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휴가
출처 : 노자규의 .. | 블로그
http://m.blog.naver.com/q5949a/221346876699
엄마의 휴가
사는 곳과
지나온 시간은 서로 알지 못하지만
8명의 할머니들은
들어온 순서대로 서로를 부르면서
나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점선처럼 만나 실선이 되어가고 있는
이곳은 439호 병실입니다
8번 할머니는
석 달째 입원중인 왕고참 이기도 하지만
어찌나 아는 게 많은지
찢어진 백과사전 같아서
이방에 반장 할머니로 통합니다
들어온 환자들을 보면
“3번 니는 다음날 나가겠네
5번 니는 더 있어야겠다”
“8번 형님 그러다
광복동에 점집 차리는 거 아이가,,“
라며 박장대소들을 하십니다
“1번 니는 몇 살이고 “
“68살 이라요”
“육십대면 아직 얼라네
1번 닌 아직 청춘이다
2번부터 내까지 우린 칠십 줄 아이가 “
나이만큼 아픔의 무게가 있다고 말하는
반장 할머니는
“그럼 1번 니는 아픔이 68키로 만치
가슴에 쌓여겠구마..”
“그러먼 8번 행님은
77키로 만치 그 가슴에 쌓여겠네요 “
“하모 다들 지 나이만큼
무게의 아픔을 지니고 사는기라
늘어나는 이 뱃살처럼 줄지 않고
자꾸 무거워지니 그게 문제 아이겠나.. “
“근데 1번 니는 어디가 고장 나서 들왔노 “
“병이 대병 입니데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예.. “
“소주 대병은 들어 봤어도
병이 대병이라는 소리는 첨이네..”
그러는 사이
병실 문을 열고 선글라스에 여행가방을 밀고
서울서 금방 왔다며 들어서는 한 여자는
사람의 인기척 조차 느끼는 못하는
3번 할머니 앞에서 걸음을 멈춥니다
병아리 눈물만큼 머물다 겨우 의식을 차린
노모에게
내일 오겠다는 말만 허공에 날린 채
들올 때 머뭇거림은 간곳없이
휑한 바람을 일으키며 병실을 나가버립니다
호텔인 줄 알고 들어선 것 같은 그 여자가
문을 열고 나가 버린 후
“저걸 자식 이라고....
나이 들면 자식 다 필요 없다”며
8번 반장 할머니가 한마디 거들고 나섭니다
“맞심더
울 아들놈 새끼도 지애미가
입원한 지가 보름이 다되어 가는데
코빼기도 안 보이고
연애질 하는 가시나는
매일 아침저녁 델다 주러는 다니면서
지애미 입원한 병원은
무슨 철창이 쳐졌는지 오지를 않네예 “
“병원에 입원해보면
어느 놈이 효자인지 다 아는기라
자식 놈들 평소 하는 게 다 보인다 아니가,,,
딸이 온 것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의식이 돌아왔는지
“, 니만 믿는데이” 하면서
간병인의 손을 잡아보는 3번 할머니는
잠꼬대하듯
“내다리 어디 갔노 “라며 또 중얼거립니다
“할머니 고장 난 다리 누가 가져 간다꼬예
그 붙어있네예 “라며
2번 할머니가 넌지시 한마디 거들고 나설 때
한가로운 얼굴로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선 남자는
3번 할머니 외동아들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엄마에게 다가가 귀속말을 합니다
살갑게 다리도 매만지며
엄마.. 엄마 부르기에
참 자식 하나 잘 키웠다 싶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아들의 음성이 조금 높아집니다
“엄마 돈 빌려준데 없나
있으면 말해봐라
“와 의사가 내 죽는다 카더나 “
“장판 밑에
어디 숨겨놓은 돈이나 통장은 없나 “
“내가 무신 돈이 있노
니가 언제 돈 줬디나 “
한참을 그렇게 실강이만 하다
돌아간 아들을 두고
7명의 할머니들은
하나같이 혀를 차며 말을 꺼내어 놓습니다
“저런 못 되놈 다신 오지 마라”며
욕을 퍼부으면서 말이죠
그 말에
3번 할머니는 지친 기력을 세워보며
“아임미더 그래도 그놈이 제일 효자라예..”
“효자는 무신 ”호자(호래자식)는 되겠다“
“. 에구 검어나 희나 지새끼라꼬”
“이래 병원에 입원해 보니깐
지애미 언제 죽나
송장 치를 생각들만 하는지
애달프게 살뜰히 간병하는 자식은
찾아보기 힘든 기라 “
할머니들의 늘어진 한숨소리 따라
손녀딸 같은 간호사가 들옵니다
구구절절 하느님 앞에 기도문 외우듯
아프다며 하소연을 해대지만
간호사는 귀뚱으로 들어가며
생긋한 미소로만 화답을 한 뒤 나가버립니다
“문둥이 가스나
이젠 내가
아프다 캐도 귀뚱으로도 안 듣는다 “ 며
반장 할머니가 하소연을 해대니
“볼 때마다 아프다 하니
자식 놈도 귀찮아 안 오는데
간호사 아가씨는 무신 죄고 “
그사이
핸드폰을 꺼내 든 3번 할머니는
“니 안 올 끼가
참말로 문디자슥아”라며
문병 안 오는 자식 놈과
말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가뭄에 콩 나듯이 한번 찾아와서는
병원비 내주고
얼굴 삐죽 내민 게 다한 효도인지
“엄마
병원비 댄다고 허리 생똥 빠진다 아니가 “ 라며
짜증만 내다 가는 아들
자기체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찾아와서는
이런 핑계 저런 핑계돼가며
비상구를 찾듯 빠져나가기 바쁜 딸들
엄마에게 좋다는 약을 사 와서는
4만 원 들었다며 돈을 달라는 자식
옆사람 눈치나 보다 언제쯤 일어날까
멀뚱 거리는 며느리
외면하기 바쁜 자식들의 하루가
아픈 엄마를 더 힘들게 하는 것 같다며
“내가 언제 이렇게 나이가 묵어가꼬..
이제 북망산천 갈 때가 다 돼가,
송장치러러 여기를 들왔는지,,,“
그렇게
속내를 열어 보이다 보니
자식들이
이젠 엄마라는 생각조차 버린 게 아닐까
두려워진다는 할머니들입니다
지난 아픔은 침상에 대신 눕혀놓고
링켈 줄에 의지한 채
쓸쓸한 걸음으로 나가시는 늘 말이 없는
5번 할머니
자식들의 발걸음이 뜸해진 복도 끝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누가 문병이라도 왔다 가면
오매불망 내 자식 오기만을 기다리는
허탈함까지
링켈 줄에 매달아 걸어두면서 말이죠
2번 할머니는
병실에 와있는 자신이 처량해서인지
오늘은
먼 창문만 바라보며 말이 없습니다
자식을 매달고 이만큼이라도 걸어온 게
스스로에게 대견해서인지
아침 햇살에 그을려진 눈물부터 내보이더니
한평생
자식 그림자로 살아온 세월을 두고
이마저 떠나면
남길 것도 가질 것도 없는
여기가 종착역인가 싶다며
돌이켜 보면
엄마의 인생은 한나절 같다
말하고 있었습니다
햇살에 잘 다려진
한가로운 구름 한 점이 흘러가는 오후
낮잠 곱게 잠든 머리맡에
언젠가는 멈춰질 엄마의 시간들을
세워보면서
눈물로 놓아 둔 꽃 한 송이
속살까지 솎아내는
먼길을 돌아 병상에 누워서야
찾아온 엄마의 휴식 앞에
기억의 물레엔
아들의 눈물이 먼저 나와 반깁니다
엄마의 청춘은
자식 앞에 사라져갔고
칠십 평생 부지런함에 끌려다녔든
엄마의 손은 구겨진 종이쪽 같습니다
“엄마 이과자 드셔 보세요 ”
“난 이딴 과자 안 먹고 싶다
울 아들 마음을 먹고 싶지... “
“ 울 엄마 병원에 누워계시더니
시인이 다 되셨네 “
그림자 짓을 해도 좋으니
자식 놈 옆에 좀 더 머물고 싶다 말하니
금세 병실안은 눈물바다를 이룹니다
최고의 간호는 사랑이라 말하며
휠체어에
엄마를 앉히고는 병원 구석구석 돌며
이야기꽃을 피워대니 옆에 할머니들은
“2번 닌 좋겠다 효자 자식 뒀어,,,”
“아이라예
40이 넘도록 혼자라 그기 걱정입미더..”
모처럼 핀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병상에서 찾아온
엄마의 휴식이 철들게 해서 일까요
4번 할머니 딸이 울고 있습니다
항암치료에 깡 말라버린
엄마를 보며 우는 딸에게
“괜찮다 마
살만큼 살았다 아이가..”
의사 선상님이
주사 놔주면 몇 시간은 버틸만 하데이 “
이젠 뒤돌아설 수도
머무럴수도 없는 엄마의 인생
눈물을 숟가락에 얹고
아픔 한 조각을 더 얹은 뒤에야
식사를 하고 있는
엄마의 앉은자리 밑으로
돈을 건넵니다
“오빠 아이들 오면 다 주지 말고
꼭 갖고 있다 옆에 할머니하고
맛있는 게 사 먹어래이,,, 엄마 알았제 “
모녀의 슬픔을 다 지우기에는
체내에 눈물로는 모자랄 것 같아서인지
반장 할머니도 울먹거리며
“나도 울 영감 죽을 때 따라 죽을 긴데
왜 이리 오래 살아가지고
자식 놈들 힘들게 하는 건지.. “
자기 몸뚱이 아픈 건
등 뒤에 감추고
늘 자식 걱정은
턱밑에
걸어두는 게 엄마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다음날
한가로운 낯빛으로 아침이 걸어 나온 병실에
5번 할머니네 가족들이 다모였습니다
“문둥이 자식 죽은 지애비 닮아가
멋대가리 없기는
애미야 니 뭐보고 이놈과 연예질 했노.. “
“멋대가리가 없는 게 매력 아임미꺼,,”
“아이고 마
어거 둘이 천생연분이데이,,,“
그렇게 분사스러움을 피우던
가족들이 돌아간 뒤 못다한 아쉬움에
5번 할머니는
지난 이야기 한 줄을 더 뱉어놓습니다
“집이 산 언덕에 있었는데
죽은 내 영감이 잘 못 걷는 나를 위해
이사 오면서부터
이십 년 동안 계단을 만들어 줬지 뭐요
다시 그 계단을 밟을수나 있을는지,,,
한 칸 한 칸 밟고 올라설 때마다
우리 영감과의
추억들이 솔솔 올라오는 그 계단을.....
그렇게
할머니들의 추억 타령이 끝나갈 때쯤
개스츠레 나온
낮달을 밀어낸 어둠이 걸어 나오더니
침상 탁자엔
어느덧 저녁식사가 올라와 있습니다
2번 할머니는
얼렁 고기를 건져 아들 밥에 얹어줍니다
“간병하는 사람이 더 힘든 법이데이
많이 무라 내 새끼“
“아이참
난 아침에 고깃국 먹고 왔다니깐
아픈 엄마가 잘 드셔야지예 “
아들의 손길 하나에
따스한 미소한 점에
이렇게 좋아하시니
엄마의 가슴은
참 작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나 봅니다
제 둥지 틀고 일어난 자식들을
아직도 품고 계신 사람
자식이라는 무거운 짐을
평생 지고 살아야만 했던 사람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일어나야만 했던 사람
한 방울의 눈물마저도
못 지니는 고드름 같은 사람
그래서
눈물 나는 그 이름은
“엄마”입니다
펴냄/노자규의 골목이야기
attn/저자가 간병하며 격은 이야기를
모티브로 써여진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