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같은 감독도 엿같은 심 샘물도 없는 학교 운동장엘 다시 나와 보았다.
새벽안개에 싸여있는 운동장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쐬주를 나발로
불어대며 줄담배를 피워댔다. 당혹스러움과 공포로 인해 삼락의 세상은
아직까지도 좌우로 공명하고 있었다. 심샘물을 가로로 찢어죽일지 세로
로 찢어죽일지 고민스러웠다. 우웩..
흔들리는 세상을 머리에 이고 있으려니 멀미가 났다. 구토와 현기증이
동시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새벽 2시쯤 됐을거 같은데..오바이트를 하다가
그대로 잠이 든것 같았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백발 할아버지가 내옆
에 앉아 있었다.
"너 자꾸 인생 그따구로 살래?"
"꺼져시발."
"요놈새끼 버르장머리하곤 해래비한테."
"이런 니미."
"겁낼거 없어 이눔아. 담에 더 잘하믄 되잖여."
노털은 기분나쁘게도 마치 내 맘속을 들여다보고 있는듯 말하고 있었다.
한마디만 더 뻥긋하면 아가리를 세로로 찢어버릴 셈이었다.노인네는 못
마당하단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뒷짐을 지고 왔다리갔다리 했다. 신
경이 쓰여서 발을 걸어 넘어트리려고 나는 오른발을 슉 내밀었다.
!!!
발이 없었다. 시발 노인네가 기분 족같게 발모가지도 없이 내앞에서 휘
적휘적 돌아다니고 있는거였다. 뭐야씨벌, 귀신이여 뭐여.
"그래 귀신이다 이놈아.이런 정신나간 놈 왜사니?"
(정신이 나간건 맞는데 왜 사는진 아직 생각해 본적없다,어쩔래 씨브랄
영감탱이야.)
"자랑이냐 모자란 놈."
머리 속에서만 혼자말로 짓거린 말을 노인네가 알아듣고 호통을 쳐대고
있었다.어? 노털은 혀도 없이 말을 하고 있었다. 가만보니 말을 한다라
기 보단 텔레파시처럼 뇌파로 의사전달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십할 내가 드디어 미쳐버린건가? 아시발 자폐증세가 갈수록 악화
되는 느낌이야.이제 어뜩하냐. 아 시발.)
무섭기보단 불편했다.있어야할 혀가 없는게 보기에 몹시도 불편했다.혀
대신 쓰라고 발가락이라도 노털 입에 넣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나 무좀
있다.
(씹..죽을라고.)
노인네를 향해 왼손 주먹을 뻗었다. 귀신 따위는 전혀 두렵지가 않았다.
다만 내가 귀신을 볼수 있을 만큼 현실세계에서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
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에익 휘릭.
노털의 아구창을 향해 맹렬히 날아가던 나의 주먹은 허공을 가르며 반
바퀴를 돌아 내 오른쪽 어깨를 허망하게 때렸다.억 시발. 어느새 노친
네는 공중부양을 해서 포물선을 그리며 내게서 멀어져가고 있었다.
"너 야구 안 하면 내손에 디질줄 알아."
"빨어 시발."
"임새꺄 야구 때려치우면 또 나타날테니 그런줄 알어."
노인네는 통하지도 않는 엄포를 놓으면서 안개속으로 사라져 갔다.
수업은 듣는둥 마는둥 오후4시까지 교실에서 자빠져자다가 일어나 담배
를 꼬나물고 운동장으로 후비적후비적 내려가 보았다. 벌써 야구부원들
이 연습을 시작하고 있었다. 팀내에서 유격수를 맡고 있는 놈이 불규칙
내야땅볼을 잡아내지 못하고 허둥대다가 공을 뒤로 흘려 알까기를 하고
말았다. 그 공이 데구르르 굴러 하필 내 앞에서 딱 서버렸다. 유격수가
숨을 할딱거리며 내앞에 서 있었다.
"새꺄 공새꺄. 몸 중심에서 새꺄. 처리해야지 새꺄."
말이 좀 길어지니까 내가 좀 버벅거리긴 했어도 의미는 정확히 전달이
되었을거다. 타자가 공을 때리면 거의 대부분의 공이 유격수한테로 간
다.따라서 팀내에서 유격수 수비의 중요도는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였
다.다른 수비수들도 중요하지만 특히 유격수는 수비의 핵심에 서 있는
것이다.이러한 유격수가 타자가 친 땅볼을 몸 중심에서 처리한다면 자
칫 불규칙바운드나 예상치 못한 에러가 나오더라도 뒤로 빠트릴 일은
없다. 볼을 한번 놓치더라도 몸에 맞고 바로 앞에 떨어지기 때문에 침
착하게 다시 잡아 1루로 송구하면 아웃을 잡아낼 수 있는것이다. 이건
수비의 기본중의 기본인 것이다.
[제아무리 공격이 활발할지라도 수비가 뒷받침되지 못한 야구는 반드
시 지게 되어 있다.]
투수의 투구 못지않게 타자의 타격기술이 발달한 현대야구에서는 그만
큼 내,외야수들의 수비가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야구를 때려치우니까 왜 이렇게 야구에 대해 할말이 많아지는건지. 그
것도 꼭 필요한 말만 골라서 해주니말야. 삼락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너무 멋진 말을 한것 같아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야구는 하고 싶지가 않았다. 자신보다 더 강력한 존재인 심 샘물이 야
구의 정글숲 어딘가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감춘채 공격할 기회만을 노
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섬뜩했다.
삼락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뜨거운 태양이 아지랭이를
피워 올리며 온 세상을 축 늘어지게 이완시키고 있었다. 텁텁한 갈증
이 또 목구멍을 타고 스먹스먹 올라왔다.
"존나게리 덥네. 워셔액 하나하고 하드사와."
"네 보쓰."
유격수는 공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그대로 매점으로 달려가 게톨레이와
아이스크림 한박스를 사왔다.돈도 안줬는데 알아서 푸짐하게 물량을 땡
겨온 것이다. 전에 나한테서 똑같은 심부름을 한놈이 있었는데 그새낀
하드사오라니까 어이없게도 하드를 달랑 하나만 사오는 바람에 나한테
하드코아스럽게 뒤지게 맞은적이 있었다.그때의 일이 야구부새끼들한테
교훈이 되어 지금처럼 훈훈한 일이 생긴것이다.
역시 폭력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언어임이 다시한번 증명되는 순간이
었다. 제일 보드랍고 촉촉한 아이스크림을 꺼내 입에 넣고 빨았다.츄팝
츄팝. 어~ 션타.새끼 센스있게 젤 비싼 걸로 사왔네.
설탕과 유지를 잔뜩 넣어서 찐득거렸지만 시원하기는 했다.입술을 동그
랗게 말고 길게 넣어보았다.아이스크림 옆구리가 깎이며 뭉글뭉글한 조
각들이 입안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꿀꺽 삼켰다. 커 션하다.죽이네.
"여..우리 삼락이 안 뒈지고 또왔네. 명줄도 존나게 기네."
씨발 놈의 감독새끼가 어느새 나타나 면상을 들이밀고 있었다. 나는 아
이스크림을 집어 맞아 디지라고 감독에게 힘껏 던졌다.
"너나 뒈져라 시발. 휭.."
"척..워워 진정해 삼락."
감독은 아이스크림을 받아 넉살좋게 핥아 먹었다.그는 혀끝으로 아이스
크림 옆구리를 살살 핥다가 입속에 깊이 집어 넣고 히응히응, 신음소리
를 내며 본격적으로 빨았다. 혓바닥 다 까지도록 한참을 그렇게 빨더니
입속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아이스크림이 녹아
줄줄 흘러내리는걸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며 받아 쳐먹었다. 무슨 게이
뽀르노를 보고 있는것처럼 구역질이 났다.
"에이 시팔 밥맛 떨어져."
아이스크림 맛이 뚝 떨어져서 아이스크림이 든 박스를 운동장쪽으로 퍽
차버렸다. 박스에 들어있던 아이스크림이 마치 폭죽처럼 사방으로 튀었
다. 뒤로 돌아 무작정 걸었다.오지랖 넓은 감독은 내 명줄 뿐만 아니라
변화구에도 관심을 나타냈다.
"변화구 완성시켜줄께."
"?"
"심 샘물 이기게 해준다니까."
"!!"
(씨발 그럼 내가 변화구를 제대로 못 던져서 심 샘물한테 맞았단 말인
가! 맞아 내가 생각해도 좀 많이 어설펐어. 평소때보다도 훨씬 못 미치
는 제구였어. 포크볼이 아니라 완전 똥볼이었다니까.내가 대체 왜 그랬
을까.뭐에 홀린 듯 그땐 평정심을 잃었었지. 대체 이유가 뭐였지.)
머리가 무거웠다. 핵연료가 다 타버리고 남은 찌거기인 납덩어리가 전
뇌에 가득찬 것처럼 앞머리가 무거웠다.
"재,재수없어 꺼져."
"지금 너 엔트리에 넣고 오는길이야.시합이 낼모레니까 알아서 해.히히."
감독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아이스크림을 양손에 하나씩 집어들고 행복
한 얼굴로 번갈아 가며 핥아 먹었다.
(시합? 엔트리? 누구허락받고.)
이건 분명 감독의 음모였다. 감독새끼가 건내 준 야구공을 맨처음 잡은
순간부터 내몸이 마치 감독이 파놓은 모래속으로 점점 빨려들어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개미지옥같은 축축하고 어두운 모래속으로 깊숙히 빨려
들어가고 나면 개미귀신같은 심 샘물이 납으로 가득찬 내 머리통을 쇠
방망이로 탕, 후려갈길 것만 같았다.
"십할 누구맘대로."
"내맘대로 히히.한 시간후에 보자."
한시간 후면 나는 우리가게에서 제일 예쁘고 몸매가 좋은 미쓰 박과 빠
구리를 치고 있을 것이다.썅년의 생식기가 얼마나 쫀득거리는지 찰떡을
먹는거 같았다. 소림사에서 생식기를 순간적으로 바늘구멍 크기만큼 줄
이는 무술을 배웠는지는 몰라도 아주 사람 잡을 썅년이었다. 이제 이런
개샹놈의 야구 따위는 진저리가 났다. 나는 가운데 손가락을 꺼내 감독
에게 정중하게 거절의 손싸인을 보냈다.
(엿이나 먹고 떨어져 새꺄.)
잠시 후 기적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놀랍게도 나는 어색한 야구복으로
갈아입고 야구모자와 신발을 신은채 운동장에 나와 바둥거리고 있었다.
엔트리에 들어갔단 소리를 듣자마자 이상하게 흥분되고 조바심이 났다.
1분 1초를 아껴가며 맹연습에 돌입했다.엿이나 먹고 떨어진 줄 알았던
감독은 싱글벙글 삼락을 열심히 지도하고 있었다.
"내말 잘들어, 앞으로 넌 이기는 경기에만 투입되는 승리조다.선발 투
수가 잘 던져서 팀이 이기고 있으면 6, 7회 정도에 불펜투수(홀드, 셋
업맨, 마무리)가 차례대로 나오는데 넌 그 중 마무리를 맡을거야.그러
니까 직구하고 슬라이더 하나만 완벽하게 익히자 알았지?"
선발투수인줄 알았는데 마무리라니.내인생도 마무리가 안 되는 마당에
마무리는 개뿔. 그리고 여태 포크볼 배우느랴 좆뺑이 친 건 엿바꿔 먹
으라는 소리냐. 삼락은 발끈했다.
"이씨발 포크볼은.."
"마무리는 두개의 구종이면 충분해."
"안 해 씨팔."
"정 그렇다면 직구, 슬라이더, 포크볼 세개만 집중 연습해."
"썅, 컷터도 자신있어."
"야새꺄 그럼 니 맘대로해.나도 몰라."
의견이 어긋나자 감독은 처음으로 나에게 화를 냈다. 죽을라고 그냥.
팀의 승리를 끝까지 지켜내는 마무리 투수는 빠른직구와 슬라이더만
으로 타자를 승부하는게 상식이다.마무리투수는 홀드에게서나 셋업맨
에게서 볼 수 없었던 빠른 직구를 가지고 힘으로 상대 타자를 윽박질
러 승리를 이끌어내는 방식인데 슬라이더는 주로 유인구로 사용하고
삼진을 잡을때 직구를 결정구로 사용한다.
"알았어 직구, 슬라이더, 포크볼."
삼락이 마지못해서 낮은목소리로 동의하자 어떻게 들었는지 돌아서서
가던 감독이 달려와 가벼움의 극치에 가까운 미소를 날렸다.
"헤헤 진작 그럴것이지. 결국 야구할 놈은 하게 된다니까. 히히히."
(귀신 신나락 까먹는 소리허구 앉아 있네.시발 저렇게 가벼운 인간을
믿어도 되는거야 뭐야. 아이고 시팔 내팔자야.)
연습을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코가 간지러웠다. 시합이 코앞이라 그런
것 같았다. 직구, 슬라이더, 포크볼만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직구도
가장 빠른 포심만 가지고 열심히 던졌다. 슬라이더도 잘 먹히고.. 문
제는 포크볼이었다.
변화각이 심한 포크볼 같은 경우에는 투수의 컨디션이 약간 좋지 않
거나 또는 컨디션이 너무 좋아도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 제구가
제대로 되지 않을 만큼 까다로운 볼이다.저번에 심 샘물한테 개아작
난것도 삼락이 너무 긴장한 탓에 변화구의 궤적이 날카롭지 못한 탓
이었다.아무생각없이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거침없이 막살아가는
삼락이었지만 야구에 있어서 만큼은 제대로 배워서 성장해 나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자자 긴장풀고 어깨에 힘을 빼고 던지란 말야. 이렇게 휘릭."
"말이 쉽지 시발."
감독이 시범을 보였지만 어깨에 힘을 빼고 던지는거 같지는 않았다.
저도 아직 완성하지 못한 변화구의 절대경지를 나보고 구현하라는
것 같아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 어디 한번 던져봐봐."
(좋아 어깨에 힘을 빼고 몸의 밸런스를 안정적으로 유지한채 온 신
경을 손끝에 모아 마치 씨앗을 뿌리듯이 던지자.부지런한 농부처럼
숭고한 마음으로 감각의 씨앗을 온세상 천지에 뿌려보자.)
"에잌,휘리리릭."
볼이 손끝에서 떨어지며 간지럽혔다. 히익..간지러워..문득 새벽에
보았던 백발의 할배가 생각이 났다. 그 인간의 정체도 갑자기 생각
이 났다.
(맞아, 그양반 우리 친할아버지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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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리: 시합 참가자 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