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아무 것도 맡기지 말라

code999(53)
Published in
#kr
Words
266
Reading
2 min
Listen
Play
8y

얼마전 은행에서 문자메세지가 왔다.
카드를 너무 사용하지 않아서 지정기한까지 현금을 인출하지 않으면 사용한도액이 내려간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현금인출용으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카드라 한도액이 내려간다 해도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 내려간다는 건 왠지 꺼림칙해서 억지로라도 인출을 한번 해야겠다 마음 먹었다.

그래서 볼 일 보러 나가면서 일부러 차를 돌려 은행을 갔다.
미뤄두었던 일을 한다 생각하니 기분도 좋았다.
그런데 현금인출기 앞에서 돈을 찾으려는데 카드가 없었다.
지갑 안을 보고 또 봐도 카드가 없는 것이다.

카드를 두고 온 것이었다.

항상 지갑에 있던 카드였는데 하필이면 며칠 전 이 카드로 뭔가를 샀었나 보다.
사실 잘 기억이 안 난다.

집에 와서 보니 다른 옷 주머니에서 카드가 나왔다.
카드를 쓰면 바로 지갑에 다시 넣어야 하는데 귀찮아서 그냥 주머니에 넣었었나 보다.

결국 나중에 다시 걸어가서 카드로 인출을 했지만 한번에 할 일을 두번에 하게 된 것이 좀 짜증스러웠다.

난 뭔가를 꼼꼼이 챙기는 것을 잘 못하는 편이다.

예전에는 정말 기가 막힌 바보짓을 한번 한 적이 있다.

누가 중요한 서류를 두고 갔다고 가져다 달라고 하는데 몸만 간 거다.
버스를 타고 나름 힘겹게 갔는데 서류를 달라고 하는 순간에야 앗! 빈 손으로 왔다는 걸 알았다.
도대체 그때까지 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길래 빈손으로 거기까지 갔을까.
허무했다.

서로 마주 보면서 얼마나 황당했던지
나 왜 왔지? 너 왜 왔니? 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의 멍청한 짓 때문에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여행을 가서도 아침에 선글라스를 쓰고 나가면 언젠가 어디선가 선글라스는 온데간데 없어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외국에 두고온 선글라스가 몇 개인지 모르겠다.

이쯤 되니 뭔가를 들고 다닌다는 게 살짝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행히 요즘에는 별로 잃어버리는 것이 없다.

웬만해서는 들고 다니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난 빈 손으로 다니는 것이 가장 편하고 좋다.
우리 가족은 나를 무소유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