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하루 : 한국판 냉정과 열정 사이

cowboybebo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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쏠로로 2018년의 설날을 보내시는 분들. 영화 "멋진하루"를 추천드립니다.
영화는 시종 당신에게.. 괜찮다.. 괜찮다... 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시간 대 별로 달라지는 OST 참 좋습니다. 아래 링크 AM10:12 들으시면 찬찬히 읽어주세요.
AM10:12

헤어진지 오랜 남녀가 뭔가 이상한 하루를 함께 보내는 이야기다. 영화 제목에서 이 '이상한 하루'를 두고 '멋지다'고 표현되었다. 영화 중반에 이르러 제목 덕분에 출제자의 의도를 알것 같기도 하고... 스포일러 느낌의 제목이랄까.  영화 감상에 방해까지는 아닌데, 플롯마다 어떻게 "멋진 하루"와 연결될지 생각하게 된다.  "멋진 하루"보다는 "이상한 하루", 혹은 그냥 "하루"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아니면 말고.

남자의 이름은 병운. 여자는 희수다. 희수는 1년전 빌려준 350만원을 받으러 병운에게 들이 닥치게 되고, 여기서 영화는 시작된다.  둘은 연인이었다. 이별 제안은 희수가 했고 병운은 승낙했다. 희수에게 더 경제적 여건이 좋은 남자가 나타나서다. 희수는 그 남자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병운은 거절 할 수 없었고 희수와 이별했다. 

희수는 물병자리의 운명을 가진 여자. 자기 자신 보다 누군가를 더 사랑할 수 없는 운명. 

그 후, 희수와 결혼하려던 그 남자도 좋지 못한 일로 인해 경제적으로 추락하게 되고, 남자는 희수에게 이별을 제안한다.  희수는 승낙한다. 그렇게 남자들을 떠나보내고 혼자 남겨졌던 희수. 무슨 일인지 '어느날' 자신의  350만원을 빌려갔던 병운을 떠올리고 찾아나선 것이다.

'어느날' 희수는 힘겨웠다. 그 무게를 더이상 혼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가족(엄마)도 위로가 안된다. 무슨 일이었을까? 영화는 병운의 입을 빌어 그것이 누구나에게 존재하는 보편적 힘겨움이라고 정리했다. 그렇다. 누구나 힘든 법이다. 구구절절이 말하고 보여주지 않아도. 희수는 어쨌거나 이 힘겨운 시간에 병운이 생각났고, 350만원을 매개로 그를 찾아나섰다. 세월 속에 더 냉랭해진 물병자리 운명의 여자는 병운에게 당장 돈을 갚으라고 쏘아 붙인다. "내 돈 갚아!" 냉정한 여자가 댈 수 있는 유일한 이유다. 자기 손으로 끄적거려 완성한 어설픈 차용증을 내미는 희수를 보며 당황한 병운. '이 여자, 진짜 돈 받으로 온거야?'

병운은 참 웃기는 캐릭터다. 일단 백수다. 원래는 재산을 제법 물려받아서 사업을 했지만 망하고 말았다. 돈이 없어 전세금도 뺐다. 잘 곳도 없는 그는 경제 용어로 개털이다. 그런데, 이 남자... 매력적이다.  그를 거쳐간 사람들이, 특히 여자들이 이 남자를 사랑한다. 이 남자는 호기심도 많고 열정적이다. 철없이 보이지만 순수하기 때문이다. 생각없이 사는 것 같은데, 나름 이유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무능해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능력있어 보인다. 햄버거를 하나 시킬 때 조차 자신의 주관과 기호가 명확해 보이는데, 반면 극강의 배려심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 보다는 남의 감정과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희수와 이별한 후 결혼도 했는데, 아내가 불행질 것 같다는 이유로 떠나보냈다. 

끊임없이 지치지 않고 떠벌이는 이 열정적인 남자는, 높은 하늘을 올려다 보며 날기를 갈망하지만, 항상 땅에 남겨진 자들이 눈에 밟힌다. 병운은 두 세계를 살아가는 남자다. 링 안팍의 효도르 처럼.

희수가 병운을 찾은 것은, 아마도 자신의 냉정한 운명을 감당하던 이상한 과거의 남자가 생각났기 때문일 것이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병운은 희수에게 이상한 하루를 선사한다. 두 사람이 만드는 로드 무비에 희수는 병운을 다시 한번 본다. 편견없이 사랑하고, 사랑받고 살아가는 이 남자. 힘겨울 때는 경마와 효도르에게 위로받고 스스로를 달래는 이 남자. 아무도 없이 살아갈 것 같은데,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이 사람. 나와 너무나도 다른 사람.

희수는 웃는다.
어느 학교 운동장.  병운은 희수에게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변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때 희수가 웃었다. 물병자리의 냉정한 운명을 가진 여자는 생각한다. 이 남자라면, 변하지 않는 날 사랑해줄 수 있겠지? 내 운명을 감당할 수 있겠지.

희수는 운다.
지하철. 병운은  꿈 속에서 자신을 위로해준 효도르에 대해서 얘기한다. 희수는 울었다. 이 이상한 하루에 자신이 버렸던 한 남자의 인생을 체험했다.희수는  꿈에 나타난 이종 격투기 선수따위를 얘기하며, 스스로 실패와 절망를 삭히는 외로운 남자를 보았을 것이다.

이 하루, 희수는 자신을 위해 웃고 병운를 위해 울었다.    

이 영화에는 키스신도 없고 베드신도 없다. 하지만 영화 내내 진하고 야릇한 적막과 애매한 감정 선이 흐르며 끊임없이 서로를 밀고 당기는 남녀를 보여준다. 감독은 하루라는 시간적인 미장센으로 연출의 자유도를 제약했다. 그럼으로써 캐릭터에 힘을 싣고, 그들의 대화에 리듬감을 더했다. 이러한 캐릭터의 극대화는 배우들의 역할이 지배적이다. 병운 역할은 하정우씨가 아니라면 해낼 수 없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 캐릭터는 시나리오 상의 인물일까? 아니면 하정우씨를 통해 만들어진 인물일까?를 고민해야 했다. 영화 "우아한 세계"의 송강호씨가 생각났다. 하정우씨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성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희주에게 주어진 최대의 숙제는 하루 종일 뜻모를 미묘한 표정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슷하되 똑같아서도, 질려서도 안된다. 전도연씨는 이 영화에서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었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들. 하지만 모든 것이 담긴 표정이다. 

"멋진 하루"에는 표현방식과 캐릭터 설정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이 영화의 중심축은 에피소드에 따라 반응하는 희수의 감정변화와 그렇게 모아진... 이야기 전반에 걸친 희수의 정서다. 즉, 이야기의 중심은 희수의 감정이다. 전도연씨의 연기는 훌륭했지만, 시나리오 곳곳에 희수의 감정을 드러내는 장치들은 너무 직접적이었다는 아쉬움이있다. 또한 시나리오 상 병운의 캐릭터 설정은  현실적이지 못한 면이 있다. 매력도 설정이 너무 과하다. 희수의 감정은 좀 더 숨기고, 병운의 캐릭터는 좀 더 현실적이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그럼에도 영화 "멋진하루"는 전체적으로 매력적이다. 공간과 인물의 배치, 음악과 같은 연출이 감각적이다. 또한 희수와 병운이라는 캐릭터를 향한 아쉬움을 배우 전도연과 하정우 속에 잘 감추었다. 영화 "멋진하루"는 사람에 대한 향수와 침전된 서정성을 건드리는 영화다.

어쨌든, 물병자리 여자와 두세계 사나이는 과연 멋진 하루를 보낸걸까? 

영화의 끝. 물병자리 여자는 오갈데 없는 병운을 어느 도로에 내려놓는다. 그의 짐과 함께. 그리고 병운은 아쉬운 퇴장을 한다 싶더니, 금새 와인을 홀짝 거리며 새로운 세계로 빠져든다. 희수는 그런 두세계 사나이를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간다. 운전을 하며 생각에 잠긴다.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 

희수는 병운의 자리에 남겨진 또 한장의 차용증을 바라본다.  

물병자리 여자와 두세계 사나이는 사랑할 수 없어..
우린 변할 수 없으니까. 그저 멋지다고 할 수 있는 이상한 하루를 보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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