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노트북이 완전히 먹통이 되는 바람에
센터에 가서 하드를 통째로 교체한 일이 있습니다.
하드 교체 비용이 만만치 않아
마음이 무척 쓰라렸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하드를 교체하고 난 컴퓨터를 보면서
마치 새로 산 것처럼 흐뭇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설치하고
고장나기 이전과 똑같은 상태로 만들기까지
번거로운 작업들을 해야 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안 되는 게 있었습니다.
블루투스 연결.
고친 노트북 말고 일할 때 사용하는 데스크탑 중에
네트워크로 연결이 안 된 그야말로 독불장군 컴퓨터가 1개 있습니다.
이 독불장군도 일할 때에는 꼭 사용을 하게 되는데
독불장군에게는 블루투스로 파일을 보내곤 했죠.
블루투스 문제를 어서 해결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곤...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렸죠.
한참 바쁘게 일하다 파일을 보내려던 참에야
블루투스가 안 되는 걸 깨닫고
당장 급하니까 옆의 컴퓨터에 파일을 보내고
또다시 옆의 컴퓨터에서 독불장군에게 블루투스로 파일을 보냈습니다.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파일을 보내는 게 몇번 안 되고
보낼 때마다 시간도 기껏해야 1-2초 더 걸릴 뿐이니까요.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일주일에 2일은 이렇게 다른 컴퓨터와의 삼각관계를 계속 이어오고 있습니다.
블루투스가 안 되기 시작했던 그 때가 언제인지
이제는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삼각관계의 일을 할 때마다
옆의 컴퓨터 주인님에게
'미안! 다음에 꼭 블루투스 해결할께'라는 말만 할 뿐이죠.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새로운 말을 꼭 덧붙이게 됐습니다.
'다음에 해결하라고 꼭 얘기 좀 해 줘. 내가 자꾸 잊어버리잖아.'
그것도 살짝 원망조로 말입니다.
그러면 오히려 '아~미안! 내가 꼭 얘기해줄께'라는 대답을 듣게 되죠.
서서히 누구의 잘못인지 경계도 모호해지게 됐습니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키보드의 영문 배열이 사실은 영어권 사용자들이 사용하기에는
가장 불편한 배열이라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 쿼티 키보드 배열이 나올 때
판매를 막으려는 세력의 방해로 가장 불편한 배열로 만들었는데
이게 그 상태로 점점 널리 사용되다 보니
이제는 그 불편한 배열에 익숙해져 키보드 배열을 바꿀 수가 없다는 이야기였죠.
불편함과 익숙함.
언뜻 생각하기에는 굉장한 괴리감이 있을 것 같지만
불편한 것도 익숙해지면 불편한 것이 없어진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오늘도 저의 뻔뻔함과 함께 컴퓨터의 삼각관계는 여전히 문제 없이 돌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