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직후 특별한 스펙이 없던 나는 구직활동이 길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백수가 본업이 되었고 구직활동이 부업쯤 돼버렸다. 무수히 많은 면접을 보다가 나중에는 재미삼아 오디션처럼 참여하기도 했다. 그중 기억 남는 면접자리에 대한 이야기다. 넷상에 나도는 다른 경험들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그래도 나에겐 특별한 기억이기에 써본다.
무슨 교육업체 면접이 잡혔다. 찾아보니 그럴듯한 회사였고, 간신히 입사할 수 있어보였다.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얼굴에 비비크림까지 발랐다. 여성들의 노력에 비하겠나만, 거울을 보며 나름 갖추었다. 그렇게 씨름을 하고 회사까지 찾아갔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해 사무실에서 대기했다. 기본 매너이기도 하고 회사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간을 보는데, 사무실에서 개가 짖고 있었다. 사원들이 일하는 공간에 개가 있었다. 짖는 소리가 컸지만 애완견인가보다 했다. 대기 시간이 길어졌다. 30분이 넘게 흘렀다. 앞서온 사람들이 면접 중이라 했다. 제대로 된 면접인가보다 했다.
한동안 더 기다린 끝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자 두명과 함께 사장 앞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일대일로 자세히 보고 싶지만 앞선 면접으로 지체 된 것이라 양해해 달라고 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면접자가 두 명 더 있었다. 남자 한명에 여자 한명. 그렇게 면접을 봤다. 봤는데...
면접일까? 세상에, 이런게 면접인가 싶었다. 약식 면접은 많이 봤다. 열악한 사무실도 많이 봤다. 개가 있는 사무실도 이해한다. 그런데 이것은 아니었다. 사장의 말이 이어졌다. 상당한 눌변이었다. 뒤죽박죽이었고, 한번 시작한 말을 결코 끝내지 못했다. 면접의 기본인 호구조사도 하지 않은 채 의미 없는 이야기만 이어졌다.
“우리 회사는 교육하는 강의 업체에요. 인터넷 강의 알아요? 그건데, 해봤어요? 국어 영어 수학이 있는데 예전이랑 많이 변했어요. 영어 교육이 예전에는 문법위주였는데, 문법 알아요? 문법 문제 내볼게요.”
영어의 시제가 몇 개인 말해보라고 했다. 대충이라도 세어보라고 했다. 모두들 강사로 지원하지 않았다. 핵심에서 180도 벗아난 질문에 어이가 없었다. 난 대답할 생각조차 안했다. 그냥 그렇게 넘어갈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다른 남자 면접자가 우물우물 대답을 하는 것이다.
“그건 이건데.. 공무원 준비때 배웠는데.. 이거 같은데..”
면접 화법이 익숙하지 않은지, 말끝을 계속 흐리며 간신히 대답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문법 문답이 정말 끝없이 이어졌다. To부정사와 동명사, 자동사와 타동사, who와 whom의 차이, 이런 것들이 모조리 다 나왔다. 과장 없이 40분쯤 이어졌다. 목적도 없고 흐름도 없었다. 사장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을 것이고, 대답하는 면접자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랐을 것이다. 밖에서는 개가 짖고 있었다.
여기서 멈춰야 했다. 그들끼리 끝낼 수 없다면 제3자가 나서서 중개해야 했다. 이건 이미 목적이 상실된 면접이었다. 심지어 면접도 아니었다. 긴장감 같은 것도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강의나 설교였다면 그래도 참았을 것이다. 나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온것인데, 이런 걸 참아낼 순 없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이러려고 온거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속 시원하게 나와 버렸다. 스스로 대견하고 멋있었다. 다만 그런 시간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황급히 사무실을 뜨니 서글퍼졌다. 40분 동안 입사동기나 자기소개 따위는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나야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사는 놈이지만, 남은 면접자들은 아닐 것이었다. 끝나지 않는 면접에서 의미 없는 강연을 들으며 시달리고 있을 그들이었다. 그들이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이제 영어에서 다른 주제로 넘어갔으려나. 영어면접 이었다. 영어는 한문장도 사용하지 않았고, 본래 의도에도 없었겠지만.
큰소리 치고 나와 미안하다며 소주 한잔 하자고 제안하고 싶었다. 여자 면접자가 마음에 들기도 했고. 건물 밖에서 기다렸다. 20분, 30분을 기다렸다. 나오지 않았다. 아마 끝나지 않는 지옥에서 시달리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우울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패잔병 같은 너덜너덜한 마음이 되었다. 내 행동은 시원했고, 한점 후회가 없었다. 그러나, 겨우 그런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면접을 본 나 자신과 앞으로 수도 없이 그런 면접을 볼 내 처지가 처량해져 한강을 찾았다. 흘러가는 한강물을 한참이고 쳐다보다가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