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꿈을 자주 꾼다. 난 분명 아주 한참 전에 전역 했다. 예비군마저 끝냈다. 그런데 꿈속에서 나는 군인이다. 그것도 신병이다. 병무청의 말 같지 않은 논리에 소송을 걸지만 패한다. 훈련에 빠졌고 유격을 받지 않았으니 다시 가야한다는 허접 논리다. 발버둥 치지만 결국 다시 군대에 끌려간다.
악몽이다. 몸서리 칠 만큼 끔직한 악몽이다. 깨어나면 온몸이 땀범벅이다. 심지어 속옷까지 젖어있다. 어지간한 남자라면 군대꿈 경험이 있을 것이다. 노인이 되어서까지 한평생 꾼다고 한다. 군대 다시 가기는 차라리 죽음을 택할 고통일 것이다. 그러니 꿈에서까지 나오는 것이겠다.
다시 고3 되기는 어떨까? 사실 상대도 되지 않는다. 다시 고3 되는 쪽이 열배쯤 낫다. 그런데 왜일까. 나는 가끔 고3꿈을꾼다. 묘한 기분이다.
난 분명 일찌감치 대학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왔는데, 교실에서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정책이 바뀌어 평생 수험생이 돼야 한단다. 말도 안 되는 꿈이다. 난 망부석처럼 우두커니 낡은 책걸상에 밤 늦도록 앉아 있다. 군대꿈보다 낫지만 그래도 괴로운 꿈이다. 심지어 고3 꿈을 꾸는 횟수가 더 잦다. 거칠게 지나가 이젠 별 기억도 남지 않은 고3시절인데, 왜 꿈에 나올까.
고3이 된 3월부터 수능 직전인 11월 까지 대략 8개월, 의무적인 야자를 했다. 아침 7시 반 등교, 10시에 하교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힘들고 답답했다. 그나마 몇몇 친구들과 뻘짓을 하며 한숨 돌리곤 했다. 괴로움과 즐거움이 반반 섞인 시간이었다.
창창한 날에 빠따를 맞아가며 억지 공부를 했다. 답답했지만 서로가 같은 처지였기에 위로가 됐다. 나는 xx 대학에 갈 거야, 난 어딜 가든 이 학교만 졸업하면 좋겠어, 하며 서로의 푸른 날을 위로하며 보냈다. 인생의 황금기일 나이에 감옥 같은 학교에 갇혀 지냈다. 물론 지금은 추억이고 그립다. 당시엔 마냥 즐거웠을리 없다. 대학 어디갈래?/졸업하면 뭐할래? 같은 질문은 제대하면 뭐할래? 출소하면 뭐할래? 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수능을 친 날부터 학교에 잘 가지 않게 되었다. 갑작스런 단절이다. 수능 성적표가 나오기 전까지 체험학습과 소풍으로 몇주를 떼웠다. 수능 성적표가 나온 날부터 기나긴 방학이었다. 그 후 학교 원서를 쓰고, 그간 놀지 못했던 한풀이, 대학 합격자 발표와 OT등이 이어졌다. 학교 친구들과는 자연히 연락이 뜸해졌고, 그렇게 멀어져갔다. 숨죽여 지내다가 갑작스레 찾아온 해방 후에 어영부영 대학생이 되고, 서로 흩어졌다. 한때는 하루 14시간 같이 지냈던 아이들이었다.
그에 대한 아쉬움에 고3꿈을 꾸는 건 아닐까. 솔직히 군대가 훨씬 힘들었지만, 서로 마지막 인사를 나눌 시간이 넘치게 많았다. 고등학교 졸업 땐 그렇지 못했다. 갑자기 헤어진 느낌이다. 그에 대한 아쉬움 아니었을까. 별로 공부도 하지 않았던 내가 아직까지 고3 교실에 갇혀 있는 이유 같다. 준비도 없이 어른이 된 것만 같다.
헛소리 지껄이며 막막하게 펼쳐진 시간을 감내하던 반 친구들, 열린 가능성에 오히려 막막함과 불안함에 떨던 그 시절 아이들.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난 고3 교실을 졸업하지 못한 것 같다. 치열하게 살아내지 못했으므로 졸업할 자격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