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때로는 언뜻 언뜻 옛날이 그리워지기도 하는군요!

codingart(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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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가 자욱해서 인지 주말이래 봤자 신이 날 리가 없다. 우두커니 나만의 공간에 들어박혀 뒤적거려 보는 유튜브 영상. 이놈의 유튜브 인공지능 심어 놨다더니 어떻게 된게 항상 꼴배기 싫은 어설픈 영상들이나 잔뜩 올리고 있으니.

그런데 예전 기억이 있는 명동 백작이 뜨는군요. 보니 이미 작고한 가수 나애심의 “세월이 가면”의 1950년대 명동 뒷골목 문화를 배경으로 한 내용이군요. 물론 방송국 PD들이 1950년대 당시의 명동 분위기를 살리려고 애썼겠지만 색조나 배경이 많이 어색한 듯. 70년대에 명동을 어슬렁거리며 배회해 봤던 내 자신이 보기에는 너무 어색한 면이 많은 듯하다. 내가 나애심의 팬이랄 것도 없지만 이북에서 피난온 부모님 영향인데 수년전에 작고하신 모친이 나애심과 진남포 여고 동창생이라는 얘기를 자주 듣곤 했다. 그래서 그랬던지 나애심의 “세월이 가면”과 “성당의 종소리“을 인터넷에서 찾아 들어 보았더니 역시 우리 어머니의 이북 말투가 배어 있다는 느낌이 왈칵 들었다. 그 느낌이란게 어떻게 보면 강원도 사투리와 비슷하지 않은가 싶다.

어쨌든 영상에서 시각적인 면도 중요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줄거리의 흐름 또한 무시하지 못한다. 그 당시 나애심이야 말로 이미 히트곡이 있어 잘 나가는 대중가수였고 명동에 모여 않은 막걸리 판에서 시인 박인환의 시작 능력과 즉석에서 들이대는 이 진섭의 작곡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이런게 소위 우리의 대중문화 창조력인 듯하다.

이런 방식이 1950년대의 문화이면서 우리의 삶의 일부였다면 7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우리의 삶은 또 어떠한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형제 중 둘째인 나는 철저한 골수 이공계가 되었지만 첫째 형은 그 당시 용어로 대학 보컬인 송골매라는 딴따라 패에 몸을 담았다. 같은 방을 쓰면서 방 한구텡이에서 공책과 연필로 끄적였던 형 작사했던 가사들 중의 하나가 송골매 배철수가 부른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였던게 기억이 생생하다. 7080의 기수였던 배철수는 76년에 형과 함께 종로에 외출했을 때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통기타를 가슴에 들고 다니던 모습이나 지금 모습이나 이 양반 머리색 희어진 것 외에는 똑같아 보인다. 배철수를 다시 본 것은 몇 년 전 모친상 자리에 문상차 찾아온 자리에서 그와 함께 왕년에 희나리를 불러 유명했던 구창모와 함께였다.

그때 그 당시에야 막걸리 집이든 분식집이든 어디선가 함께 모여서 뭔가를 하곤 했는데 지금은 인터넷과 SNS 세상이 되어 환경이 엄청 달라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과거의 그런 문화 창조의 바탕위에 오늘 우리가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명동백작 “세월이가면”에 이어지는 전혜린 편이 뜨는군요. 전혜린이 퍼뜨린 문화가 바로 다소 방황하며 반항적인 인간상을 모티브로 하는 독일 작가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을 비롯한 몇몇 작품들인 듯하다. 나 자신도 그 작품을 읽은 것으로 보아 전혜린의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할 수는 없는듯하다. 어색하면도 짧은 영상이지만 그 배경 스토리를 생각하면서 감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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