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영식 개양아치 새끼..)
양판사는 영식에게 생돈 5억씩이나 뜯겨가며 진주 사진을 확보했지만 왠지
개운치가 않았다. 어떻게 모은 돈인데.양심까지 팔아가며 박박 긁어모은 피
같은 돈. 그돈 다시 벌려면 또 얼마나 많은 양심을 팔아야 할지..
그래도 다행인게 양심이란 놈은 아무리 팔아먹어도 절대 앵꼬가 나지 않는
다. 그래서 이 세상엔 이렇게도 비 양심자들이 많은 것이다. 사실 양판사는
s대학 시절만 해도 전도 유망한 법대생이었다. 번듯한 가정에서 태어나 가
정교육을 제대로 받고 부유한 집안의 정책적인 후원을 받아 고시를 시작했
다. 우수한 성적으로 단 한번만에 고시합격후 판사자리에 앉으면서 자리가
썩기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청탁과 뇌물이 들어와 재판거래를 했다. 자리가
썩으니 사람도 썩고 정신도 썩어버렸다.이젠 썩어서 발효가 될 지경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영식이 5억으로 순순히 물러날 놈 같아보이지 않았다. 가만
히 놔두었다간 후에 큰 사고를 칠게 분명했다. 그러나 김 영식 처리문제는
나중에 생각해야했다. 급하게 처리 해야 할 일이 생각나는 바람에 전화번
호가 적힌 명함을 꺼내들었다.
'삼월회계법인 곽진범 tel: 010-1234-0000'
여기에 전화를 거는 순간 엄청난 일이 시작될것이다.수십만명이 재산상으로
큰 손해를 볼테고 그중 몇몇은 자살할 테고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알게 뭐야 씨발. 다들 그렇게 해쳐먹고 사는걸뭐. 양아치한테 5억이나 뜯긴
마당에 그만 고민하자고.)
큰일을 앞두고 첫단추를 끼는 마당에 자꾸 머뭇거리는 자신이 답답했다. 그
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몸을 담고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은 양심이라곤
찾아 볼수도 없는 양심의 사막인데도 불구하고 양심이란 놈이 뒷덜미를 자
꾸 잡아 당기고 있었다.당장 자신의 윗대가리들만 보아도 아주 가관이었다.
돈 많고 힘있는 사람들 편에 서서 판결을 내리는가하면 뇌물을 받고 재판을
거래하는 재판 거래도 성행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판사자리도 시험을
통해서가 아닌 돈으로 사고 파는 시대가 곧 올 것 같았다. 공직자인지 공산
당인지 알수 없을 정도로 마구 해쳐먹고 있었다. 사법부는 이미 온갖 비리
와 비도덕적 파행으로 점철되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이틀일이냐.
(어쩔수 없어 이사회가 다 그런걸뭐. 못해먹으면 병신소리 듣는 걸.)
양심의 가책 마져도 잊게 해주는 한국 사회가 차라리 고마웠다.
손끝이 가볍게 떨렸다. 삼월회계법인 수석회계사에게 전화를 걸었다.액정에
뜬 양 판사의 번호를 보고 곽회계사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윗선에선 무
리를 해서라도 양 판사의 요구를 들어주라는 명령이 있었다. 이젠 회계를 넘
어 정치가 된 셈이다.
(차라리그럴꺼면 양성대 지가 다하지. 회계장부도 지가 다 작성하고 법인도
장 꾹,찍어서 탕탕, 판결내리면 되잖아.왜 나한테 이런 추잡한 일을 시키는거
냐고 대체.)
양판사와 회계사인 자신은 쥐와 쥐덫의 관계같았다. 양 판사가 밤에 몰래 남
의 소중한 자산을 훔쳐오는 쥐라면 자신은 그 훔쳐 온 먹이를 쥐덫에 살짝올
려 놓는다.그러면 다른 쥐들은 감히 이 먹이를 손대지 못한다.그러다가 손이
몇개나 더 많은 슈퍼쥐새끼가 나타나 그 먹이를 가져가 버린다.
정말 쥐꼬리만한 월급받아가며 이런 험한일을 하려니 억울하단 생각이 들었
다. 지금 이 전화를 받으면 그때 부터 먹이를 쥐덫에 올리는 작업을 시작해
야만했다.
(받을까? 말까? 내일 받을까..)
고민고민하다가 어거지로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셔요."
"나야!"
"누구시죠?"
"나야 양 성대."
"아, 양 판사님.오랜만이십니다.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곽진범 회계사는 억지로 반가운 척을 했다. 구역질이 나올것 같았지만 참아
야했다.이제 겨우 시작인데 엄살은.
"너, 장사 그만두고 싶어?"
"네? 무슨말씀이신지."
애써 모르는척하며 어물쩡거리는 회계사를 향해 양판사는 자신의 용건을 확
실히 인식시켜 주었다.
"동화건설 껀 말야!"
"안 그래도 전화 드리려고 했는데."
"그럼 바로 답을 줬어야지!"
"아, 죄송합니다."
양 판사는 출발나팔도 불지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계속기업가치1조4750억,청산가치1조6693억으로 끼워 맞춰.지금 당장!"
회계장부를 불법적으로 조작해 멀쩡한 기업을 적자기업으로 만들어 파선시
키려는 수작이었다.작년에 동화건설의 분기 실적보고를 바로 곽자신이 했기
때문에 재무정보를 꽤고 있었다. 양판사는 말도 안되는 회계정보를 곽에게
보내왔던 것이다.
(양심도 없는 새끼지 대체 어디서 무슨 마약 같은 뇌물을 받아 쳐먹은거야.
그게 지금 파산부 판사라는 새끼 입에서 나올소리냐? 니말대로 했다간 여러
사람 죽어나가. 기업은 둘째치고 거기에 속한 임직원과 종업원들 그리고 기
업에 투자한 선의의 투자자들은 또 어쩌라고.죽으라고? 니가 그러고도 판사
냐 이개새꺄.)
너무 한심한 소릴해서 곽은 속시원하게 욕을 퍼부었다.속으로만.
"동화건설은 청산 가치보다 계속가치가 훨씬 높은 기업입니다. 누군가의 실
수인건지 아니면 고의인지는 몰라도 아직 장부에 계상되어 있지않은 해외자
산또한 부지기수고요. 또.."
동화건설은 우량했다. 법정관리 중이었지만 해외자산이 어마어마했다. 중동
과 아프리카에서는 네임벨류가 높았다.너도 나도 공사해달라며 줄서서 서류
를 들이 대는 판이었다.그러나 양 판사 생각은 전혀 달랐다.그가 회계사에게
서 듣고 싶은 말은 기업가치 따위가 아니었다. 무슨말씀인지 알아모시겠다.
일은 시키는대로 잘 마무리 할테니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 뭐이런 아부성 멘
트였다.
"해외자산 같은소리하고 자빠졌네.위에서 무슨 얘기 안 하디?"
"네?"
(이사람이 지금 때가 어느땐데 아무한테나 반말찍찍갈겨. 게다가 협박까지.
이런 미친 새끼가..)
곽회계사는 아직도 이런 뻔뻔하고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양성대를 보
고 어이가 없어 말을 잃고 말았다.대한민국 좋아진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예
전하고 달라진게 전혀 없어 보였다.아직 멀었어.
"너말야 조사 보고서 잘못 작성하면 니네 법인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수가 있
어! 그러면 너희 사장이 퍽도 좋아라 하겠다."
곽회계사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회계장부만 딱펼치면 똥인지 된장인지 초등
학생도 알 수 있는 뻔한 사실. 그걸 개꼬랑지 감추듯이 숨기자는게 어느나라
법이란 말인가.그것도 대한민국 현직 판사라는 작자가 말이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지말 안들으면 회사를 통째로 날리겠다는 협박까지 당하니 열이 받
아서 민주투사도 아닌데 민주항전을 벌였다.
(그래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한번 해보자. 가뜩이나 짜증나는 일 투성
이인데 너새끼 오늘 잘 걸렸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입니다.그런 협박은 안 통합니다."
"법?너 지금 법이라고 했냐? 내가 판사인거 몰라?"
"창피하지도 않으십니까!"
양판사는 욱했다. 어디서 감히 덤벼덤비길. 이미 윗선에서 얘기 다 끝났고 시
키는 일만 하면 되는데 주제 넘게 기어오르다니.
"회계사 따위가 판사한테 엉겨? 너 한번 죽어 볼래?"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겁니다."
회계사는 제법 의기양양했다. 양판사는 더욱 화가 났다. 다들 판사라면 설설
기는데 이놈은 대가리 빳빳이 쳐들고 덤볐다. 그래도 용기있어. 당장 사장한
테 전화해서 짤라버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오랜만에 정신 제대로 박힌 놈을
만나니 마음이 찡했다.아주 옛날,처음 법관이 되었을 때의 퍠기 넘치고 정정
당당했던 자신을 바라보는것 같았다. 어쩌면 극히 소수의 이런 양심 있는 놈
들 때문에 그나마 대한민국이 굴러가나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성질같아서
는 당장 달려가 죽사발을 만들어 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래 대한민국이 계속해서 굴러가게 하려면 이런 놈들이 있어야 해. 그래야
내가 계속해서 대한민국의 등골을 빼먹지 크크.기회를 한번 더 주자.)
"이봐이봐. 너희집 딸린 식구 몇이냐?"
"..."
양판사가 본격적으로 찌르기 시작했다.죽으라고 쑤시는건 아니고 살살 달래
보려고 쑤시는 거였다.
"니 알량한 양심 때문에 식구들 손가락 빨게 할 꺼야?"
분유가 모질라 맨 손가락을 쭉쭉빨고 있는 막내아들. 그애가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아 회계사는 더욱 거세게 저항했다.
"손가락이 아니라 발가락을 빠는 한이 있더라도 안 됩니다.사람이 양심이 있
어야지."
"양심? 아닌말로 니식구 먼저 살리는게 양심아냐?"
"바빠서 이만 전화 끊어야겠습니다."
양판사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파산부 부장판사.이만하면 폭발해버
려도 될만큼의 지위였다.
"야이 새꺄! 이새끼가 오냐오냐 하니까 머리까지 기어오르네.너 이새끼 당장
이리와.아주 찢어죽여버릴테니까."
곽회계사는 한발도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지가 판사라고 보이는게 없나본데 사람이 그러면 안되지. 세상엔 엄연히 법
과 질서가 존재하거늘. 자신의 지위와 빽을 믿고 이러나 본데 그러다가 혼줄
나지. 세상이 변했는데.)진짜냐?
빽도 없고 지위도 없었지만 곽은 세상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세상을 빽삼
아 판사에게 맞섰다.그러고나면 세상은 좀 더 살기 좋게 변해 있을것만 같았
다. 착각이야 인마.
"욕하지 마세요."
"이새꺄 누가 욕을했다고 그래?너 오늘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
"세상에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전 죽고싶지는 않고 이엿
같은 통화를 빨리 끊고 싶네요."약 먹었냐.
양판사는 기가 막했다. 판사라는 명함달고 처음 접하는 개또라이였다. 판사
한테 함부로 덤볐다간 어떻게 되는지 이번에 확실히 보여주고 싶었다.
"아아 그러셔?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
성윤 일행의 배는 포항을 떠나 울릉항이 있는 저동여객터미널근처에 정박해
있었다. 성윤은 해양수산부 직원으로 있는 대학동창, 철우를 배에서 우연히
만났다. 동화건설이 돈스코이 발견 및 인양을 위해 해양수산부와 손잡고 성
윤이 총책을 맡아 일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마침 철우가 생물조사팀을 지휘
하는 팀장이었다. 둘은 선착장에 내려와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성윤이 너, 예전에 페르시아 보물에 관심 많았었잖아?"
"어린애인가 아직도 코흘리고 앉아있게."
"왜? 꽤나 신빙성 있던데."
철우는 무슨 연극배우처럼 제스쳐를 취해가며 성윤의 얘길 꺼냈다.
"그옛날 러시아제국시절,니콜라이 1세가 페르시아 정벌당시 획득한 엄청난
양의 보물..그 보물을 둘러싼 최 성윤과 러시아 정부와의 한판 승부! 손에 땀
을 쥐는 박진감 넘치는 액션..은 없지만 시베리아의 어느벌판에 감춰진 페르
시아 보물을 둘러싼 쫓고쫓기는 숨막히는 추격전.오..과연 보물은 누가 차지
할 것인가..크 멋진데?"
한껏 업되어 옛날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철우와는 달리 성윤은 허파가 빠져
나올 정도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오바는.
"죄다 구라였어.어디서 헛소문이 흘러온 거더라고."
"에이 싱겁게 끝났네."
"아주 예전에 너 학교에 있단 말은 들었어. 근데 이렇게 만나게 될줄은 몰랐
다야. 더군다나 같은 탐사선에 타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네."
"이래봬도 나, 해수부 산하 해양연구원 팀장이라고. 큼.."
철우는 자신의 소속기관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하는듯 했다. 왜냐? 공기업
이고 월급도 쎘으니까. 철통 밥그릇이니까.느낌 아니까.부럽네 씹새.
"오 대단하네. 어쨌꺼나 다시 만나게 되서 무지반갑다야.여기 언제부터 출근
한 거야?"
"코박고 있었지 학교 실험실에만.그런데 저번달에 교수님 추천으로 왔어. 현
장에서 직접 뛸 연구인원이 필요하대서."
성윤이 마치 오래전 자신으로 뒤돌아간듯 아련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학교졸업한지도 꽤 되었네.퍽치기 선생님은 잘 계시지?"
"그럼, 요즘도 수업중에 조는것들 뒤통수 퍽,치고 다니신다."
철우의 대답에 성윤의 동공이 순간 꿈틀거렸다. 성윤은 철우가 눈치채지 못
하게 애써 태연한척 말을 이었다.
"퍽치기 교수님도 정년 얼마 안 남았지?"
"퍽치기가 정년이 어딨냐? 손목아지가 땡강 짤라져야 은퇴하는거지. 안 그
래?"
지가 생각해도 너무 썰렁한 농담이었는지 철우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한번 찾아뵈야 하는데.이젠 얼굴도 가물가물허다."
성윤이 담배를 물고 한숨을 쉬듯 한모금 길게 내뿜었다. 철우도 지는 태양을
보며 탄식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젊은놈들이 한숨은.
"해 놓은것 하나 없이 세월 참 빠르지?"
철우는 이나이 먹도록 모아둔 돈도 없고 그렇다고 여우같은 마누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도저도 아닌 밥도 똥도 아닌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웠다.특
히 자기처럼 인물이 괜찮은 남자를 여자들이 못 알아본다는게 제일 속상했
다.솔직히 여자랑 자본지가 10년은 넘은 것 같았다. 거미줄 치게 생겼다. 아
랫도리에 무성하게 돋아 있는 털이 음모인지 거미줄인지 착각이 들 정도였
다. 그 밑에 달린 방울 두개는 아무래도 거미알 일것만 같았다. 니가 스파이
더맨이냐.
"그러게. 사람은 느리기만한데 세월이란 놈은 빠르기만하네.아 오줌마려"
성윤은 바다 쪽으로 지퍼를 내리고 섰다. 철우도 덩달아 옆에 서서 우아하게
오줌을 누었다. 어 션타.. 성윤이 갑자기 호들갑을 떨며 지퍼를 올렸다.
"아참,내 정신 좀봐.잠시 좀 갔다 올데가 있어!"
"어딜? 출발시간 다되었는데."
어느새 차에 올라탄 성윤은 차문을 열고 사탕봉지를 꺼내 들며 웃었다. 그리
고 급하게 악쎌을 밟았다.
"잠깐이면 되!"
철우는 지퍼를 올리며 따라가 보려 했지만 성윤이 탄 차는 빠른 속도로 철우
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