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주] 공터에서

cowboybebo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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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gold@stylegold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눈팅만 해오던 오마주 프로젝트에 마지막으로 지원합니다.
대박 고래되세요. ^^

4개월 전 아무것도 모르던 신입시절의 포스팅입니다.
태그도 엉망이군요. ㅎㅎ
북미회담이 성공리에 성사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다시 꺼냅니다.

이 잡되고 상스런 정치인들아.
이념이고 나발이고 노동을 해서 밥을 빌어먹는 자가 행복하면 그곳이 천국이란다.


공터에서.jpg

작가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아버지에게 물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왜 이리 집에도 안들어오시고 어머니 속을 썩이십니까?”

아버지의 대답.

“광야를 달리는 말이 어찌 마구간을 돌보겠느냐.”

유명한 일언(一言)이다. 작가는 그때 어린 나이였지만, 아버지의 대답에 담긴 허망과 쓸쓸함을 감지했다. 아버지가 달릴 광야는 어디에도 없었다.

소설 <공터에서>는 필연적인 탄생이 예정된 작품이다. 작가 김훈은 인생사의 허황됨과 비극을 자주 말했다. 그 말에는 자기자신의 버텨왔던 현세의 무게가 실려있었고, 그 가혹한 무게는 고통이 보편적이던 이전 세대의 비극과 이어져 있었다. 과거를 응시하는 김훈의 눈은 이해와 연민... 원망이 교차하며 혼란스럽다. 이순(耳順)을 넘은 작가의 말에는 살아낸 자의 홀가분함이 있었으나 그 말 끝에서 퍼지는 허망함은 날리지 않고 가라앉는다.

작가는 아버지의 "달리는 말"을 "기력을 다한 노쇠한 말"로 치환하였고, 그 말은 광할한 "광야"대신 "공터"에 있다. 제목에는 조사 "에서"가 붙었다. 불알이 오그라든 병든 말을 공터로 끌고와 세웠다. "공터"라는 단어는 다만 비워져 피폐하고 공허할 뿐이지만, 조사는 한 존재를 소환하며 강렬한 고독의 커버를 씌웠다.

공터에서...

작가는 모든 낭만과 개념을 배제하고 날카로운 현실로 주인공을 몰아세웠다.

김훈의 이전 작품이 그러하듯 소설 <공터에서> 역시 서술의 힘으로 밀고나간다. <공터에서>의 서사는 가브리엘 G.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연상케 했다. 서사는 각 등장인물의 개별사가 뒤섞이며 큰 축의 연대기적 리얼리즘을 구성하고 있다. 이야기는 무심하다가도 세심하고 멀다가도 가까워졌다. 시간과 시간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밀고 당겼다. 소설은 일제 치하와 해방, 6.25로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가장 비극적인 장면들을 다루고 있고 읽는 내내 황량하고 뜨거운 공터로 끌려가는 듯 하여 숨이 턱턱 막혔다.

소설의 초장에 등장하는 마동수의 죽음에 대한 강렬한 서사는 작품 전체의 정서를 지배한다. 이 역시 <백년의 고독>과 비슷한 부분이다. 처형 집행 직전의 아우렐리아노 부란디아 대령이 느끼는 쓸쓸함은, 황폐한 마콘도를 시작으로 소설 전체의 정서를 지배한다. <공터에서> 초반부, 마동수의 죽음을 묘사하는 작가의 필력은 정말 압도적이다. 마동수의 죽음은 이후 모든 서사의 출발이자 결론이다. 그는 죽어서도 산자의 삶에 개입하며 끈질기게 들러붙는다.

작가 김훈은 자신의 소설에 어떠한 의도도 담지 않는다지만, 그의 서술은 언제나 분명한 대상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그 대상을 주어로 삼고 형용사며 부사며, 동사를 조합하는 작가에게는 분명히 어떤 의도가 존재한다. 작가 김훈의 시선은 여전히 "버려지고, 남겨진 미숙한 존재들"에게 있다. 작가 김훈의 세계에는 실체없는 이념의 마찰이 비극을 양산하고 있고, 적의 실체도 모른채 물리적 고통을 온 몸으로 감내하는 자폐적 존재들이 가득하다.

어떠한 이념의 틈바구니에 끼지 않고, 인생의 고통을 그저 온 몸으로 버텨내는 사람들이다. 작가 자신이 살아온 인생처럼 그의 주인공들은 생존과 밥벌이에 닳아있다. 인간의 탄생은 우연이나, 그 우연은 운명적인 강렬한 연결고리에 묶여있기에, 주어진 비극을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 인간은 쉽사리 도피할 수 없는 존재기에 온 몸으로 저항한다.

"좁은 항로에서 일자진을 펴고 적을 맞으리." (칼의 노래)

장 폴 사르트르는 말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같은 맥락에서,

"일상은 역사에 앞선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한다.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오늘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한다. 저녁이 되면 집으로 와서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세상 모르고 잠든 아이의 볼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잠이 든다.

"너는 어느 편이냐? 너는 본질인가? 너는 역사인가?"

허망하다. 허망한 질문 앞에 작가와 그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자신의 공터에 설 뿐이다. 위대함은 다만 오늘의 일상을 살아내는데 있다.
버려진 자신을
남겨진 처지를
미숙한 자신을 탓하지 마라.

나는 그저 나의 몫을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이 글은 [오마주]프로젝트로 재발굴한 글입니다.

원본 : https://steemit.com/kim-hoon/@cowboybebop/6h4if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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