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시골집 같은 서울집에서 태어나 대학졸업까지 쭉 살았다. 그 집이 너무 싫었다. 낡고 오래되고 여기저기가 말썽인 집이었다. 항상 벗어나고 싶었지만 좀처럼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졸업을 계기로 자의반 타의반 독립하게 되었다. 그 이후 내 삶이 변해버렸다.
독립 이후 천성이 게으른 탓도 있고 운이 없던 탓도 있고 이래저래, 여차저차 정말 다양한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역마살이 끼었는지 정말 엄청나게도 이사(해외 취업까지) 다녔다.
내가 세어본 이사 횟수만 30회쯤 되었다. 그 이후로 세는 것을 포기했다. 용달차를 부르거나 차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 수월하게 처리한 적도 있지만, 그냥 캐리어 하나에 짐을 몽땅 쑤셔박고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옮겨 다닌 적도 많다. 캐리어에 들어가지 않는 짐은 택배를 부치거나, 아주 잡다한 물품들은 그냥 버렸다.
그렇게 수도 없이 많은 생활용품들을 사고 버렸다. 같은 물건들을 여러 번, 그것도 모두 다이소에서 샀다. 이사 후 방을 꾸미는데 필요한 물건은 모두 다이소 제품이었다. 이상하게도, 옮겨가는 모든 곳마다 다이소가 있었다. 신기했다. 심지어 잠깐 있었던 태국에서도 다이소 물건 덕을 봤다. 지금까지 다이소 물건 중 옷걸이라도 버리지 않고 모았다면 아마 거기에 깔려 죽었을 것이다. 버릴 때마다 다시 살 것을 알면서도 같은 짓을 반복했다.
자취생들은 아마 알 것이다. 집 근처의 다이소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얼마나 자주 찾게 되는지를. 다이소가 없었다면 삶을 사는 게 불가능 했을 지도 모른다. 라면과 더불어 다이소는 내 삶을 유지시켜준 일등공신이다. 심지어 해외에 나가서까지 다이소 물건을 샀으니, 말 다했지. 우후죽순 생겨나도 별로 보기 싫지 않은게 다이소다.
다이소 쇼핑을 하면서 감상에 젖어 헛소리를 조금 써봤다. 이번엔 버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물건을 산다. 다이소에서 지른 물건이 최소 백만원은 될 터인데, 난 다이소 멤버십 포인트가 없다. 귀찮음은 필요를 넘어선다. 남자들은 다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