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영화의 숙명 : 쓰고보니 <부산행> REVIEW

cowboybebo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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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 추천곡, 고릴라즈 "Feel Good Inc"
언젠가, 고릴라즈 얘기도 한번하죠.
글 읽기 귀찮으면 PASS하고, 그냥 음악 한곡 듣고가세요~

좀비 영화란 무엇인가?

물의 메타포.

관객들은 좀비 한마리의 포악성에는 관심이 없다. 좀비 '떼'여야 한다. 규칙성 없이 포진되어 있다가 필요할 땐 누구 하나 지시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강물"처럼 응집하여, 머리가 터지고 팔이 잘리고 살점이 뜯겨져 나가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내달린다, '성난 파도'처럼 부딪히고, '폭포수'처럼 떨어져서 집단으로 산산조각이 나도 아랑곳하지 않는 살아 움직이는 시체 집단. 이들은 신의 진노로 말미암아 세상을 멸하는 노아의 홍수다. 신의 전언을 받들어 세계는 피바다가 된다.

세기말적 파노라마.

이제 인류는 생물학적으로 가장 순수하고 단순한 형태로 회귀한다. 이들의 DNA는 오직 한 가지만을 명한다. 물고 또 물어 뜯어 하나가 되어라. 모두 같아져라. 수십만년을 거친 진화의 RESET! 겉으로 비치는 좀비의 번식 형태는 피가 낭자한 카오스(혼돈) 같지만, 좀비의 테제는 '무작위 번식'으로 생물학적 진화의 강령을 추종한다. 그래서 좀비의 본질은 코스모스(질서)다. 그들의 세계는 공평하다. 계급, 도덕, 사상, 자본, 문화... 서로를 구분해오던 모든 장벽을 무시한다. 현 세계에서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이 폭력적이고 공명정대한 판결은 세기말적 파노라마의 필수 요소다. 종의 멸종, 문화의 종말. 인류 진화의 회귀. 역설적인 질서와 공정성까지.

구원의 방주.

이제 좀비는 창세기에 비추어 신화적 존재이자, 진화론에 입각한 생물학적 존재가 되었다. 좀비의 출현은 종말을 향한 신의 분명한 의지이고, 거대한 생명 물줄기의 거부할 수 없는 종착역이다. 바로 세계의 끝. 종말이란 전쟁이 아니라 숙명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신의 사자를 돌려보낼 수도, 진화의 물결을 거부할 수도 없다. 세상의 끝에서 인간은 생존의 본능에 따라 좀비의 팔을 자르고 대가리를 터뜨리겠지만, 이는 신을 향한 구원의 기도이자, 생물학적 멸종에 대한 저항이다. 묵시록에 승전보는 없다. 겨우겨우 살아남은 자들. 구원 받은 자들만이 있을 뿐이다.

물의 메타포로 보는 세기말적 파노라마와 구원에 대한 묵시록

누가 동의하건 말건, 좀비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28일후>도 그랬고, <새벽의 저주>도 그랬다. 세계의 끝과 구원에 대한 묵시록이다. 인류의 승리나 치유, 희망같은 것을 논하기 위해 굳이 좀비영화를 찍을 필요가 없다! 한국 영화 <연가시>나 <감기>, 브래드 피트의 <월드워Z>는 병리학적 투쟁을 다루었고, 분명한 건 좀비 영화가 아니다. 혹시 <월드워Z>를 좀비영화로 분류하지 않으면 지나친 처사라고 생각하시나? 바이러스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시점에서 좀비영화로서는 맥이 빠지고 말았다. 인류의 승전보를 날리면서, 감독 녀석은 나름 영화 완성도를 높이고 관객 만족시켰다며 우쭐했겠으나, 나와 같은 좀비 영화에 대한 강력한 편견(?)을 가진 사람에겐 어림 반푼어치도 없단 말이지.

2년 전 개봉했던 영화 <부산행>은 앞서 제시한 좀비물의 모든 여건을 충족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든 물의 메타포, 즉 좀비 집단의 광적인 움직임을 이 정도까지 구현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어릴 적 <쉬리>의 액션 씬을 봤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총격 씬을? 우와~ 외국영화 같아."

<부산행>은 간단한 장치들로 세기말적 파노라마를 극대화 시켰다. 서울의 몇몇 폭파 장면과 "서울에서 부산까지 직통으로 달리는 열차" 라는 설정만으로 한반도가 좀비로 초토화 되었다는 심각성을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했다. 이 영화는 어디에도 억지스런 승전보를 울리지 않는다. 그저 방어에 성공한 일부 지역만이 존재하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다 살아남은구원받은 자들만이 있을 뿐이다.

<부산행>은 한 국가의 묵시록을 보여주며 시종 일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달렸다. 좀비 영화답다. 앞선 좀비 영화들과 차별화 요소로, 움직이면서도 갇혀있는 공간적 장치, 열차를 활용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흠이 없었고 완급을 조절하며 영화의 리듬을 살렸다. 평소 좋아하는 정유미씨와 마동석씨가 부부로 나온 점도 영화를 즐겁게 보게 된 요인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는 좀비보다 무서운 인간이 등장하는데, 도덕적 측면을 지나치게 부각시킨 것 같다. (명존세라는 유명 일화가 있죠.) 이런 메세지를 좋아하는 분들도 많았을 테지만. 영화의 스토리가 주제의식에 함몰되면, 관객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강박에 시달리게 된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곳곳에 숨어있는 신파 요소인데, 영화 끝에 임산부와 아이만 살아남는 다는 설정에서 극에 달했다. 개인적으로는 정유미씨가 살아남아서 좋았지만...

몇가지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부산행>은 한국의 좀비 영화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을 충족시켰다. 이후 한국의 좀비영화를 논할 때, 항상 언급되어야 할 것이다. 명실공히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 임에 틀림없다.

PS)
프리퀄 <서울역>도 사람이 좀비보다 무섭다는 교훈.
뭐하러 두번씩이나...

좀비영화의 숙명 : 쓰고보니 <부산행> REVIEW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