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사랑보다 믿음이 중요했어"

clarekim(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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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밤보다 아침이 추운 법이다. 내겐 그랬다. 사랑의 끝보다 시작이 더 아팠다. 다시 누군가 사랑한다는 게, 눈을 맞추던 흔적에 숨을 불어넣는게 두려웠다. 이미 닫아놓은 일. 다시 만난다는 것, 사랑한다는 건 익히 아는 상처의 반복 같았다.

널 처음 만날 때가 그 절정이었다. 모든 시작에서 불안을 읽었다. 모든 사랑이 허무를 그 모체로 삼던, 그래서 아무나 만나도 사랑 빼곤 다 할 것만 같던 쓸쓸한 땅. 그 위에 발을 딛고 서서 아무도 사랑할 수 없노라고 말했다. 다짐이 아닌 불가능에 대한 선언이었다. 그즈음에 나는 너를 만났다.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란 말이 있다. 그래. 사랑은 중요했다. 사랑이 있어야 믿음도, 소망도 시작될 수 있으니까. 허나 시간이 지나도 사랑만이 제일일까. 사랑해도 헤어지는 수순을 밟았던 내게 말씀은 들어올리 없었다.

내겐 그 모두가 버거워 보인다. 어쨌든 다시 너를 만나, 모종의 이끌림에 눈속임 당한 척했지만. 그래도, 믿음은 끝끝내 어려우리라 봤다. 짐작, 혹은 확신은 뒷걸음으로 상처를 피하려는 비겁함을 낳았다. 두 사람의 관계에 무엇이 남을지, 그악스럽게 묻고 묻었다.

헌데 그런 와중에 너는 날 일단 기다려주며, 알 수 없는 일말의 믿음을 선물했다. 덩달아 내게도 기다림이 무엇인지 가르쳐줬다.

도리어 네가 내 믿음이 된 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사랑이 시작을 실현하기에 중요하다면 믿음은, 나머지 둘을 존재케 하기에 소중하겠지. 믿음이 있어야 하루에도 수차례 지치는 사랑이, 스러지는 소망이 몸을 일으켜 한번 더 살아본다. 사랑의 시작이 두려운 건 믿음의 도움없이 관계를 당분간이나마 지켜야 하는 까닭이었다.

정 때문에, 의리 때문에 만나지 않냐는 질문을 받으면 글쎄, 틀린 말은 아니라고 답한다. 다만 그것들이 있기에, 믿음이 있기에 사랑을 소망할 수 있다고 느낀다.

오랜 약속, 그걸 함께 지켜온 역사가 있기에 우린 여지껏 함께 지내보고자 했던 것이다. 둘 사이의 결코 좁힐 수 없는 강이 있어도 저기 너머에 네가, 나를 그리며 오늘을 살고 있다는 그 믿음, 그게 불안을 잠재웠다. 믿음은 사랑과 소망의 살 길이 됐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던 내게 신뢰를, 인내를, 포용을 알려준 너. 말이 아닌 맘으로 오래토록 나를 덥혀온 너라는 시간이 이제 평안함을 줬으니까. 난 이제 너라는 존재 덕분에 사랑으로도, 소망으로도 살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혼자서나, 둘이서나 지구에 뿌리내린 듯
하늘을 보며 살 수 있게 해준 너.

20151212 #쮼

시대의 불확실성에 대한 책을 읽다가
엉뚱하게 떠오른 글. 나중에 글을 낸다면
제목은 '근대인의 사랑'쯤으로 지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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