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최삼락.나이 16살.나이는 좀 많이 어리지만 키는 벌써
180 정도이다.그리고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있어서 같은반 아이들이
술삼락이라고 놀린다.내인생에 있어서 술삼락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사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아버지는 좀전에 자식들 앞에서 한짓을 모두 잊은채 유행가 가사를
흥얼거리며 고장난 카세트처럼 골목길을 내려가고 있었다.절룩거리
는 아버지의 걸음걸이와 노랫소리가 엇박자를 내며 나의 속을 더욱
불편하게 자극하고 있었다.죽여야 할 이유 하나를 더찾은 셈이었다.
(오늘은 반드시 죽여버리고 말겠어.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받은 고통
을 모두 돌려주고 말테다. 이자는 필요없다. 내가 받은 만큼의 고통
만큼만 돌려주겠어.)
휘청대며 걷던 아버지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철퍼덕 퍼질러 앉아 담벽
에 기대어 고개를 숙였다. 여기저기 갈라지고 허물어진 시멘트 벽과
절름발이 아버지는 환상의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구역질이 날 정도로
둘이 찰떡 궁합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 바로 이곳이다.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증발시켜버릴 최적의 장소는.
손에 들고 있던 식칼에 힘을 주었다.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허름한
벽을 따라 나있는 좁다란 골목길은 인적을 찾아 볼수 없을 정도로 조용
했다.나의 마음도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고 적막했다. 나는 어두운 침묵
처럼 무겁게 아버지를 향해 한발한발 다가 가고 있었다.
"흑흑..삼락아..은지야.."
난 내귀를 의심했다.아버지는 내 이름과 동생 이름을 불러가며 마치 방금
전에 저질렀던 일을 뉘우치기라도 하듯이 자신의 따귀를 스스로 때려가며
자책하고 있었다.가슴이 쿡,하고 쓰라렸다.고통과 분노 그리고 환희와 죄
책감이 한데 어우러져 푹풍처럼 머리속을 휘젓고 있었다.어쩌면 아버지는
내가 생각하는것처럼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닐거라는 무서운 생각이 퍼뜩
들었다.생각의 온도가 차갑게 떨어지고 불편한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지나치게 사랑하면 병이 되어 버린다는 국어 선생님의
말속엔 어떤 진리가 담겨져 있는듯 했다. 그동안 아버지가 나와 동생에게
들킬까 두려워 꼭꼭 감추고 있던 진짜모습을 목격하고 나자 온 몸에 힘이
빠지고 현기증이 몰려왔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둔 나의 일상생활은 남들과는 달랐다.아니 달라야만
했다.매일 얻어터지는 것도 모자라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면 남들 학원 가
는 사이 나는 낡은 자전거를 타고 근처 농장으로 간다. 거기 가서 가축의
똥도 치우고 허드렛 일을 도와주며 일당 4만원을 받는다.
가축의 분료는 생각보다 무겁다. 돼지 축사에서 나온 일주일치의 똥을 한
곳에 모으면 5톤 트럭으로 한차 분량이 나오는데 농장에는 노인네들 밖에
없어서 내가 대신 일을 해주는 것이다.
"우쌰 우쌰 끙챠."
"와, 벌써 다 끝낸겨?"
"네..네네."
집채 만큼 쌓여 있던 똥을 거름차에 거의다 싣고 나니 농장 할아버지가
오셔서 음료수를 건내 주셨다.
"자 이거 한잔 마시고 갈때 고기가져가. 어린것이 참 기특혀.우리 손주
새끼들은 밤새 게임하느랴 눈갈이 빨간데 쯧쯧."
눈깔이 안 빨갛다고 욕을 하는건지 일을 잘 한다고 칭찬을 하는건지 표
현이 애매했지만 일단 예의는 지켜야했다.
"네 감사감사.꾸벅."
할아버지께서 주시는 고기는 면역주사를 잘못 놓아서 죽은 돼지 새끼였
다. 돼지콜레라의 항원,항체 반응시 고열이 발생하는데 이를 견디지 못
하고 죽은 돼지새끼를 얻어다 먹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탄압과 병원
균처럼 혹독한 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건 어쩌면 면역 성분이 잔뜩 들어
가 있는 이어린 새끼돼지를 3년 동안이나 먹어왔기 때문이 아닐까.무엇
이든 기대고 싶었다.그게 죽은 돼지든 항콜레라 약물이든 간에 버텨 내
려면 무언가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그만큼 나는 절박했다.
"여태 먹어도 인체에 아무런 해가 없다.맛만 좋더라."할아버지의 말씀
이셨다.
자전거를 타고 이제 다음 알바를 하기 위해 바닷가로 향했다.썰물때를
기다렸다가 갯벌에 나가 김재배용 말뚝을 박는다.근데 그게 말이 쉽지
질퍽한 뻘밭에 지름 20cm의 중심 기둥을 박는 다는것은 웬만한 장정들
도 혼자서는 하기 힘든 고된 일이었다. 그것을 나는 혼자서 한다.새파
랗게 풀이 자라있는 뚝방길 위에 같은반 학생 4명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놈들이 괜히 시비라도 걸까봐서 못 본 척을 하며 낡은 페달을
힘껏 밟았다. 벌겋게 삭은 자전거 체인에서 비명소리가 났다.
"끼이익..끼이익.."
"왔어? 최장군.."
김 양식장 아주머니는 나이에 비해 덩치도 크고 힘이 좋은 나를 장군
이라고 부르셨다.커서 나라를 구할 관상이라나 뭐라나. 괜히 더 부려
쳐먹을라고 지랄은.
"이거예..요?"
어제 난데없이 남해안 일대에 약한 쓰나미가 덮쳐왔다.일본에서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이곳 목포에 쓰나미가 올려 오곤 하는데 이번것은 꽤 물
힘이 쎄서 말뚝이 다섯개나 빠졌다. 젊은이들은 도회지로 다 빠져 나가
고 젊은 사람은 눈을씻고 찾아 봐도 없다.어른과 어린이 사이에 애매하
게 끼어있는 비행청소년들만 좀 아까본 4명처럼 좋지 않은 풍경으로 종
종 눈에 뛸 뿐이다.
뻘에 나무 기둥을 박아넣고 죄우로 흔들며 쑤셔 넣었다. 처음에는 견고
했던 뻘도 천천히 물러지면서 나무말뚝을 받아들였다.어려서 잘은 모르
지만 여자의 몸도 남자를 받아 들일 때는 이렇게 반응 할것 같았다. 따
지고 보면 인간도 자연의 일부 아니겠는가. 물러진 갯뻘에 기둥을 힘껏
밀어 넣었더니 쏙,하며 들어갔다.
이제 하나 박은 것이다. 팔뚝이 쑤시고 뻑뻑했지만 오늘 나머지 네개를
다 박아야 일당 5만원을 받아 갈 수 있다.자 힘을 내보자.
삼락은 어렸지만 그 누구보다도 억세고 강인했다. 마치 남해안을 길게
끌어 안고 힘차게 흐르고 있는 저 해류를 닮아 있었다.
집나간 어머니 대신 알바를 뛰어 쌀도 사고 반찬도 사고 여동생의 학용
품을 사줘가며 집안 살림을 꾸려나갔다.고되고 힘들지만 한편으로는 보
람도 느낀다. 여동생이 공부를 반에서 일등을 해서 느끼는 기쁨보다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애가 그늘지지 않고 밝고 명랑하게 자라주어서 그게
더 고마웠다. 나는 내나이 또래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
들이 모르는 삶의 기쁨과 비애를 동시에 느끼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약간의 자폐증이 있는 나는 공부는 못한다. 응용력과 창의성은 제로에
가까워 형편 없었지만 암기력 하나 만큼은 메모리 반도체처럼 남부럽지
않게 좋았다.그래서 응용력이 필요없는 암기과목 에서는 성적이 좋았다.
심지어 중간고사에 삼투압에 대한 문제가 나오면 콩팥을 예를 들어 설
명하시던 생물선생님의 얼굴표정과 입술에 바른 루즈색깔 손톱색깔 그
리고 신우염을 앓고 계시다는 선생님의 친정 엄마의 인상착의까지 생각
이 날 정도였다. 이정도면 기억력이 좋은것을 넘어 서서 병에 가까웠다.
이번 중간고사에서도 국영수 다 포기하고 암기과목만 조지고 조져서 50
명 중 20등을 했다.이 정도면 성적이 중간 이상은 되는 거였다.내가 보
기에는 좋은 기억력이 아무래도 자폐증에서 나오는 현상인것 같았다.자
폐증을 가진 나는 남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지 못한다.무슨 말만 하려고
하면 보이지 않는 장벽이 앞을 딱 가로막고 있어서 금세 어려움을 느끼
고는 했다.
자폐증은 술 주정뱅이 아버지한테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어린 내가 만들
어낸 유일한 보호장치였다. 주먹으로 때리는 폭력은 막아 낼 수 없었지
만 영혼을 향해 가해지는 폭력은 그렇게하면 막아 낼수 있었다.술에 취
한 아버지가 날 미친듯이 때릴때마다 가여운 나의 영혼은 내 몸을 빠져
나와 어느 바닷가를 거닐고는 했다.나는 파도 치는 바닷가에 곧 지워질
발자국을 남기며 걷고 있었다.
다치지 않기 위해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자폐의 벽은 학
급내에서 나를 유리시켰고 나만의 시간과 공간속으로 끊임없이 빠져 들
게 했다. 친구도 없고 그러므로 적도 없었고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혼
자 벌어 가족을 먹여 살렸고 자폐아처럼 일을하고 자폐아처럼 잠을 잤고
자폐아 처럼 밥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