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른손 둘째 손가락 가운데 마디에는 2cm 가량의 희미한 흉터가 남아있다.
내가 4살때 손가락이 덜렁거릴 만큼 크게 베어서 바늘로 꿰맨 자국이다.
그 때 나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다쳤을 때의 상황같은 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유독 어떤 장면들은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앞뒤 필름은 다 잘리고 마치 토막처럼 부분부분 남아있는 기억인데
그 기억 속에서 아빠는 나를 들쳐안고 한 손으로는 내 손가락을 무언가로 싸서 꽉 쥔 채 정신없이 달리고 계신다.
그 길도 기억이 나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 길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가끔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것들과 섞여서 뒤죽박죽되는 경우가 있으니까 말이다.
손가락이 다쳤으면 아팠던 기억이 남아있을 법도 한데 그런 건 전혀 기억에 없다.
다만 그 때 나를 안고 달리던 아빠의 얼굴이 너무도 또렷해서 내 머리 속에는 마치 사진처럼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그건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아빠는 너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너무나 절박하고 다급한 표정이었다.
나는 아빠의 그런 얼굴이 오히려 더 무서웠던 거 같다.
어린 마음에도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고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곤 기억이 잘린다.
다시 이어지는 기억에서는 내가 병원에 앉아있고 진료실같은 곳에는 의사와 아빠가 있는데
의사가 막 나를 달래는 것 같은 느낌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그리고 여전히 아빠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한테 울지 말라고 괜찮다고 연신 달래주고 계신다.
난 아빠 말을 잘 듣기 위해서 울지 않았던 거 같다.
아빠 얼굴이 너무 무서울 만큼 긴장되어 있어서 울면 안 될 것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몇 바늘 꿰매고 의사선생님이 착하다고 칭찬을 해주셨던 것에서 나의 기억은 끝난다.
나는 요즘도 어쩌다 한번씩 그 때의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단편적이라도 어렸을 때의 강렬한 순간의 기억은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는 법인가 보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난 오늘 문득 내가 손가락을 다쳤던 그 날의 아빠 얼굴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제 와 당시 상황을 짐작해 보고 있다.
나를 들쳐안고 가까운 병원으로 달려가신 아빠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달리면서 한 손으로는 나를 안고 한 손으로는 내 손가락을 꽉 잡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의 손가락이 행여라도 잘못 될까봐 힘든 것도 모르셨을 것이다.
미처 따라오지 못한 엄마는 또 얼마나 마음을 졸이셨을까.
온전하게 내 몸을 보살피며 키워주신 부모님께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한 명을 키우기도 힘든데 셋을 키우시면서 부모님은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그날 하얗게 질려있던 아빠의 표정과 같은 마음으로 늘 우리를 키우셨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다 자란 우리에게도 여전한 마음을 품고 계실 것이다.
아무리, 아무리 감사를 드려도 모자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