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 곡으로 BEST 10 도 아닌, BEST 3를 뽑아라는 것은 가혹행위입니다.
저는 자신이 채운 족쇄에 옴짝달싹 못한 채 처절했고 찬란했던 20대를 더듬거렸습니다. 그 시절 저는 화가 나면 화를 냈고, 울고 싶을 땐 부끄러움없이 울었습니다. 웃을 땐 바닥을 굴러다니며 웃었고, 누군가를 미워할 땐 끝장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할 때 모든 것을 던졌지요. 이문세의 노래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이문세의 음악은 작곡가 이영훈의 음악을 골라 들었지요. 이영훈의 가사를 듣고 있으면 누군가 나를 이해해준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시절 나에게 가장 큰 문제는 나 였습니다. 미워서 끝장을 보려하나, 모든 것을 던져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때의 나는 여전히 지금의 나 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는 앞으로 살아갈 나이기에 지금 현재, 오직 이 순간에만 나로 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탄생과 죽음은 모든 인생의 숙명이죠. 삶이란 영겁의 족쇄요, 자유는 순간에 불과 합니다. 순간순간 성실히 자유를 누리지 않으면 나는 그저 살아온 나요, 앞으로 그렇게 살아갈 나입니다. 잠자는 자들은 자유를 알 수 없습니다. 자유를 누리는 것에는 격렬함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신의 순전한 영혼을 마주할 수 있기를. 문제가 무엇입니까? 나 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요? 아니요. 사실 내가 누군지 모른다는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굳이 설명하려 들지 않습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말입니다. 자기를 알아가는 것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비용을 치루어야 하는 거지요. 왜 공짜가 아니냔 말이지. 내가 나를 알겠다는데 말야.
캐나다에서 외로웠던 한 이방인은 작곡가 이영훈의 부고를 접했습니다. 몇개월을 떠나있었지만 고국이 처음 그리웠습니다. 방안에 있는 검은 고양이 두마리를 내보냈습니다. 인터넷에서 노래 3개를 찾아 연달아 들었습니다. 한곡은 드라마 OST 였고, 다른 2곡은 이영훈이 만든 곡이었습니다. 첫곡에서 마지막 곡까지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20대 후반 타국의 어느 쪽방에 기거하던 이방인은 이를 악물었습니다. 20대에 마지막 눈물이 될 것이다. 아니, 내 인생의 마지막 눈물이 되게 해주겠다. 마냥 슬프고 서러웠습니다. 모든 것들이.
이 날의 노래가 제가 꼽은 이문세 BEST 3 입니다.
그날의 눈물은 제 20대 마지막 눈물이 되었지요.
30대에는 캔디가 되었습니다. 울지 않습니다.
1위 기억의 초상
2위 그때 내가 미처 하지 못한 말
3위 다시 만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