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치 만화 <키마이라>를 소개한다. 압도적인 설정의 작품이다.
고교 동창인 3인은 각각 재벌 2세, 뉴스 PD, 야쿠자 2인자로 살고 있다. 이들은 자기들이 가진 돈, 정보력, 폭력을 동원해 완벽한 정치인을 만들어 일본을 장악하려 한다. 연고가 없는 젊은이를 납치, 세뇌해 완벽한 ‘신’을 만들어 낸다.
이들은 결국 ‘신’을 만드는 데 성공하지만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소름돋는 설정의 멋진 작품이다. 다만 시작은 창대했지만 나중은 미약했다. 결말에 있어 다소 아리송함이 남는다. 작품 초반 작가의 말에선 ‘길고 긴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해놓고는, 6권에서 허둥지둥 결말을 맺는다.
일본 정치 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 외압으로 조기완결 됐다는 카더라가 있긴 하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정치 9단>, <쿠니미츠의 정치>같은 다른 정치만화처럼 지루하지 않고 재미와 유익함이 있다. 기회가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국가는 폭력을 독점한다. 막스베버는 ‘폭력의 합법적 독점’이 국가의 본질이라 했다. 군대, 경찰, 법원 등은 이 수단이다. 폭력의 어감과는 다르게, 이는 공권력이다. 합법적이고 적절한 공권력은 국민을 지키는 안전수단이다. 국가는 국민들의 합의체로써 때로 필요한 것들을 독점할 이유가 있다.
하지만, 불필요한 것까지 독점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정부는 ‘도박’을 독점했다. 도박을 선별적으로 합법화해(토토, 강원랜드, 로또) 국가의 영향 아래 두었다. 국가 주도가 아닌 것은 모조리 불법으로 두었다. 최소한의 이해도 없이 한탕주의로 너도나도 뛰어들었던 ‘코인붐’은 이에 대한 반발이었을지도 모른다.
정부는 또 포르노를 말살했다. 이게 꼭 필요한 일일까. 한국은 ‘성’에 있어서라면 지나치게 억압적이고 보수적인 국가다. ‘성’에 관한 것은 일절 허용하지 않는다. 국가 주도의 프로토가 배당률이 형편없는 것처럼, 나라에서 허락한 성인물(에로영화)은 실소가 나올 만큼 수준이 낮다. 이걸로 성욕을 해소한다는 사람을 난 본 적이 없다.
성별을 떠나 인간에게는 성욕이 있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식욕과 수면욕과 같은 차원에서 접근해도 될 일이다. 왜 엄연히 존재하는 성욕을 없는 척하며 터부시하는지 모르겠다.
건강하게 소비하고 향유해도 될 성문화는 음지로 숨어들었다. 여성에 대한 상품화며 억압이라는 이유로 포르노를 반대하기도 한다. 이는 잘못된 논리다. 포르노가 없다고 여성들이 안전해지지도, 관음증적 시선을 덜 받지도 않는다. 포르노가 성폭력을 조장한다는 실증적 증거도 없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영화나 드라마가 현실 아닌 판타지를 채워주는 것처럼, 포르노는 성적 욕망과 판타지를 채워주는 쪽으로 기능한다. 이를 과연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성인사이트를 폐쇄하거나 차단하면 우회하는 식으로 피해간다. 포르노를 허락하지 않은 결과, 개인 주도의 불법영상이 생겨나는 양상이다. 차라리 포르노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양성화 하는 것은 어떨까.
포르노 합법화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중적인 행태는 버려야 한다. 우리들은 수많은 걸그룹을 보며 10대의 성까지 소비하는 중이다. 아닌척하지만 이율배반적인 일이다. 성과 포르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어린 여학생까지 무대에 세워놓고 은밀한 시선을 보낸다.
성에 대한 이중적 접근을 버리고 포르노를 인정해야 한다. 포르노를 인정하고 양성화 한다면 결코 있어선 안될 몰카영상이나 개인유출물 등도 줄어들 것이다.
번화가에 성인용품점이 많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어쩌면 포르노가 합법화 될 사회적 토양이 무르익은 것은 아닐까. 우리는 성에 있어서 지금보다 너그러워져야 할 것이다. 불필요한 것은 나라에서 막아야겠지만, 필요한 것은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마지막 한마디로 글을 마친다.
정부는 국민에게 포르노를 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