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어린이날은 온전히 어린이만을 위한 날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11살 정도였을 때 무슨 어린이날 기념행사에 나갔던 기억이 난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무슨 행사에 간다고 해서 담임섬생님을 따라갔는데 종일 뙤약볕에 서있어야 했고 그래서 그 날 하루는 굉장히 지치고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다.
몸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어려서 그랬는지 나름대로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역시 어린 애들은 어른들이 이용하기에 쉬운 존재이다.
아마 요즘 그런 일이 생긴다면 분명히 아동학대라고 난리가 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나는 막내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 어른들한테 곧잘 애어른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의 이야기를 하실 때면 늘 나를 '덤으로 키웠다'고 하신다.
아마도 특별히 칭얼대는 일도 없고 뭐든지 부모님이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하는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난 내가 왜 애어른이라는 말을 듣는지 솔직히 이해가 안 갔지만 그냥 막연히 칭찬인 것 같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그저 난 특별히 부모님한테 뭘 해달라고 졸라본 기억이 없다.
딱히 갖고 싶었던 것도 없었던 거 같다.
부모님 형편에 무리할 거 같은 일이라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건 맞다.
그런 점은 지금 생각해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나마 속을 덜 썩여드렸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일이다.
그리고는 어른이 됐다.
난 결혼을 안 해 아이가 없어서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도리가 없다.
그리고 어린이들의 마음도 헤아려볼 이유가 없다.
그래서인지 어린이날 자체를 객관적인 제3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것 같다.
제3자의 관점에서 어린이날은 우리나라 모든 부모님의 등골이 빠지는 날로 보인다.
좋은 선물을 받고 싶어하는 아이와 아이를 실망시킬까 두려운 부모와 어떻게든 대목에 한몫 챙기려 하는 판매자와의 물고 물리는 삼각관계가 교묘히 맞아떨어지는 날 말이다.
물론 이 날 하루를 행복하고 뜻깊게 보내는 가정들이 더 많을 것이다.
적당한 선물을 사주고 바쁜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이 날 하루만이라도 재미있게 놀아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날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늘 지나친 것이 문제다.
해마다 이맘 때만 되면 터무니없이 비싼 장난감 가격과 부모의 자식사랑하는 마음을 교묘히 이용하는 상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없는 거 같다.
달라지기는 커녕 오히려 장난감 상술은 끝없이 발전하는 중일 것이다.
그만큼 수요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간혹 뉴스에서 보면 친구들한테 아이 기가 죽을까봐 고가의 선물을 사준다는 부모의 인터뷰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은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런 논리라면 남들보다 더 좋은 장난감을 사준다는 것 자체가 반대로 다른 아이들 기를 죽이면서 우리 아이의 기쁨을 충족시켜 준다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은 같은 아이가 아닌가.
아이들은 장난감같은 것으로 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
최소한 남보다 물질적인 것을 더 가졌다고 해서 자랑하는 아이로는 키우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른이 되면 어차피 사는 것 자체가 경쟁이 될 터인데 어려서부터 비교하면서 살면 너무 피곤하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때로는 결핍도 좋은 교육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