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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늑대의 시간 (2)
Photo by @aileecho
포스팅 추천음악은 Chet Baker 의 "Tenderly"
진득한 재즈의 늘어진 음표 사이에 고독이 채워지고, 이미 외로운 영혼들은 별처럼 띄엄띄엄 앉아 위스키 한잔 씩을 움켜쥐고 있다. 초저녁 외로운 별들이 하나씩 모여들더니 이내 북적북적. 도시의 밤, 하늘의 별은 온데간데 없고, 유흥가의 한 귀퉁이에 쓸쓸한 성좌(星座)가 그려질 뿐이다.
항상 그런 법칙.
원리를 알 수 없지만 경험적으로 반드시 그렇게 되고 마는 법칙. 술에 관한 두가지 “항상 그런 법칙”이 내게 존재한다. 첫째, 나는 부장과 술을 마시면 항상 취한다. 둘째, 나는 취하면 반드시 나오코 얘기를 한다. 이 두가지 법칙은 중첩되는 것이어서, 퇴근길에 가볍게 한잔 하자는 부장의 꼬임에 넘어간 나는 취기에 오른 채 오늘도 나오코 얘기를 주절거리고 있는 것이다.
“나오코가 자신의 우물을 찾아 떠나던 날, 제게 이렇게 말했죠..”
이렇게 오늘도 나오코 얘기가 시작.
"나오코라면, 대관람차에서 처음 만났다던 그 아가씨 말인가?" 부장이 묻는다.
"네" 내가 답한다.
"노을 질 녘에 나타난다는..." 부장이 덧붙이고,
"네" 내가 다시 답한다.
부장은 매번 나오코 얘기를 들어면서, 첫등장에 이렇게 시치미를 떼며 받아넘긴다.
포니테일의 바텐더가 술잔을 내밀며 윙크하면, 부장은 가볍게 술잔을 들어올린다.
바텐더는 보기드문 짙은 레드 립스틱을 칠했고, 내 시선이 자주 머무른다.
"계속 하시게..."
부장의 위스키가 달아보인다.
"네, 나오코는 얘기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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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언제나 아지트를 찾아 해매는 남자 아이가 하나 있었어. 나이가 들어서 남자들의 아지트라는게 뻔하고 식상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릴 때는 제법 신나는 일이었지. 우리가 함께 있을 아지트를 만들자며 산으로 들로, 폐가나 폐교를 돌아다녔지. 거기에 주간 만화잡지나 휴대용 주머니칼, 구급상자, 담요와 간식거리 같은 것을 가져오게 했지. 장소를 찾으면 각자의 역할대로 청소를 하고 문을 만들고 제법 흙더미를 모으고 풀과 나뭇가지를 겹쳐서 방호를 만들었어. 꽤 봐줄만한 방호였지. 학교나 집에서는 골칫거리 정도로 생각했겠지만, 우리는 걔를 좋아했어.
그 녀석은 어른들을 무서워하지 않았어. 아, 그 때는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는게 맞겠군. 어른들이란 아이들의 아지트를 쓸모없는 거라고 생각하지. 그래서 아이들의 세계에선 어른들은 악당일 수 밖에 없나봐. 단한번도 직접 불러보진 않았지만 우린 그 아이를 항상 피터팬이라고 생각했어. 어른에 맞서는 피터팬.
여름을 맞아 여기저기 지하에 아지트를 찾아해매던 피터팬과 무리들은 우리 아파트 지하에 들어가게 되었지. 아마 내가 말했을거야. 우리 아파트 지하가 어떠냐고. 하지만 정작, 탐색에 나선 당일에는 무슨 일이지 나는 거기에 없었어. 그리고 아이들은 그 지하에서 한 마리의 거대한 짐승이 눈을 번뜩이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을 보았어. 혼비백산으로 우르르 뛰쳐나왔지. 피터팬은 마지막으로 나오며 철문을 걸어 잠궜어. 남자아이 몇몇이 도왔지. 아이들은 자신들이 본 것에 대해 서로 얘기했고, 해가 질 무렵 각자 집으로 돌아갔어. 그날 밤, 모든 아이들이 같은 말을 했지.
"늑대를 봤어요."
기억하지? 왜 우리가 어린 시절에 대규모의 늑대사냥이 있었잖아. 사냥꾼에게 쫓기는 늑대인간들이 개처럼 한껏 몸을 웅크려서는 음식을 훔쳐먹고는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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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갑자기 부장이 내 얘기에 끼어든다.
“인간이 늑대를, 늑대가 인간을 사냥하던 잔혹한 시기였지. 정의로운 자들을 늑대로 몰아세워 살육하고, 영리한 늑대들은 비열한 인간을 학습하며 살아남았지. 난 이제 누가 인간이고 늑대인지 알 수 없게 됐어. 늑대와 인간이 별로 다를게 없지”
부장이 위스키를 들이켰다.
재즈는 노골적으로 취객들을 주무르며 나른해진 육신을 더 깊은 몽환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었다.
"부장님은 늑대인간을 만난 적이 있나요?"
부장은 대답없이 술잔을 빙빙 돌린다가 한마디 한다.
"대관람차 회의 때마다 만나지 않나... 그 놈들 중에 적어도 한 놈은 늑대야."
"네? 정말요?"
"응. 하는 짓이 인간 아니잖아..."
나는 나오코의 마지막 얘기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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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지하에 늑대가 숨어들었다는 소문이 돌자, 주민회가 열렸고 입단속이 시작되었어. 특히 그날 그곳에 있던 아이들은 한동안 집밖으로 나가지 못했지. 자원하고 차출된 남자 어른 여섯이 휴대용 렌턴과 몽둥이, 전기충격기와 포대기를 준비해 지하실로 들어갔지. 어둡고 음침한 지하에서 짐승은 재빠르고 위협적으로 움직였고, 남자들은 속수무책으로 지상으로 밀려나왔어. 철문은 무겁게 잠겼고 어른들은 자신들이 본 것에 대해 서로 얘기하다, 해가 질 무렵 각자 집으로 돌아갔어. 그날 밤, 남자들은 침묵했고, 다음날 주민회에서 모든 같은 말을 했지.
늑대가 아니라 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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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이들이 거짓말한게 되었군. 사실 거짓말은 어른들이 했지. 그건 늑대였어."
부장은 특유의 예리한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흐리멍텅하게 부장을 쳐다봤다.
"어떻게 아셨어요?"
"그 나이 때라면 <대사냥의 밤> 직후니까.. 사냥에 몰린 늑대들이 도시 구석구석에 숨어있을 때였어.
아파트 지하는 좋은 장소였지."
"<대사냥의 밤> ... 인간으로 위장한 늑대들을 색출했죠. 그날 늑대도 인간도 많이 죽었던..."
나는 씁씁한 어조로 살육의 역사를 되짚었다.
"늑대들은 믿었지. 태초에 인간과 늑대는 하나였다고.
세월 속에, 늑대가 되는 법을 잊은 자들은 인간이 되었고,
인간이 되길 잊은 자들은 늑대가 되었지.
약속된 달의 주기가 채워지면 잃어버렸던 태초의 모습,
그 원형을 되찾을거라고 믿었어."
부장의 어조는 이것을 믿는 듯 보였다.
"믿으십니까?"
부장은 내 쪽으로 보려는 듯 고개를 돌리다, TV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생각해봐. 처음 이 도시에 늑대들이 나타났을 때...
도시 밖에서 들어왔다는 정황이 없었어"
부장은 예리한 눈빛을 풀고, 날 지그시 바라봤다.
난 나오코의 얘기를 이어갔다.
Photo by @aileecho
결국 지하에 간 아이들은 거짓말쟁이가 되었고, 비난은 언제나 그렇듯 가장 약한 자에게로 흘러갔어. 어른들은 평소 맘에 들지 않던 피터팬이 아이들을 선동했다고 비난했지. 약자를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했어. 피터팬의 집은 가난했어.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나는 직접 사실 확인을 위해 피터팬과 함께 다시 지하로 들어갔지. 다시 내려간 아파트 지하에는 짐승이 아닌 사람이 있었어. 거기엔 굶주리고 고뇌에 빠진 한 남자가 있었어. 그 남자는 내가 만난 첫번째 늑대였지 우린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지. 그리고 그 때였어. 처음으로 우물을 알게된 건 말이야.
"세상의 기원과 맞닿은 우물이 있단다. 그 우물의 이름은, 나오코."
"늑대가 맞았어요." 지하 밖으로 나와 이 사실을 말한 순간부터 점점 고립되기 시작했어. 어른들은 물론이고, 자신이 본 것이 늑대가 아니었다고 거짓 시인했던 친구들도 이번에는 내가 거짓말을 한다며 몰아세웠지. 외롭고 어려운 날들이 많았는데, 갈 수록 우물의 이야기는 선명해졌지.
널 만나고 행복했어. 널 만나고 외롭지 않았어. 항상 네가 날 가득 채웠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난 점점 고독해지기 시작하는거야. 너의 진심을 들여다보려 할 수록 사랑은 희미해졌어. 그럴수록 우물은 선명해져오고... 나 이제 그 우물을 봐야만 할 것 같아. 난 이제 여행을 떠날거야.
"부장님. 도대체 우물이 무엇입니까?"
"가장 평안하면서도, 시리도록 고독한...자폐적 공간"
부장의 눈동자에 언뜻 우물이 비치는 듯 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초에 늑대와 인간이 하나이 듯,
사실 우물 안과 밖은 하나가 아니었을까...
자신의 우물을 찾았을까요?"
"응. 찾았을거야..."
"돌아올까요?"
부장은 대답이 없이 한참을 생각했다.
"기다리지 마시게. 그녀가 거기라면, 자네는 여기야..
안과 밖은 하나였으니까...
모두 재즈를 들으며 외로운 열차에 올라 고향으로 돌아가자구."
"사랑할겁니다. 끝까지."
나의 비장한 표정을 들여다보던 부장은
술잔을 들어올리며
" 고독하고 영원한 사랑에 건배."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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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의 마지막 술잔은 비었다. 바(bar)의 시계는 12시를 훌쩍 넘었고,
날씬한 초침이 몽롱한 시간을 휘젖고 있다. 포니테일의 바텐더가 다가와 내 손등에 살포시 손을 올린다.
Hey, This is Last call
손등을 훔치며 미끄러져 나가는 차갑고 긴 손가락의 감촉에 나는 방금 보았던 시계의 초침을 떠올렸다.
재즈바에는 마약같은 음악이 흐르고, 시계의 초침은 환영의 밤을 달린다.
초저녁 북적이더니 어느덧 몇몇의 기진한 영혼들만이 깜빡이고 있다.
나는 부장과 마지막 손님이 되기로 결심한 채,
졸린 눈으로 바라본다.
밤을 달리는 초침과 긴 손가락, 흔들리는 그녀의 포니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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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
[콜라보 시리즈]
#001 나오코의 우물
#002 너만이 없는 거리
#003 개와 늑대의 시간
#004 절대동안과 빛바랜 사진
#005 어떤 장례식(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