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여나 엄마가 뺏어먹을까
아이는 허겁지겁 호빵을 먹는다.
자기가 우겨넣는 게
가난인 줄도 모른 채.
어미는 죄스럼에 배가 불러
빈 그릇에 눈물을 받는다.
그렇게 봉천역 앞에
아이를 두고 오길 여러 번.
고사리손을 다시 잡고
말없이 집에 오는 날이면
호호 불어먹는 행복에
엄마도 같이 운다. 아이는
구멍 난 지붕 아래서
별이 보여 행복하다.
"엄마. 내 엄마된 거 후회해?"
한 이불 속 아이의 질문에
엄마는 웃으며 괜찮다고 한다.
아니라고 못하고
괜찮다고 말한다.
20140928 #쮼
얼마 전 사소한 일로 엄마와 언쟁했다. 내가 쌀쌀맞게 대꾸하자 엄마는 울었다. 화낼 줄 알았기에 적잖이 당황했다. 이제 자기는 몸도 약하고 갈수록 나에게 의지해야 하는데, 자신의 말실수 하나에 이렇게 차가워진 내가 무섭다고 말했다. 엄마는 그런 상황이, 그렇게 만든 내게 모멸감을 느꼈다 했다.
원래는 엄마가 우릴 버리려 했었다. 아빠 장례식 때 엄마는 물기 없는 얼굴로 그리 말했다. 이미 우울증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온 동네를 쏘다니다가 친정에서 겨우 마음을 되찾은 터였다. 가계부터 간병, 삶의 부조리는 그녀를 극단으로 몰았다. 엄마는 진심으로 나를 버리고 싶었을 것 같다.
엄마에게 버려져도 서운하지 않던 내가 역으로 엄마에게 그런 위협이 될 수 있다니. 다소 충격이었다. 내가 버려질 거라 생각해왔지 엄마를 버린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더는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수능이 끝나자마자 생활비를 벌던 나였다. 기대지 않기 위해 애쓰는 건 늘 내 쪽일 것만 같았다.
어렴풋 느끼곤 있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관계는 역전됐다. 그래서 이제 좋은 친구가 돼간다고 믿었는데. 앞으로의 노후를 걱정하던 엄마에게 나는 조금 아쉬운 친구였던 모양이다. 화해의 끝자락에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차라리 이렇게 솔직해져버리니 편해진 듯했다. 또(!) 가족여행을 와서 엄만 더 들떴다. 오랜만에 동창 아들 결혼식도 구경하고, 습지부터 선암사까지 돌았다. 굳이 밖에서 고기를 구워야 한다며 한옥펜션을 잡으라 해놓고선 내게 '너가 친구들이랑 자주 놀았으니 잘 알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게. 엄마랑은 그런 여행을 안 했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의 내 신조, 부모님은 굳이 날 키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날 낳아서 어쨌든 살려놓고, 이렇게 어엿하게 길러줬다. 뭐 다른 어느 가정에서처럼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순 없었다지만, 정말 애쓰며 버텨온 인생이다.
도리어 나는 이렇게 담담했는데, 이리 담담한 게 엄마를 울린지도 모른다. 나만 혼자 '오래된 친구'라 느꼈지 엄마에겐 아직 그런 관계변화가 낯설 터.
엄마에게 약자로서의, 그런 공포를 안긴 데는 내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여행을 마치고 올라오는 길 새삼 엄마와의 관계를 다 다시 쌓아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어렴풋이 느끼긴 했지만 이젠 진짜로 딸이 아니라
김지윤이라는 좋은 동반자로 거듭나야 한다는 걸. 엄마가 나를 친구로 느낄 수 있게끔, 그래서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쯤이야 친밀함과 신뢰로 말끔히 씻어내도록. 그냥 월급만 떼어주는 게 아니라 '진짜 친한 사이'가 될 시점인걸까.
그러려면 말 잘 듣는 딸이 아니라 대화를 잘 하는 성인이 돼야 할테고.
버스 옆자리에서 지금 엄마는 우쿠렐레 연습을 하고 있다. 한여사는 드디어 자기 시간을 찾았고, 너무 갑자기 자기 시간만 많아져서 당혹스러워 하는 요즘이다. 물론 인생 독고다이 혼자 챙겨가야겠지만, 가끔은 '엄마, 취미 좀 갖고 그래'라는 채근 대신 엄마가 치는 엉터리연주를 듣는 친구가 돼야지 싶다.
버림받는 비참함, 두려움, 그 고통을 조금이나마 안다. 누구도 그러지 않기를 원한다. '엄마에게 잘해야지'를 넘어 '엄마랑 잘 지내야지'라고 다짐하는 건 철저히 내 욕망을 위해서다. 선택을 후회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엄마, 내 친구였던 거 후회해?" 물었을 때 최소한 "괜찮아. 아니, 좋았어"라는 답을 듣고 싶다.
늘 다짐을 다 지키진 못해왔다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나쁘지 않게 뒤숭숭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