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로 사회가 시끄럽다. 가짜 미투에 무고 당하는 피해자도 생겼다. 익명의 실체 없는 진술은 믿으면서, 정봉주나 그가 제출한 구체적인 증거는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꼭 소개하고 싶은 영화다. 2004년 작 <프리즈 프레임> 완전히 잊힌 영화지만 현 시점에 딱들어맞는 영화다. 훌륭한 소재에 연출력도 갖췄다. 짧은 소개부터 나간다.
남자 주인공, 그의 집엔 사각지대 없이 수십대의 카메라가 달려 있다. 침실은 물론이고 화장실까지 예외 없다. 촬영이 절대 끊어지지 않게 시간마다 테이프를 바꾸고, 용변이나 샤워할 때도 촬영을 멈추지 않는다. 몸에 카메라를 부착한 채로 외출하는 등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셀프촬영 중이다. 살인사건 누명에 씌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어째서인지 경찰은 결백한 그를 잡아 넣으려 혈안이다. 심지어 그는 머리카락이나 털이 증거로 악용 될까 두려워 온몸의 털을 밀어버린다. 처참한 나날을 보내던 중 그의 결백을 밝혀줄 테이프 하나가 없어지고, 의문의 여기자가 나타나 그를 위험에 빠트리는데...
아이디어와 연출력으로 승부한 저예산 스릴러로 각광 받은 작품인데, 현재는 완전히 잊혔다. 네이버나 구글 모두 자동 검색이 뜨지 않고, 검색 결과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감독은 본 작 이후 별 활동도 없다. 의아하다.
철 지난지 오래지만, 현 상황에 놀랍도록 부합되는 영화다. 인생을 한순간도 빠트리지 않고 녹화해야 하는 남자, 심지어 현재 같은 디지털도 아닌 테잎을 넣는 방식이라니. 하루하루가 지옥이라 할만하다.
영화는 주인공의 과거나 음모에 빠진 이유 등을 밝히지 않는다. 알고 봤더니 나쁜놈이었다, 식의 반전도 없다. 그저 선한 자가 지옥에 떨어진 모습을 스릴 있게 보여준다. 나름 통쾌한 결말이 있지만, 그마저도 씁쓸함을 감추긴 어렵다.
어떤 집단이 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고 범죄자로 만들려 작정한다면 대책이 없다. 영화처럼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수밖에. 분단위로 찍은 사진도 증거로 믿지 않는 세상이다. 언론인과 교수라는 사람마저 아주 작은 공백을 찾아내 빡빡 우기고 있다. 무고하는 자는 권력이 되고 무고 당한 사람 편엔 아무도 없다.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으려면 일상의 기록을 빠짐없이 남겨야만 한다. 알리바이 증명을 위해 본인의 행적을 1초의 공백도 없이 녹화한다면 무고와 가짜미투의 피해를 예방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너무 슬프지 않은가.
어딘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리고 영화의 남자에게 동정심이 생긴다면, 현재의 미투문화를 짚어 봐야 한다. 반박이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 증거를 제출해도 수용하지 않는 사람들.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선 영화처럼 처신하는 수밖에 없는 것인지. ‘팩트’를 내세워도 ‘2차피해’가 되는 세상이니, 현실은 영화보다 더 잔인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