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방황하는 칼날>, 2004
소년법은 범죄행위를 한 소년(대한민국: 만 19세 미만의 사람, 일본 : 만 20세 미만의 사람)의 형사사건을 처리하는 형사특별법으로, 소년범과 우범소년에 대한 형사처벌의 특례와 보호처분 등을 규정하는 법률이다. -위키백과-
자신의 자식이 성폭행 당하는 모습을 직접 보게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리고 그 가해자가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감형을 받는다면,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소설 <방황하는 칼날>에서 독자로 하여금 거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나가미네의 딸 에마는 불꽃놀이를 가게 되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 가이지 일행에게 납치된다. 가이지 일행은 에마에게 약을 먹이고 성폭행을 하다가 결국 에마를 죽인다. 나가미네는 며칠동안 딸의 행방을 찾지 못 한다. 딸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고 경찰에서는 단순 가출정도로 치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던 중 나가미네에게 목소리가 변조된 한 전화가 걸려온다.
그 전화는 누군가의 제보 전화였고 전화를 통해 한 의문의 주소를 얻게 된다. 나가미네는 혼자 그 주소로 향한다. 주소에는 집이 한 채 있었고 나가미네는 제보 전화에서 얻은 정보로 집 안으로 몰래 들어간다. 나가미네는 가해자의 단서를 찾기위에 집을 훑어보다가 한 쪽 벽면 책장에서 녹화 테이프 더미를 마주한다. 거기에는 많은 여성들의 이름이 적혀있었고 TV 아래에서는 녹화를 막 완료한 테이프를 찾게 된다.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그 테이프를 재생시킨 나가미네는 곧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두세명의 남자가 자신의 딸을 강간하고 죽이는 영상이었다. 나가미네는 그 자리에 바로 쓰러져 오열한다.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도 모른채 울다보니 집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가미네는 그 소리를 듣고 순간적으로 주방에서 칼을 꺼내 숨어있다가 그 사람을 덮친다. 그 사람은 가이지 일행 중 한명이었고 나가미네는 그에게 정보들을 알아낸 뒤 상상할 수 없을만큼 잔인하게 살해한다. 나가미네는 가이지라는 리더격의 인물을 알게되고 청소년이기 때문에 법의 심판을 빗겨갈거라 예상한다. 그래서 나가미네는 경찰에 알리지 않고 직접 복수하기 위해 가이지가 있는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또한 처음에 걸려왔던 의문의 제보전화는 발걸음이 막힐 때마다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일종의 열쇠가 된다.
나가미네는 결과적으로 살인을 했다. 하지만 이걸 악(惡)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나가미네가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을 하고 행동한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행동한 것이다. 딸을 유린하는 장면을 목격한 뒤 가해자를 마주하게 되고 복수를 한다. 선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니다. 딸은 가진 아버지라면 어쩌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생각이다.
물론 복수하고 죽인 일에 대해서 잘못이 없다고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선하다 악하다의 문제와 잘못했다 잘못하지 않았다의 문제는 다르다. 어찌됐건 살인은 범법행위이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려면 일종의 규칙과 기준이 필요하다. 생각이 드는대로 행동하고 살 수 있다면 세상은 이미 무법지대가 돼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중에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면 나가미네와 같은 상황에서 피해자가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완전히 보상을 받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방법은 있는지 생각해보자. 솔직히 아무리 생각해봐도 해답은 없다. 애초에 완전히란 말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일 뿐더러 딸은 이미 죽었다. 딸이 돌아오는게 아니라면, 아니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완전한 보상이 되지 못 한다. 이미 피해를 당했던 기억들은 뇌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해자는? 그들의 처벌에 관해 이야기 하면 일부 사람들은 한순간의 실수로인해 평생동안 죗값을 받아야하나란 물음을 가진다. 그 질문에 난 아니라고 하지 못하겠다. 사실상 의도적인지, 실수인지 아는 사람은 가해자 밖에 없다. 가이지가 강간하고 살인한 것이 의도한 일이 아니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의도하지 않은 강간이란 말은 없지만) 제삼자가 보는 입장에서는 그게 실수인지 실수가 아닌지 판가름할 방법이 없다. 최선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것 뿐이다.
사실 책이 어떤지, 볼만한지 사람들한테 소개하려고 시작한 글인데 어쩌다보니 잡소리만 늘어놓았다. 그만큼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소설에서 추리/스릴러라는 장르보다 더 큰 거대한 메세지를 전하려고 했다. 물론 그런 메세지를 고려하지 않아도 <방황하는 칼날>은 훌륭한 작품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배경 묘사와 막힘 없는 진행, 그리고 항상 독자를 놀라게 만드는 반전.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있는 최고의 작품이다. 만약 당신이 생각하는걸 좋아하고 추리소설 마니아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과연 당신의 칼날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