리 조그만 더 고생하자
당신 곁엔
나와 수지와 수경이가 있잖아
힘내.. 당신
그리고 사랑해”
그렇게 아내의 소리없는 독백은
밤새 이어집니다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과일 트럭에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5555일의 프러포즈]
확성기로 동네가
떠나갈 듯 소리치는 바람에
사람들이 담 너머로 거리로 나와
쳐다보고 있습니다
아내를 번쩍 안아
트럭으로 올려놓는 남편
트럭은 어느새 무대가 되고
무대 앞으로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관중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아내를 만난 지
5555일이 되는 날입니다 "
'여러분들께서
5라고 소리쳐 주시면
제가 오행시를 짓겠습니다 여러분..."
마을 사람들은 다 같이 소리칩니다
5>>>>>
5 영미씨
5>>>>>
5늘이 당신을 만난 지
5555일이 되는 날입니다
5>>>>>
5 나의 태양 나의 반쪽
5>>>>>>
5 영미 만을 평생 사랑하겠습니다
뜨거운 박수소리가
까만 밤하늘에 울려 퍼지며
계단을 밟아오듯 시작된
트럭부부의 로맨스는
내일도 계속 되려나 봅니다
출처/노자규의 골목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