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구연습은 날이 저물도록 끝나지 않았다.곧 학교 대항전이 있을거
라고 감독이 까댔기 때문이었다.아직 정식 시합경력이 없는 나로서는 여
간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가게고 나와바리고 간에 일단 나는 야구
시합에만 신경쓰기로 했다.저녁때가 되자 꼬붕새끼들이 먹을것을 주섬주
섬 들고와서 운동장에 천막을 치고 밥상을 차렸다.일식집에서 직접 공수
해온 모듬회와 참치, 후라이드치킨 3마리, 양념 통닭 4마리,탕수육과 유
린기 정도로 간소하게 차린 밥상은 운동장 반을 차지할 정도로 공간을
차지했다.
"먹을것도 없는데 자,자리만 존나게 차지하네. 똑바로 안해!"
깜짝놀란 꼬붕들은 고개 인사를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감독은 다
른 야구부 아이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고 히죽히죽 웃으며 나한테로
슬금슬금 기어왔다.
"여..최삼락 너 부자인가보다.어우 이거 참치아냐! 쩝쩝 아오 맛있다야."
옆에서 지켜보던 꼬붕녀석들이 나보다 먼저 놀랬다. 선생이고 감독이고
간에 나한테 까불면 얻어터진다는걸 꼬붕애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보다 먼저 내밥그릇에 손을 댔다간 그 손목아지가 무사하지 못한다는
걸 동네 개새끼도 다 아는데 감독은 개만도 못한 짓을 하고 있는 거였
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인간은 하는짓이 밉지가 않았다. 내가 손짓을
하자 꼬붕 네놈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내가 밥을 다먹고
나면 치우러 다시 나타날 것이다.
이것저것 배터지게 주워 쳐드신 감독은 드르렁 거리며 자빠져 잤다. 내
가 식사를 마치고 잠시 담배 한대 피우는 사이 멀리 떨어져 있던 포수
가 달려와 남은 음식을 치우는척 하면서 주워 먹었다. 허겁지겁 먹어치
운 포수는 재빨리 자리로 돌아가 언제라도 내볼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
었다.시계를 보았다.6시30분.
"이새끼들이 올때가 됐는데.."
야구의 명문 광주 제일고,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 얼마전 두 학교 일
진들과 룸빵가서 한잔 빨면서 부탁해 3, 4번 타자들을 데려다가 써보
기로 했다. 그냥 혼자 던지는 것은 아무래도 긴장감도 떨어지고 공의
위력도 알 수없기 때문에 학교대항전을 앞두고 마지막 점검차원에서 잠
시 빌린놈들이었다. 물론 각학교 감독들 모르게 은밀하게 진행되는 일
이었다. 저벅저벅.음 왔군.
고등학생인데도 성인 못지 않게 덩치가 크고 근육질인 3,4번 타자들은
나를 보고 90도로 인사를 한 후 잠시 몸을 풀고 4 번 타자부터 타석에
들어섰다. 녀석은 고등부에서 직구에 가장 강점을 가진 놈이었다.
보통 프로무대에서 투수가 직구를 던지면 0.4초 안에 홈 플레이트에 도
달하기 때문에 타자들은 그 안에 볼을 칠 것인가를 결정하고 배트를 휘
둘러야 한다. 볼이 날아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방망이를 휘두르면
빠른 직구를 칠 수가 없다. 칠것인가 말것인가를 미리 결정하고 투수손
에서 공이 떠남과 거의 동시에 배트를 휘둘러야 맞출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직구는 타자의 반응속도가 빨라야 한다.
"저벅저벅.. 광주 제일고 4번 타자 김 희수입니다."
내가 10개 정도의 연습구를 던지고 나자 녀석이 군대에서처럼 관등성명
을 대고 타석에 들어섰다.놈은 덩치가 크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서 파
워가 좋을 뿐만 아니라 반응속도가 국내 고등부에서는 최고였다. 주로
몸쪽 직구를 잡아당겨서 장타를 만들어내는 놈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최고의 유망주로 손꼽히는 인물중 하나였다.무시못할 상대였다.
나는 손에 송진가루를 묻힌후 볼을 잡았다. 손에 볼이 꽉끼는 밀착감이
느껴졌다. 내가 원하는 세상과도 한뺨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내가 심판봐줄께."
감독이 참치회를 입에 물고 심판을 자처하며 나섰다. 자기편 봐주기없이
공정한 심사를 기대해도 좋다며 떠벌렸다.마침 심판이 필요할것 같아 그
냥 내버려 두었다.좌투,우타(왼손투수와 오른손 타자)의 대결이 곧 시작
되었다. 어디서 왔는지 1,2,3루수와 유격수, 그리고 좌익수와 중견수 우
익수가 재빨리 운동장으로 달려나가 수비 위치를 잡았다.
포수가 안쪽 직구 싸인을 보내왔다.한번 정면승부를 해보자는 거였다.좋
아 까짓거 한번 붙어보자고. 나는 검지와 중지를 약간 벌려 직구 그립을
잡고 최고속도로 볼을 던져 보았다. 백스핀을 먹은 나의 공은 획, 소리
를 내며 순식간에 포수미트에 꽂혔다.
"퍼억. 스트라잌."
방망이를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멀뚱히 서있던 4번 타자는 상기된 얼굴로
타석을 벗어나 몸을 풀었다. 포수가 미트에서 손을 꺼내 간신히 OK싸인을
보낸 후 호호 불었다. 몹시 따가운 모양이었다. 이번에 던진 포심 패스트
볼은 속도가 아마 160에 가까울 것이다.공에 옆으로 두줄로 나 있는 실밥
을 위에서 아래로 잡으면 중지와 검지사이에 실밥 네군데가 걸쳐지기 때
문에 포심은 가장빠른속도와 무브먼트를 얻을 수가 있는 구종이었다.
4번 타자 김 희수는 삼락의 공을 보고 놀라 자빠질 뻔했다.자기도 친다면
치는 선수인데 삼락의 공은 볼 로케이션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공도 무겁
고 종속이 좋아 보였다. 더군다나 투수는 왼손 언더핸드였다.국내엔 언더
핸드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왼손투수가 던지는 공은 난생 처음보았다. 투
심인지 포심인지 조차 알 수 없는 아리까리한 상황이었다.전혀 분석이 안
되는 투수의 공은 타자에겐 공포에 가까웠다. 역시 세상은 만만치가 않았
다. 내가 뛰면 세상엔 나는 놈이 있기 마련이고 내가 날면 세상엔 순간이
동을 하는 놈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고등학생이 되면 이제 실력차가 뚜렷
해 지기 때문에 지금의 라이벌이 곧 프로에서의 라이벌이 된다.이런 어마
어마한 투수가 있을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희수는
태연한척 표정관리를 하며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볼 카운트는 0-1 (원스크라잌 노볼),자신감에 차 있는 삼락은 분명 다시
직구를 던질 것이다. 이번엔 반드시 놈의 직구를 노리고 들어가자.]
삼락은 다시 한번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휘릭..삼락의 손을 떠난 공은
일정한 공기저항과 회전력으로 인해 거의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볼이 날아온다. 희수는 방망일 휘둘렀다. 엇 내가 노리는 몸쪽 볼이 아니
다. 휘두르던 방망일 간신히 세웠다. 이크..
직구 볼은 포수 미트속으로 눈 깜짝 할 사이에 빨려들어갔다.퍼억.볼..희
수의 예상대로 삼락의 이번 공은 다시 직구였다. 언듯 보기엔 전과 같은
포심같기도 한데 제구가 약간 바깥족으로 형성되는 바람에 볼판정이 났다.
볼 판정이 났지만 속도,로케이션 모두 좋았기 때문에 포수는 고개를 끄덕
이며 만족스럽다는 신호를 보냈다. 1-1
다음에 삼락이 던질 공은 투심 패스트볼이었다.포심패스트볼과 같은 직구
그립인데 검지와 중지를 실밥의 세로 방향으로 잡고 던지는 공으로써 두
손가락과 닿아있는 실밥의 마찰을 이용해 공에 회전을 주기 때문에 공이
싱커처럼 약간 가라앉으면서 좌우로 움직인다.공의 성격상 주로 내야땅볼
을 유도하는데 쓰이는 볼이다. 에잇 휘릭..
왼손잡이인 삼락이 던진 투심 패스트볼은 공이 회전하면서 왼쪽으로 약간
치우치며 오른손 타자인 희수의 눈앞에서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갔다.퍼억..
볼..2-1 (원스트라잌 투볼)
[음, 이번 볼은 투심이 분명해. 최 삼락 이녀석 완전괴물이군..제구가 정
확히 안 되서 그렇지 언더핸드의 직구가 이정도 빠르기로 제구만 된다면
과연 이걸 칠수 있는 선수가 대한 민국에 얼마나 될까. 국내 프로무대는
물론 메이져리그에서 조차도 충분히 먹힐만한 공이군.]
희수는 삼락의 공에 감탄했다. 듣던대로 엄청난 공이었고 이런 공을 치기
위해 타자로 나왔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희수에게도 이번 기회는
스스로의 능력을 테스트해보고 가치를 증명할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삼락
은 다시 한번 투심을 던졌다. 휘릭..
싱커처럼 약간 가라앉은 투심은 좌우로 약간씩 변하며 움직였다. 타자가
이공을 친다하더라도 약간 가라앉아 있기 때문에 방망이 아래를 맞출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바로 내야 땅볼을 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삼
락의 경우는 언더 핸드이기 때문에 거꾸로 생각하면 뜬공이 나올 것이다.
희수도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꼼짝않고 서 있었다. 퍽..볼..3-1 (원스트
라잌 쓰리볼.)
볼이 약간 낮아 볼로 판정 되었다. 삼락이 보기엔 분명 스트라잌이었는데
감독은 볼 반의 반개가 낮았다며 볼을 선언했다.열받은 삼락이 바닥에 침
을 뱉었다. 퉤! 그리고 손가락끝으로 네모를 그렸다. 비디오 판독을 해보
자는 삼락에게 감독은 에이없게도 네모난 담배갑을 던졌다. 화가 난 삼락
은 발로 답배갑을 차버리고 그 자리에 돌처럼 그대로 꼼짝않고 서 버렸다.
감독은 삼락을 놀려먹는게 재미있는지 낄낄거리며 웃으며 말했다.
"심판이 만약 오심을 내렸다면 그것 또한 경기의 일부분이야. 받아들여야
지. 너는 아직 멀었다야."
포수가 타임을 외치자 타자는 타자박스를 벗어나 방망이를 붕붕 휘두르며
몸을 풀었고 포수가 삼락에게 뛰어와 말을 걸었다.
"보쓰가 던진거 스트라잌 존에 걸치긴 했는데 타자가 워낙 키가 커서 심판
이 볼로 본거야.."
그렇다면 타자의 체구에 따라 스트라잌 존의 높,낮이가 약간씩 달라진다는
말인가. 삼락은 전엔 미처 몰랐던 부분이었다.
"씨발 족같이."
"힘내 보쓰. 놈 별거 아냐 한방에 잡자고.."
포수가 자리로 돌아갔고 타자가 타석에 다시 들어섰다.다음에 삼락이 던지
려는 공은 컷 패스트 볼. 일명 커터라고도 불리우는 이공은 직구처럼 날아
가다가 홈 플레이트 바로 앞에서 좌우로 약간 휘는 것을 뜻한다. 슬라이더
와도 비슷하지만 휘는 각이 그리 크진 않고 패스트볼(직구)처럼 속도가 빠
르다. 그립도 직구와 비슷하다.
희수는 이번공은 구종 생각 안하고 무조건 노려보기로 했다. 볼 카운트가
3-1. 타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파울이 되어봐야 3-2고 풀스윙
을 해서 잘맞으면 장타내지는 홈런도 기대해 볼 수 있는 희수였다.
왼손 투수인 삼락의 손 끝에서 볼이 떠나자마자 희수는 풀스윙으로 방망이
를 휘둘렀다. 희수가 생각하기에도 타이밍이 거의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부웅..히익, 배트 중심과 볼의 궤적이 정확히 일치했다. 희수의 얼굴에 엷
은 미소가 퍼졌다.
삼락이 던진 커터는 홈 플레이트 앞에서 오른쪽으로 휘어들어갔다. 오른손
타자인 희수쪽으로 계속해서 오른쪽으로 파고 들어온 커터는 타자의 배트
중심에 맞지 않고 좀더 안쪽 부위에 치우쳐 맞았다. 희수는 예상밖의 상황
에 순간 당황했지만 방망이는 이미 볼을 맞춘 상태였다.와지직.파울. 3-2.
커터는 뉴욕 양키즈의 초특급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의 전매특허인 공이다.
워낙 공에 힘이 많이 실려 종속이 좋고 끝에서 휘는 각이 날카로워서 보고
도 못 쳐내는 공이다. 쳐봐야 방망이가 박살나고 방망이를 짧게 잡고 쳐낸
다하더라도 먹힌볼은 내야땅볼이 고작이다. 한마디로 난공불락의 최강 아
이템인 것이다.
희수의 나무 방망이가 부러지고 말았다.삼락이 던진 커터는 희수가 생각한
예상지점보다 안쪽으로 휘어들어와 방망이의 얇은 부분에 맞아 부러지고
만 것이다.볼의 위력이 엄청나 방망이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리베라
의 명품커터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희수가 생각하기에 곧
있을 학교 대항전은 의미가 없는 듯해 보였다. 자 이제 3-2 풀카운트.. 희
수에겐 아직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었다. 원하는 직구가 오면 반드시 쳐낼
것이다.
심판이 재빨리 나무조각을 치우고 경기를 신속히 진행시켰다.플레이플레이.
삼락은 자신의 커터가 만족스러웠다. 이제 속도는 의미가 없었다.얼마만큼
정확한 제구력으로 원하는 곳에 커터를 꽂아 넣는가가 중요하다.최강의 무
기인 커터를 완벽하게 손에 익혀야 한다. 눈을 감고도 스트라잌을 던질 수
있어야 마운드에 설 자격이 있는 것이다. 다른것은 몰라도 야구에 있어서
만큼은 자기자신에 충실하고 싶었다. 이제 어깨가 뜨겁게 달아올랐다.삼락
은 포수에게 커터 사인을 보냈다. 포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포수는 뜻밖
에도 라이징 패스트볼 싸인을 보내왔다. 타자의 눈에 확들어오게 떠오르는
높은 공을 던져 헛스윙을 유도하자는 뜻이었다.
삼락은 포수의 싸인에 순순히 응했다. 3-1에서 3-2까지 와 버렸다. 타자가
쫓기고있는 상황에선 충분히 설득력 있는 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익..휘릭..볼은 삼락의 손을 떠났다. 희수가 보기에 직구였다.자신이 제
일 자신있고 노리고 있던 직구가 날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배트를 휘둘렀다. 부웅..