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의 행복/노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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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의 행복

지천명을 사는 나에게변함없는 자네는

언제나 든든하고 말없는 친구지 

힘들 때마다 나를 위해 늘 곁에 있어준 넌

참 좋은 친구야 

고단한 일상을 마무리 할 때

배웅하러 나를 찾아와서는

애써 말하지 않아도

묵묵히 알아서 내 마음 헤아려주고

내 넋두리 다 받아가며

숯덩이 같은 속을다 비워 내 주니

참 너그럽고 고마운 너

술이야! 

 

때이른 저녁

난 밥 대신 술을 마신다

산다고 부질없는 몸부림친 하루가 저무니

삶의 의무란 놈은 구석에 던져놓고

위선의 먼지를 술잔에 담고

가만히 널 바라다 본다 

오늘 이 한잔에 술에

인생 한입

슬픔 한 모금

외로움 한 조각

안주 삼아 술을 마신다 

 

술아!

넌 꼭 내 서글픈 속을 잘도 찾아와

얼어붙은 내 눈물을 불러내니

넌 우편배달부 같다  

초저녁 기울인 술잔에 

반가운 이가 찾아왔다

"인생"

너는 어디 있다가

술잔 속에 또 왔니

너는 나한테 술 한잔 안 사주면서

나를 찾다 바쁘면

꼭 술이란 친구를 보내더라

너 같은 친구가 있기에나는 배웠다

인생은 시간과 영원 사이일 뿐 이란 걸 

술아!

네가 내 머리에 들어오면

가둬둔 내 비밀이 다 나오니

세상에 진실은 술 속에 다 있더라

그래서 오늘은 한잔의 술에도 눈물이 난다

아무것도 아닌

지난 간 이야기 하나 부여잡고

밑뿌리 고달픈 머리칼을 한우 큼 쥐고선

위태로운 웃음으로 술잔을 비워 나간다 

이밤엔

하루란 족쇄를 풀어놓고

 거하게 취하고 싶다

인생이 어디 더하기 뿐이던가

나누기도 있고 빼기도 있었니.... 

 

 

술아!

넌 말하지 못하고 눌러 담아놓은

내 눈물을 닮았나 보다

그래서 오늘도 술잔엔 

        가난한 내 눈물이 반이다

사랑이 술을 가르쳐줘 난 술을 배웠다

술잔에 내 눈물이 채워지면

당신이 일렁인다

술잔이비워지는 만큼 그리움도 차오르니

술을 마시면 이별을 잊고

 다시 사랑할 수 있을 것 만 같아서

난 널 또 찾았나 보다 

 

하지만 먹은 만큼결국 더 슬퍼지는걸... 

너를 사랑한 만큼더 그리워지는 걸.... 

사랑이라 말하고 싶은 것들이 

                     이 술잔에 서성인다. 

 

 

이밤에 

무정한 당신 이 남겨준 아픔을

이 술잔에 담아 마시고 싶다 

당신을 비운만큼 술잔에 또 술을 채운다 

딱 한잔만 더하고 싶다

누가술에 술을 부었나

못 이기는 건 술이 아니라 슬픈 이별 아니든가

이제 빈 술잔에 담긴 눈물만 마시고

내보다 더 취해 잠들어 버린

술병을 뒤로하고 일어서야겠다 

 

 

술아!

너와 이제 이별을 해야 할 시간이다

너와의 이별이 슬픈 건

그 뒤에 찾아 올 외로움 때문이겠지

외로움은

이별이 주고 간 상처를

두고 두고 조금씩 조금씩

잊게 하니까......

그래서 더 힘들게 하니까..... 

 

아! 큰일이다

한 병만 먹을걸

만원이 넘을 것 같다

그냥 술한병 사들고 집에서 마실걸.... 

술집 문을 여니 가을비가 내려선다

오늘 같은 날엔 누군가

나에게 우산을 씌워주었으면 좋겠다 

 

 

 

출처「노자규 웹에세이스트」

노자규 웹에세이스트/출처

만원의 행복/노자규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